홍세화씨는 삼성 불매운동을 짱돌로 바위치기로 표현했다.

좋은 지적이다.

사람들 대부분 삼성 불매운동을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하는데, 그 달걀을 짱돌로 바꾸는 힘은 사람들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소극적이나마 동참하고 있는 일을 꼽아 보았다.

일단 나는 다음과 같은 운동(?)을 하고 있다.

 

- 전자제품은 가급적 LG나 중소기업 제품을 애용하고, 특히 삼성(애니콜·갤럭시)은 거들떠 보지도 않기

- 이미 든 삼성생명 보험은 손해보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하다 끊기, 절대 새로 가입하지 말기

- 삼성증권은 듣보잡... 해당사항 없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쉬운 운동을 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부터... 삼성 불매운동은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 아니,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활성화가 되어야 할텐데... 이 나라는 참... 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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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hani.co.kr/arti/SERIES/114/361989.html

 

[홍세화칼럼] 짱돌로 바위치기
2009.06.23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짱돌도 던지지 말라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낙숫물에 파이지 않는 돌 없고 나무뿌리에 틈을 열지 않는 바위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바라는 사회 변화는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본과 국가권력이 사회 변화의 확실성을 용인할 리 없다. 사회 변화의 확실성에 집착할 때 자칫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마저 놓치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우리는 ‘바위는 반드시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 그것은 ‘더 좋은 세상’이 아닌 ‘덜 추악한 세상’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아직 전쟁을 벌이지만 그렇다고 좌절에 빠지면 안 되는 까닭은 이나마 인간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비관적 여건과 전망 속에서도 덜 추악한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삼성 재벌과 함께 추악한 자본주의의 실상과 만나고 있다. 세금 16억원으로 거대 기업을 편법 승계해도,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집단적으로 걸려도, 죽은 사람 명의를 도용하여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해도 삼성 재벌은 거대한 바위와 같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삼성 엑스(X)파일이 불거지고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이 나와도 이 거대한 바위에는 작은 균열도 생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일자리의 신성화’를 통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모순을 낳고 그들이 살린다는 민생은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의 현장이 증언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그칠 일이 아니다. 반사회적 자본의 추악한 실상을 지나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은 ‘반기업 정서’를 들먹이지만 ‘반사회적 자본’에 순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반사회적임을 실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0여년 전 프랑스 쉬드(SUD, 연대단결민주) 노조를 방문한 민주노총 간부가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삼성 재벌의 무노조 관철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쉬드 노조의 여성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60만명이 넘는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우리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의식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기획·주입된 것일까? 아니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주술에 걸린 것일까?

 

삼성 재벌이 <한겨레> 광고를 보이콧한 지 20개월째 된다. 한겨레 독자들이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는 비대칭성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의 제품을 조직 노동자들이 별생각 없이 사들이는 비대칭성과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 아무리 강력한 자본주의일지라도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거나 소비자들이 보이콧으로 소비를 거부하면 작동할 수 없다. 13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대법 판결 결과에 낙담하는 대신 우리가 짱돌(보이콧)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하는 일에서 멈출 게 아니라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설 일이다. 선거일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 언소주(언론소비자 주권 국민캠페인) 운동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설령 당장 효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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