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http://www.hani.co.kr/arti/SERIES/189/338958.html

 

[강준만칼럼] 기우뚱한 균형 
2009-02-15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개혁·진보 세력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데도 여론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혹 이 물음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철학자 김진석이 내놓은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걸 권하고 싶다.

지난여름 김진석이 그 제목으로 책을 냈을 때, 나는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미 책에 김진석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기우뚱한 균형을 잡는 일은 ‘뻔뻔하고 쫀쫀하고 구차한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각자 자기 진영을 갖고 살아가지만, ‘기우뚱한 균형’은 진영 의식에서 벗어날 걸 요구한다.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반드시 ‘우충좌돌’해야 한다. 왜 ‘좌충우돌’이 아니라 ‘우충좌돌’인가? “이제까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한국의 사회정치적 혹은 이념적 상황을 수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간에 그냥 서 있기만 하려는 중도와는 다르다. “중도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의미로 확보되려면, 오른쪽과 왼쪽 양편의 극단과 부딪치는 일이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김진석의 책은 내내 기우뚱 균형을 잡느라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대단히 도발적인 주장들을 담고 있다. 중도좌파로서 그는 진보세력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강하게 역설하기만 하면 진보진영에서 지지를 누리는 기존 풍토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무리 옳아도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과 보수세력을 상대로 한 정치가 아니라 대중과 여론을 상대로 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진석은 진보세력이 일방적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세속화’와 ‘상품화’를 다시 볼 걸 요구한다. 자기 자신은 세속화와 상품화를 껴안으면서도 사회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기준을 적용해 비판하는 진보세력의 성찰을 제안한다. 김진석은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가슴 아픈 것은 시장자유주의자와 부딪치는 것보다 진보주의자와 부딪친 일이다”라고 토로한다. 진보주의자들의 근본주의적 완고함이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입지를 오히려 넓혀주는 역설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김진석은 한국 사회를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잣대로 후려치는 일은 조심했으면 싶다”며 “한국 사회의 막가는 상황을 비판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비판하더라도 조심하거나 차분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을 지난 세기의 선진국과 비교하면서 거칠게 비판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보시다시피, 이런 ‘기우뚱한 균형’은 그 누구로부터도 환영받기 어렵다. 아니 욕만 먹기 십상이다. 진영이 없으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규합하기도 어렵다.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도 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스트레스’만 줄 가능성이 높다. 양쪽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우충좌돌해야 하니, 그게 어디 사람 할 짓인가.

 

그러나 ‘기우뚱한 균형’이 없이는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진보하기 어렵다. 누가 옳건 그르건 일방적인 완승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양자택일형 옳고 그름을 따지고 밀어붙이는 데에 국민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다. 우리 모두 ‘기우뚱한 균형’을 읽으면서 우리 후손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특히 이명박 정권과 보수세력이 지난 10년에 대한 원한과 그로 인해 뒤틀린 시각을 이제 그만 거두고 상호 존중과 소통을 기반으로 삼는 대타협의 길로 나서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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