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정치논평/8월 25일] 양극화, 엔도르핀, 그리고 백

>> 원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808/h2008082502295325580.htm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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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를 지낼 수 없다." 인기 드라마 <대왕 세종>을 보면 세종이 어렵게 세자가 된 뒤 가뭄이 들자 중신들은 세자가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종은 이를 거부한다. 과학과 거리가 먼 기우제를 통해 자신을 길들이려는 중신들의 압력에 저항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기우제는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백성을 달래주기 위한 왕의 일종의 정서적 의례, 즉 왕이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를 세종이 이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의 어이없는 신바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후반 들어 뒤늦게 깨우치게 됐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가 위기라는 보도를 자신을 흠집 내기 위한 '조중동의 음모'로 치부하며 경제성장률, 기업이윤율을 예로 들어 경제가 좋다고 우겼다. 문제가 사회적 양극화라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서민들의 억장은 무너졌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6개월이 다 된 며칠 전, 정부는 올 2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조사대상을 전국가구로 확대한 2003년 이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고환율정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에 물가폭탄이나 선사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성공한 CEO의 신화를 믿고 그에게 표를 던졌던 많은 서민들은 이 통계를 접하며 허탈했을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이 통계가 발표된 날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사무처 요원들을 모아 놓고 "엔도르핀이 돌고 있다.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최고로 신나는 날이다"며 신바람을 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긴 촛불의 악몽에서 빠져 나오고 지지율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니 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된 정책으로 양극화가 사상 최고수준으로 벌어졌다는데 엔도르핀이 돌고 최고로 신나는 날이라니 같은 지면에 난 이 두 기사를 읽는 서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대통령이 양극화에 대한 보고를 이미 받았을 턴데 통계 발표를 미루든가 아니면 말을 자제해야지 초상집 가서 엔도르핀이 돈다는 식이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주목할 것은 이 대통령이 예상한대로 '불도저 이명박'의 본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을 만나 "이제 많은 것을 결심했고 행동할 준비가 됐다"며 거대여당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는데 내가 뭘 걱정하랴"는 자신감을 표현했다. 또 당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좌고우면할 틈이 없고 물러설 길도 없다. 오로지 국민들을 향해 앞으로 나가는 길 외엔 없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를 접하는 심정은 섬뜩하다. 든든한 빽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아니라 국민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국민과 '함께' 나가야지 국민을 '향해' 나간다니 무슨 뜻인가? 국민과 대치한 폭동 진압군이나 국민을 향해 진군해 나가는 것 아닌가?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인기가 다소 오르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이 보수적 정책을 강화하는 데에 대해 29.2%만이 공감하고 두 배에 가까운 57.9%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적 정책 수정여론 알아야

 

따라서 국민을 향해 나가겠다는 발언이 폭동 진압군처럼 국민을 향해 진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민심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뜻이라면 이 대통령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보수적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보수적 정책에 대한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여당이라는 빽을 믿고 불도저 진압군처럼 국민을 향해 진군해 가겠다는 오만에 찬 대국민 선전포고로 들린다. 안타깝고 섬뜩한 일이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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