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한국 경제, 빨대가 문제다"

  [이명박, 일단 'STOP' ②] 경제 정책  
 
  2008-04-01 오전 9:16:01


 

정책 점검을 시작하며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득표율은 48.6%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놓고 "잘했다"는 평가는 38%로 줄었다. 한 달 만에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빠진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런 심상치 않은 민심에도 여전히 거침이 없다.
  
  4월 총선은 이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 놓인 '검문소'이다. 그는 이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해 다시 질주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과 한국진보연대는 독자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검문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5회에 걸쳐 교육, 경제, 사회 정책을 점검하는 글을 싣는다. <편집자>

  
  "국밥 다 먹었으면 어서 경제를 살려내"
  
  자신과 상대를 정반대로 규정해 이득을 얻는 것, 선거는 프레임 싸움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거짓과 진실'이 대판 붙었다고 외쳤다. 하지만 '안 먹혔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망친 말만 하는 무능한 세력과 경제를 살리는 실천하는 유능한 세력'이 맞장을 뜨는 것이라 했다. 송곳처럼 먹혔다.
  
  "내가 비비케이(BBK)를 설립했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쌩얼'이 공중파 방송들을 타고 전국에 배달됐지만 지지율을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때 아무 것도 듣지 않았다. 오직 말하고 싶었다. "국밥 다 먹었으면 어서 가서 경제를 살려내!"
  
  "경제를 살리겠다." 선거가 끝난 지금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수가 있기에 저렇게 혈기왕성할까? 원리는 간단하다.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장을 더 짓고, 기계를 더 들여놓고, 물건을 더 찍어야만 일자리가 생긴다. 일자리가 생겨야만 경제가 살아난다."
  
  어떻게 해야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일까? 두 가지를 하면 된다. 규제 철폐와 세금 감면. 새 대통령은 3월 내내 각 부처 업무보고를 통하여 이 두 가지를 철저히 챙겼다. 법무부가 "기업경영에 유리하도록 법을 정비하겠다"고 하고, 환경부가 "상수원보호구역의 공장설립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했다. 업무보고는 가히 '규제 철폐 경진대회'를 보는 것 같았다. '경진대회'의 절정은 지난달 28일 공정거래위원회 보고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출자총액제한제도 철폐 △지주회사 전환 제한 완화 △상호출자, 지급보증 제한 기업집단 완화 △직권조사, 현장조사 제한 등을 결정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자산 10조 이상의 기업 집단에 속한, 자산 2조 이상의 기업은 다른 회사 주식을 살 때 자기 순자산의 40% 이상을 사지 못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복잡한 얘기가 아니다. 재벌은 담보 잡힐 것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은행 돈을 얼마든지 꺼내 문어발 확장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얼마쯤 막자는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 제한, 상호출자 지급 보증 제한, 직권 조사, 현장 조사 등 비슷한 규정도 모두 모아 이번에 깨끗이 지우려 했다. 세금감면도 확실히 밀어붙였다. 법인세 25%를 일 년에 1%씩, 2012년까지 20%로 내리겠다는 공약에서 몇 걸음 나아가 아예 올해 3%를 화끈하게 깎아준다는 것이다.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는 늘어난다" 정말?
   

▲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는 늘어난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연합뉴스

 

  자본은 왜 투자를 할까?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벌려면 무엇보다, 팔아야 한다. 더 많이 팔수록 좋다. '3개 팔다가 5개, 5개 팔다가 7개 팔면' 규제가 많고 세금이 비싸도 자본은 눈에 불을 켜고 투자를 늘린다. 그러나 '7개 팔리던 것이 5개로, 5개가 3개로 줄면'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려도 자본은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지금은 자본이 투자를 늘릴 때일까, 아닐까?
  
  세계 경제 동향에 그 답이 숨어있다. 먼저 미국 경제를 보자. 미국 경제가 요즘 난리다. 공룡 중의 공룡, 투자은행 5등에 빛나는 베어스텐스가 부도를 냈다. 그대로 두면 그 은행에 돈을 빌려준 다른 은행들이 연쇄 부도가 나고 결국 미국 경제가 부도날지 모른다고 한다. 결국 미국 정부는 중앙은행 돈을 긴급 지원했다. 그 규모는 300억 달러였다. 외환위기(IMF) 당시 우리가 빌려 온 돈의 절반, 가히 천문학적 규모라 할 만하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초였고, 은행을 긴급 지원하는 법을 만든 이래 처음이다. 이만큼 심각하다.
  
