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주소를 잘못 짚었다. 강교수 칼럼이 한겨레에는 계속 연재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한겨레에서도 끝난 모양이다. 어디 이런 거 트래킹해주는 서비스 없나? 떱... 하여간 이번에는 PD저널이라는 사이트에서 퍼왔다. 거기에다 지난 연말부터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약자의 관점이 더 진실에 가깝고 포괄적이라는 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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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28

 

 

촌놈들의 배신  
[강준만 칼럼]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

 
 2009년 01월 06일 (화) 10:36:16 강준만 전북대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모든 사람이 그가 속한 사회그룹의 시각에서 보이는대로 사회를 파악하며 모든 관점은 편파적이라고 했다. 강자의 관점도 편파적이고 약자의 관점도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성의 질적 분석을 해보자면 약자의 관점이 진실에 더 가깝다. 생존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강자는 약자의 관점을 이해하지 않고 살아도 불편할 게 없지만,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강자의 관점까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약자의 관점이 더 포괄적이다.

 

각 분야에 걸쳐 세계적으로 뛰어난 감수성과 통찰력을 보인 이들이 대부분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식계에서 유대인들이 보인 놀라운 업적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 쪽에서 삐딱한 천재 문인들의 대부분은 잉글랜드의 모진 탄압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이다. 조나단 스위프트, 에드먼드 버크,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 국제적 차원에서 보자면 마셜 맥루한, 해롤드 인니스, 글렌 굴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의 ‘삐딱한 천재성’도 그들이 애매한 국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캐나다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다.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의 통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모욕을 주는 데에 능하다. 출발선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면, 또 주류에 속했다 하더라도 주류 의식과 행태에 충실하지 않으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노무현이라는 아웃사이더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한국에서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그는 인사이더가 되고 싶어 안달했던 아웃사이더였다. 한미 FTA로 대변되는 그의 ‘과잉순응’이 그걸 잘 말해주지 않았던가.

 

한국 사회는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을 어떻게 모독하는가? 그들의 주장을 질시, 콤플렉스, 열등의식, 보복심리, 패자부활 심리 등으로 폄하한다. 이게 사람들에게 아주 잘 먹혀 들어간다.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에 속한 사람들까지 홀딱 넘어간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변방 의식이 발작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즉 국제적으론 변방이니 국내적으론 정반대로 살자는 한풀이 심리가 문화로 정착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가 있는 추론이다. 나는 최근 한국의 입시전쟁 역사를 다루는 책을 쓰면서 우골탑(牛骨塔) 신화 대목에서 그걸 절감했다.

 

촌에서 부모가 농사 밑천인 소를 팔아가면서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낸다. 이 자식은 서울에서 ‘촌놈’이라고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해 출세를 한다. 이렇게 출세를 한 촌놈들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현 한국 지배계급의 절대 다수다.

 

그런데 묘한 게 이 촌놈들의 의식과 행태다. 이들은 자신의 출세를 가능케 한 촌에 보답하는 게 아니라 촌을 배신하고 촌에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촌놈 뿌리를 어떻게 해서건 감추면서 지우려고 발버둥 친다. 이런 촌놈들이 얼마나 될까? 현 지배계급 절대 다수의 절대 다수다.

촌은 두 번 죽었다. 우골탑 세우려고 촌 돈을 서울로 보내느라 한번 죽었고, 그렇게 해서 출세한 촌놈들이 배신을 때려 두 번 죽었다. 지금 그런 촌놈들을 욕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건 기대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한국처럼 서열주의가 전 국민의 유전자화가 된 나라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건 항명이요 하극상이기 때문이다. 강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권의 알파와 오메가는 서열 이데올로기다. 권력집단으로선 민주화 이후 농도가 가장 짙다. 이 정권 사람들은 입장 바꿔 생각하면 죽는 줄 안다. 자신들의 촌놈 과거가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같고, 몸에 밴 자기부정과 자학근성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놈들과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신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정권에 열심히 돌을 던지더라도 동시에 자기 성찰의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평소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열 체제를 당연하다고 여겨온 심성으로 던지는 돌이 얼마나 많이 날 수 있을까? 촌놈이 떠들면 “지방방송 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던지는 돌이 목표물을 정확히 맞힐 수는 있을까? 이명박 정권은 기존 서열 이데올로기를 박살내는 총체적 개혁에 임하자는 뜻으로 자신을 제물 삼은 자기희생에 나선 건가?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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