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강준만 칼럼/6월 25일] 대통령과 CEO의 7대 차이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한동안 CEO(기업 최고경영자)가 폭격을 맞았다. 엄밀히 말하면 ‘CEO 리더십’이 폭격을 맞은 것이지만, 그게 그거다. 졸지에 CEO는 ‘독선’과 ‘권위주의’의 상징이 돼 버렸다. CEO 출신으로 ‘CEO 리더십’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한 덕분이다. 평소 반(反) 기업정서 척결에 앞장서온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왜 이런 사태에 잠자코 있는지 모르겠다. CEO들이라도 명예회복을 위해 들고 일어설 법도 한데, 그들도 말이 없다. 하긴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이명박은 엉터리 CEO였다”고 말할 것인가?

 

실제로는 서로 많이 다른데

 

“국가는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사원이 아니다”며 이 대통령이 ‘CEO 리더십’을 버릴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보수ㆍ진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다 타당한 고언들이라 여겨지지만, ‘CEO 리더십’의 정체를 너무 단순화시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CEO 리더십’을 ‘독선ㆍ권위주의’ 위주로만 몰아 붙여선 답이 나오질 않는다. 좀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CEO는 어떻게 다른지 7대 차이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익 배분과 수혜대상의 차이다. 기업이 성공하면 주주와 전 사원이 이익을 본다. 국가는 그렇지 않다. 국가가 성공해도 그 방식과 내용에 따라 빈부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일단 ‘파이’부터 키우고 보자며 가난해지는 쪽의 반발을 누르기 위해 국가주의적 개발독재가 나타나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개발독재에 반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발상을 고수하고 있다.

 

둘째, 인사철학의 차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인사에서 정의와 도덕은 불필요하거나 하찮은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렇지 않다. 고위직 인사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사회 교육의 역할 모델이 된다.

 

셋째, 공정성 철학의 차이다. 기업은 자본 조직이므로, 자본 파워에 따라 젊은 나이에 부장이나 이사는 물론 CEO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공정성은 자본이나 능력의 하위 개념이다. 늘 사회적 갈등을 다뤄야 하는 정부와 공적 조직은 그렇지 않다. 인사에서 공정성이 생명인 경우가 많다.

 

넷째, 언어 품위의 차이다. CEO의 언어행위에선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형식이 거칠거나 상스럽더라도 알맹이만 좋으면 그건 박력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는 국가적 품격의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내용 못지않게 형식이 중요하다. 단도직입적이거나 화끈한 어법은 금물이다.

 

다섯째, 자존심 가치의 차이다. 기업의 자존심은 이익이다. 경쟁기업을 집어 삼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아첨하거나 굴종해도 무용담으로 통할 수 있다. 그렇게 단기간에 확연한 실적을 낼 수 없는 국가는 그렇지 않다. 자존심과 상징에 죽고 살기도 한다. 민족주의가 어디 이익의 문제인가.

 

늘 진보한다니 기대해 볼까

 

여섯째, 책임 평가의 차이다. CEO는 사원들에게 실현되지 못할 큰소리를 치더라도 사기 앙양을 위한 선의로 구제 받을 수 있다. 최종 평가는 철저히 계량화된 재무제표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실적만 좋으면 허풍은 매력으로 통할 수도 있다. 국가는 그렇지 않다. 국민은 대통령의 큰소리 하나하나에 주목하면서 일일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일곱째, 저항 성격의 차이다. CEO 리더십에 대한 저항 이유는 주로 돈으로 통한다. CEO가 저항을 폄하하는 막말을 하더라도 돈으로 틀어 막을 수만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저항의 이유는 불안ㆍ자존심 등과 같은 감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생관ㆍ세계관의 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훨씬 더 정교하게 대응해야 한다. 자신은 그 어떤 도그마에도 빠지지 않고 늘 바뀌기 때문에 진보적이라는 이 대통령의 주장을 믿고 싶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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