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교과서 밖에 있다"

그런데, 자꾸 "성찰하라"고 해봤자, "대체 뭘?" 하는 반응만 나올 것 같다.

성찰의 적절한 지점은 어디일까?
내 똥도 더럽다고 해서 남의 똥이 더러운 걸 눈감고 넘어가야 하는걸까?
아니면, "그래 내 똥도 더럽다"란 말을 먼저 하고 시작하면 다 용서가 되는걸까?

국민들은 현재 상황이 최선 혹은 차선도 되지 못하는 아주 나쁜 상황임을 안다. 다만 "대안"을 원한다.
현재보다 좋아질 수 있는 믿음을 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현재의 틀을, 현재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비판"세력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세력인 것이다.
한나라당을 뒤집을 수 있는 "대안" 세력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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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sun4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1721

 

역사를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구해내자  
[강준만 칼럼] 
 
 2008년 12월 08일 (월) 08:46:16 강준만  kjm@chonbuk.ac.kr  
 
 
“논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답답했습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정치공세에 휘말리고 언론에 보도되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냥 ‘낙인’이 찍힙니다.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대표 저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2011년부터 사용될 새 역사교과서 집필진에서 중도하차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따옴표를 붙이고 출처까지 밝혀 인용한 것을 ‘베끼기’라고 몰아붙이고 언론까지 이념공세를 펴는 데 대해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공감한다. 나 역시 말문이 막혔다. 예컨대, 『조선일보』 9월 12일자 사설을 보자.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는 학교의 절반이 채택하고 있는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이 교과서는 광복 후 미군정에 대해서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고 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벗긴 미국이나 식민 지배의 장본인인 일본이나 자주독립을 가로막는 점령군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좌파들의 상투적 외세론(外勢論)을 학생들에게 우회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초판에 나오는 미군·미국에 대한 표현 167곳 중 164곳이 미국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악의적 해석을 하기 시작하면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보기 시작하면 미국의 범죄율을 거론하거나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조금만 거론해도 무조건 반미 좌파가 되고 만다. 이른바 ‘아메바 역사관’이다. ‘아메바’에서 조금만 더 진화해보려고 애써보자. 그러면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는 진술은 우파적 역사 해석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잘 생각해보자. 우파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부추겨야 한다. 해방정국은 어떠했던가? 해방정국을 어떻게 묘사하건 좌우(左右)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얼룩진 거기서 무슨 자긍심과 애국심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한계를 지적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해방정국은 좋건 나쁘건 ‘미 군정’ 체제였지, ‘대한민국 체제’는 아직 아니었다는 걸 학생들이 알아야 그 시절에 살았던 할아버지들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거나 덜 할 게 아니냐 이 말이다.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인 것은 성조기였지 태극기는 아니었잖은가. 그걸 사실대로 밝힌 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여전히 생각을 달리 해볼 뜻이 없었나보다. 이 신문의 11월 1일자 사설을 보자.

 

“교과부의 몸 사리기는 대표적 왜곡 교과서로 지목돼 온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일본이 미군에 항복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었다’고 한 부분에 대해 마지막 문장만 삭제 또는 수정하면 된다는 데서 너무 역력히 드러난다. 교과부의 수정 권고대로 하면 한국을 강압 지배한 일본과 일본과의 전쟁을 통해 한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미국이 자주독립을 가로막는 똑같은 외세(外勢)라는 역사 왜곡은 그대로 남는다. 어찌 보면 군더더기 표현을 덜어내 줌으로써 좌파(左派)의 왜곡에 조연(助演)으로 나선 듯하다.”

 

정말 딱하다. 정부를 함부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이야말로 ‘반(反)대한민국’ 작태가 아닐까? 이 신문은 자주 인터넷의 ‘악플’을 비난하는데 어쩜 그리 사설들이 한결같이 악플 수준인지 한심하다. 토론을 해보겠다는 건가,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한국의 대표적 신문 중의 하나라는 신문이 이 모양이니 이 나라에 ‘소통 불능’ 상태가 빚어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무조건 잘못되었고, 『한국 근·현대사』는 무조건 옳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조선일보』의 주장들 중엔 귀 기울일 만한 것들도 있다. 문제는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은 ‘자세’에 있다. 차분하게 토론해볼 수 있는 사안임에도 무조건 감정부터 앞세우는 악의적 선동으로 일관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조선일보』 등의 세력이 지적한 『한국 근·현대사』의 다른 문제점들은 대부분 역사기술 방법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도 『한국 근·현대사 산책』을 쓰면서 실감했던 것이기에 잠시 말씀드려 보겠다.

 

현대사는 아무래도 남한 중심으로 쓰여지기 마련이다. 필자는 깊이 들어간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거리두기 서술방식을 취하게 된다. 무슨 이념 때문이 아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건 이런 일은 벌어지게 돼 있다. 주요 메뉴에 대해선 엄격하고 깊이 있게 비교적 강한 주장을 하는 반면, 곁가지 메뉴에 대해선 아무래도 피상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한국 근·현대사』가 남한에 대해선 엄격하고 북한에 대해선 너그럽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그 어떤 속셈을 감춘 의도로 보는 건 넌센스다.

 

다만 그런 역사기술 방법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선일보』 등이 정작 제기했어야 할 이슈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은 실은 교과서 논쟁이 아니라는 데에 그 답이 있다. 이른바 ‘빙산이론’이다.

 

교과서와 관련해 겉으로 드러난 것은 1/8이며 나머지 7/8은 수면 하에 있다. 교과서 갈등은 드러난 8분의 1이라고 하는 증상에 불과하다. 그 증상을 놓고 아무리 토론을 벌이고, 소통을 시도해봐야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 갈등은 나머지 8분의 7의 반영일 뿐임에도 8분의 7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비슷했다. 지금은 공수(攻守)의 역할만 바뀌었을 뿐이다. 양쪽 모두 성찰이 없다는 점에선 성찰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임지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의 역사담론도 그러했지만,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지금의 공방은 결국 역사적 진리를 향한 논쟁이 아니라 역사 교육을 통해 내가 원하는 ‘국민’을 만들어내겠다는 정치적 공방일 뿐이다. ‘국민화’ 공정의 도구로 작동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없는 것이다. 내 해법은 간단하다. 검인정제도를 폐지하고, 정전(正典)으로서의 역사 교과서를 해체하라는 것이다. 역사는 교과서 밖에 있다.”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양쪽 모두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선 제대로 짚은 주장이다. 양쪽 모두 거창한 목표를 버리고 상호 소통이 가능하게끔 하는 걸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세력은 악의적 선전·선동을 즉각 중단하고 겸허한 자세로 소통에 임하라. “예전에 너희도 그랬으니 이젠 우리 차례다”라고 보복하는 건 요즘 어린 아이들도 하지 않는 치졸한 짓이다. 역사를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구해내야 한다.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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