  진짜 문제는 비틀거리는 은행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침체한 경기를 억지로 띄우기 위해 2001년부터 미국 정부는 금리를 내렸다. 2003년에는 이자가 1%. 이 공짜 돈으로 사람들은 주택에 투기했다. 오늘 대출한 사람이 집을 사고, 내일 대출한 사람이 그 집을 다시 샀다. 그 결과 1997년에서 2006년 사이 집값은 무려 132%나 올랐다.
  
  이번에는 거품을 조절한다며 미국 정부가 금리를 올렸다. 2006년에는 이자가 5%가 됐다. 3년 만에 다섯 배가 폭등한 것이다. 당장 이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팔자"를 외치면서 집값은 떨어졌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특히 신용등급이 낮아 비싼 이자를 물면서 돈을 빌린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파산했다. 파산한 이들이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되면서 대형은행들이 동시에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다.
  
  경제가 튼실하고 넉넉하면 정부가 은행 빚을 때워주면서 그럭저럭 또다시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그럴만한 힘이 남지 않았다. 무역에서 7000억 달러, 정부살림에서 3000억 달러, 합쳐서 1조 달러씩 해마다 빚이 켜켜로 쌓이고 있다. 태산 같은 빚에 눌려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추가로 덮친 것이다. "미국 경제가 망할 수 있다", "벌써 망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소비 감소'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그럼 어떻게 될까?
  
  미국을 향한 수출이 자꾸 줄어들 것이다. 아직 중국이 있다? 아니다. 중국이 연 11% 이상 고속성장을 거듭 한 것은 대미수출이 대폭 상승한 덕이다. 이제 중국도 미국 수출 길에 비상이 걸렸다. 거기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정부의 경기조절 정책이 겹치면, 중국의 고속성장은 반드시 통제될 것이다. 추사오하 중국 국가통계국 총경제사는 지난 1월 14일 "세계 경제 침체로 중국의 수출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이에 따라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1년 만의 최저치인 7~8%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중국 경제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미국을 향한 수출이 줄고, 대중국 수출도 늘지 않을 것이다. 국내 시장에 팔면 될까? 노동자 가운데 1000만 명이 비정규직,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일 뿐이다. 농민은 수입개방으로 모두 2~3억씩 빚을 지고 있다. 중소자영업자는 장사가 안 돼서 가게와 집마저 날릴 것 같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나온다. 중소기업은 재벌과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로 원가도 못 건진다. 모두 주머니가 텅텅 비었다.
  
  안팎을 둘러봤다. 과연 지금 '3개 팔다 5개로, 5개 팔다가 7개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없다. 규제를 아무리 풀고, 세금을 아무리 내려도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저들도 다 알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이 번쩍이는 현실을 훨씬 더 잘 꿰고 있다.
  
  규제 풀고 세금 깎아주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런데도 왜 새 정부는 기를 쓰고 규제를 풀고, 왜 악착같이 세금을 내릴까? 규제 철폐의 대표선수, 출총제를 보자. 이 규제에 걸리는 재벌은 딱 7개 뿐이다.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롯데, 현대중공업 등이다. 재벌 중의 재벌들만 이 규제에 걸릴 수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다른 기업에 마음껏 투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키는 대로 투자할 수 있다. 신규 투자가 아니다. 공장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등 국민 세금을 대량으로 쏟아 부어 겨우 살려놓은 알짜 중의 알짜 기업들. 그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주회사 제한 완화는 두산, 한화, CJ, SBS 등 하위 재벌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지금도 문어발이 차고 넘치는데 "문어발을 무제한 확장하라"는 것이 바로 규제완화다.
  
  법인세를 5% 대폭 깎아주면 효과는 무엇일까? 법인세를 내는 기업이 모두 35만 개니까, 그 중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니까, 이제 중소기업들이 숨 좀 쉬게 될까? 아니다. 35만 개 기업이 균등하게 법인세를 내는 것이 아니다. 법인세의 75%를 1200개 기업이 낸다. 세금감면 혜택의 무려 75%가 1200개 기업에 집중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1000대 기업의 자금사정은 과연 어떠한가? 사내유보율, 즉 자본금의 몇 배를 회사에 쌓아두었는가를 살펴 봤더니 2002년에 232%에서 2006년에는 616%로 상승, 자그마치 3배가 증가했다. 지금도 돈 창고가 터져 문을 못 닫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더 그 창고를 불려주겠다는 것이 바로 세금 감면이다.
  
