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교수가 생뚱맞은 글을 썼다. 자동차의 정체성이라... 

내 생각엔, 한국에서의 자동차는 과소비의 극대화된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된다'고 한다, '애가 둘이면 자동차는 필수'란다. 
참... 웃기지도 않는 서글픈 세뇌작용이다. 

보통 서민이, 차값을 빼고, 자동차를 틈틈이 몰고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일 년에 2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 번 이용하는 택시비를 평균 만원 정도로 치면, 200번이나 이용할 수 있는 돈이다. 실제로 자동차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거리를 택시비로 환산해서 생각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일 년 내내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택시비하고 비교를 하니 실감이 좀 나나? 그렇다. 서민이 몰고 다니기에, 자동차는 너무나 귀하신 몸이 맞다. 적어도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구태여 환경을, 값비싼 석유 원료를, 건강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자동차 처분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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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inmul.co.kr/xroz/sub_read.html?uid=2182§ion=section1

 

한국 자동차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팀 에덴서(Tim Edensor)의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정체성』은 재미있게 읽은 책은 아니지만, 37개의 글 중 24번째 글인 '자동차와 문화'만큼은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다.

 

에덴서는 "사회과학자들이나 문화이론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동차를 무시해왔다"며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묻는다. 그는 "사회학에서 사용하는 '포디즘(Fordism)'이나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 같은 용어들은 현대사회에서 자동차가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온갖 종류의)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가치들과 정체성, 실천들이 대중문화에 가득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와 광고와 소설 속에서 자동차는 욕망과 섹슈얼리티, 이동성, 지위, 가족 활동, 독립심, 스포츠, 모험, 자유, 반항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자동차는 '제2의 천성'이 되었다. 다시 말해 자동차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의식적인 매개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때문에 운전, 도로, 교통 또한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의 일부가 되었다."1)

 

가장 흥미를 끄는 건 민족 정체성과 자동차의 관계다. 좀 세게 말하자면, 자동차에서 민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볼보'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그건 그 어떤 기준으로건 미국적이진 않다. 스웨덴답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발견'이라고나 할까? 그걸 가능케 해준 것도 자동차였다.

 

"민족은 어떤 의미에서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도로 시스템의 확장을 검토함으로써 더 잘 알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자동차가 촉진하는 이동성의 문화로 말미암아 지역 내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광범위한 공간 연결망이 개척될 수 있다. 자동차 사용이 생활화되면서 인간의 거주지가 확장되고,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장소들도 분산되며, 특정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성의 형성도 촉진된다. …… 자동차 운전의 증대는 '느긋한 자동차 여행'처럼 대지의 실제 모습과 역사를 탐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미지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 …… 자동차 덕분에 민족을 응시하게 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2)

 

이게 미국만큼 더 실감나는 나라가 또 있을까. 1952년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 찰스 어윈 윌슨(Charles Irwin Wilson)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국가에 유익한 것은 제너럴모터스에도 유익하고, 제너럴모터스에 유익한 것은 국가에도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상징적·실질적 중요성을 오만하게 설파한 말이다. 1980년에서 1994년까지 일본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의 자리에 올랐을 때 미국인이 겪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외국인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으리라. 이와 관련, 에덴서는 "영국에서 자동차가 엘리트 계층의 소유물로서 배제를 불러일으켰던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진정한 대량생산 제품으로 탄생하고 존재해왔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때문에 미국 자동차는 '아메리칸 드림'이나 '자유 이데올로기'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상징물이다. 미국에서 자동차나 싼 연료를 얻는 것은 하나의 권리로 규정되고 있다. 여기에서 지정학적 책임이나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의무는 고려되지 않는다. ……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흔히, 서부 개척이나 사회적 이동 가능성처럼 이동이라는 은유를 중심에 둔다. 자동차는 미국적 개인주의(즉, 길 위의 자유)를 구성하는 중요한 주제였던 미국 횡단 여행과 모험을 가능하게 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미국 대중문화가 즐겨 다루던 단골 소재였다."3)

 

그러나 자동차에 명암(明暗)이 없을 리 없다. 자동차의 어두움은 곧 진정한 '자동차 공화국'이라 할 미국의 어두움이다. 에덴서는 "자동차가 미국인의 정체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을 위협받고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에 대한 두려움, 생태적 피해, 마초들의 변치 않는 문화, 개인화된 경험, 도시의 격리, 다른 이동성의 소멸 같은 것들은 자동차가 지배하는 사회의 폐해로 여겨지고 있다. 루거(Stan Luger)는 자동차와 자동차산업이야말로 기업권력이 어느 정도까지 미국의 경제, 정치, 문화를 부정적인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4)

 

부정적인 정도를 넘어서 추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순전히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공공교통 시스템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세계적 환경문제의 '재앙'으로 만드는 데에 앞장서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이제 이미 그런 체제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이 환경 친화적인 변화에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리라.

 

한국은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땅 덩어리가 넓지도 않으면서 미국을 흉내 내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도 같지만,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수출 공화국'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서 자동차의 정체성은 외적으론 '수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내적으론 '지위 구별짓기'라고 할 수 있다.

 

'수출 민족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입증해 보인 이는 단연 김동길이다. 김동길은 "내가 정주영 씨를 한국의 거인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인가 캐나다 강연을 가서 때마침 그곳에 상륙한 현대자동차의 포니 승용차를 목격한 그때부터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포니 승용차 안에 타고 있던 백인 젊은이들이 "가서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피조물"이었으며, "정주영은 한국인 모두에게 긍지를 심어준 민중의 영웅이다"라고 주장했다.5)

 

'지위 구별짓기'를 범죄를 불사해가며 피로 입증해 보인 이는 어느 볼보 소유자였다. 1995년 10월 충남 아산시 군포면 국도에선 볼보 승용차와 프레스토 승용차가 추월경쟁을 벌이다 볼보 승용차에 탄 사람이 공기총을 쏴 프레스토 승용차를 탄 사람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서열이 한참 낮은 프레스토가 감히 볼보에 도전하는 걸 참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강준만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2009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  주  |------- 
1) 팀 에덴서(Tim Edensor),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정체성』, 이후, 2008, 287∼288쪽.
2) 팀 에덴서(Tim Edensor),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정체성』, 이후, 2008, 307∼308쪽.
3) 팀 에덴서(Tim Edensor),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정체성』, 이후, 2008, 316∼317쪽.
4) 팀 에덴서(Tim Edensor),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정체성』, 이후, 2008, 321쪽.
5) 『신동아』, 1992년 9월호.  
  
2009/03/18 [18:00] ⓒ인물과사상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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