  법인세를 5% 내리면 40조에서 50조 가량 세금이 빈다. 없는 셈치고 그냥 살림을 살까? 정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자라는 그만큼 채워야 한다. 어디서 더 거둘까? 자본에게는 오직 감세만 있을 뿐, 더 거둘 수 없다. 그럼 뻔하다. 5000원 짜리 밥을 먹으려면 부가가치세 500원을 반드시 내야 한다. 안내면 못 먹는다. 이처럼, 가격에 자동으로 붙으면서도 눈에는 보이지 않아 힘 안들이고 샅샅이 거둘 수 있는, 소비세를 올리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3월 16일 경제장관조정회의에서 금을 비롯한 귀금속에 매기는 20%의 특별소비세를 내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소비세 중에서도 상위계층이 주로 내는 소비세는 폐지하고 하위계층이 내는 소비세만 올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하면 과연 경제가 살아날까?
  
  경제가 살아나려면 빨대경제를 벗어나야 한다
  
  규제 철폐를 정부가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시키는 대로 안하면 돈 안 꿔준다'는 IMF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하라는 대로 다 했다. 외국 자본과 국내 재벌이 돈 버는 데 방해되는 것은 다 규제로 몰렸고, 철저히 제거됐다. 시장 개방, 정리 해고, 세금 감면, 공기업 민영화가 다 거기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넘었다. 우리경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현대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 수출 대기업, 경제의 심장에 해당하는 은행 등 산업의 중추에 외국 자본, 특히 미국 자본이 50% 이상 투자를 늘렸다.
  
  선진자본이라는, 그 미국 자본이 우리경제에 그만큼 많이 투자했으니 우리 경제는 좋아졌는가? 좋아졌다. 미국 자본과 국내 재벌에게는 너무너무 좋아졌다. 미국계 자본 골드만삭스는 진로를 샀다가 팔면서 3조 원을 남겼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면 5조를 추가로 챙긴다. 단 하나의 기업이 단 하나의 거래에서 3조, 5조 원씩 막 가져가는 것이다. 이들이 '나쁜 투기자본'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2004년 경영실적을 보면 된다. 순이익이 10조 원이 났다. 들어간 돈을 다 빼고 순전하게 남은 돈이 10조 원이었다. 이 돈을 어디다 썼는가가 중요하다. 왜? 재투자를 해야 중소기업이 납품을 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는 등 이른바 낙수효과가 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쓰인 것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을 주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나눠주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배당금을 주는 것. 다른 하나는 이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주식 값이 당연히 뛰어 오른다. 다시 팔면 떨어지니까, 안 팔아고 회사로 갖고 들어와서 '태워버린다'. 이것이 바로 '감자'다. 주식 값은 더 오른다.
  
  이렇게 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사람들이 떼돈을 버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도 나름 있다. 주식 50% 이상, 의결권을 장악한 외국 자본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룹 회장도 대주주이니 손해볼 것이 없다. 오히려 떼돈을 벌 수 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나라 50대 기업의 매출이 115% 수직상승을 했는데도 고용은 오히려 0.4% 감소한 것도 다 그런 이치다.
  
  '수출이 잘되서 이윤이 많이 나면 그 돈을 다시 투자 하고, 그래서 중소기업 매출이 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생겨, 내수가 살아나고 경기가 좋아진다?' 이 연결고리는 이제 끊겼다. 발생하는 이윤은 외국자본, 국내재벌이 전부 거둬간다. 자본은 이제 낙수 대신 '빨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은 세계 13등, 그러나 '삶의 질'은 50위권 밖이다. 땀 흘려 일하기는, 경제규모는 세계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데 왜 먹고살기는 '꼴등'에 가까운가? 누군가가 빨대로 자신만 빨아올려 마시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은 41%나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 수출은 119%나 늘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빨대가 문제다.  
    
 
  장대현/한국진보연대 교육위원장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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