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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는 '인터넷 낭인'들의 꼭두각시인가" 
[진중권 칼럼] 유인촌 장관에게 묻는다
기사입력 2009-06-02 오후 3:10:30

 

2학기 때 강의를 안 했으니, 연봉의 절반을 내놓으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많이 한가한 모양이다. 국민 혈세로 지불하는 근무 시간을 이런 개그로 때우다니.

 

보도를 보니 나에 대한 의혹은 <와이텐뉴스> 앵커가 '듣보잡'이라 칭한 모 씨가 처음 제기한 것이고, 모 씨는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한 학생의 제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 내가 아는 것 같다. 성적 정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 전화를 걸어 "F 받아서 졸업 못하게 됐다"고 징징대던 그 친구. 답안지를 보니 너무나 처참해서, 정정 기간 안에 왔어도 도저히 F 외에 점수는 못 줄 지경이었다. 우습지만, 이게 그 모든 해프닝의 발단이다.

 

객원교수 계약의 조건

 

내 기억에 따르면 한예종과 객원교수 계약을 할 때, 그 쪽에서 내게 맡긴 임무는 강의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2학점짜리 강의 하나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얘기된 것은,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지향하는 UAT 사업과 관련한 이론적 연구 및 연구원 교육이었다. 채용 계약서에도 그렇게 명시돼 있는 것으로 안다. '객원교수 추천'이라는 문서에는 나를 채용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협동과정 강의 및 미래교육준비단 내 통섭 교육 과정 연구 및 통합 세미나 운영(책자 발간)과 국제 심포지엄 추진, LAB(예술과 놀이 등) 관련 연구 업무의 추진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객원교수를 추천하오니,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갖고 있는 '객원 동의서'에도 '객원 조건'으로 다음 두 가지가 명시되어 있다.

 

가. 협동과정 예술사 과정 강의 (학기당 2학점)
나. 미래교육준비단 LAB 사업 연구

 

객원교수로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이처럼 문서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문화부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객원교수로서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역시 감사 과정에서 문서로 문화부에 공식적으로 통보된 것으로 안다. 당시에 제출한 '교수 연구 업적'이라는 이름의 문서에는 2008년 한 해 동안 내가 객원교수로 했던 활동의 대강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계약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문화부 감사관들은 도대체 글자도 못 읽는 문맹들이란 말인가? 털어도 털어도 안 나오니, 돌아가 장관님 뵐 면목이 없었던 모양이다.

 

객원교수로서 나는 협동과정 강의를 했고,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통합 세미나를 운영했고, 이 세미나를 위해 3권의 자료집(<정보미학과 생성미학>, <언캐니 밸리, 로봇의 미학>, <isAT 2008 인터뷰 및 세미나를 위한 자료>)을 만들어 가철본으로 발간했다. 모든 조사와 번역은 별도의 인력이나 비용의 지원 없이 혼자 했다. 가을에는 국제심포지엄 isAT 2008에서 인터뷰를 조직했다. 이 프로젝트는 제프리 쇼, 로이 애스콧, 사이먼 페니와 같은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밖에 각 랩에서 들어오는 특강의 요구에 응했고, '놀이와 예술' 랩과 더불어 게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했다.

 

출판 사업은 취미 활동?

 

그 동안 내가 행한 연구 및 교육, 그리고 국제 심포지엄 인터뷰의 성과는 두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하나는 작년에 출간된 <컴퓨터 예술의

탄생>으로, 문화부 주최 '좌파 사냥 대회'에 사냥개로 나선 인터넷미디어협회(인미협)의 추정에 따르면 이런 책을 만드는 데에는 약 2000만원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5월 29일에 출간된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으로, 이 책은 분량이 앞의 책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따라서 그들의 계산법에 따르면 이 책의 제작에는 3000만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다른 것을 다 빼고 이 두 권의 책만으로도 내가 객원교수로 받은 연봉을 가볍게 상회한다.

 

자기들이 그렇게 사니까 남들도 그렇게 산다고 믿는 걸까? 인미협에서는 이 사업에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공금 횡령 혹은 유용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하게도) 나는 이 책들을 국가 예산 한 푼 안 들이고 만들어냈다. 원고 작성에 드는 비용은 내가 부담했고, 책의 제작에 드는 비용은 출판사가 부담했다. 이는 상업 출판이 가능하도록 결과물의 질을 충분히 높이는 한편, 출판계에서 내가 가진 브랜드 가치를 적극 활용한 결과였다. (참고로, 2004년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출판인들을 상대로 한 '국내외 저술가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 나는 '인문 2위', '예술 2위', '정치사회 3위'에 올랐다고 한다.)

 

교육하고 연구하여 결과물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 객원교수 활동이 아니라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래교육준비단'의 명의를 달고 나온 UAT 총서는 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유령? 아마도 강의 외에 내가 계약 조건에 따라 수행한 다른 활동들은 객원 활동으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둘러댄다 해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논리라면, 출판 사업은 객원교수로서 나의 공적 활동이 아니라, 나의 사적 취미 활동이 되는 셈. 그게 사적 활동이라면, 왜 공적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참고로, 문화부에서는 심지어 출판사로 직원을 보내 출판 계약서까지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갔다.

 

문화부에서도 나를 털 만큼 턴 것으로 안다. 감사 과정에서 학교 측을 통해 내게 출판 사업에 관해 다양한 질의가 들어왔고, 거기에 답변을 한 바 있으니, 이제 와서 나의 출판 사업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출판사에 사람을 보내 출판 계약서까지 카메라에 담아가 있으니, 그 사업이 객원교수의 공적 활동이 아니었다고 둘러대지도 못할 것이다. 이 출판 사업을 통해 내가 국가 예산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창출한 가치가 '인미협'의 자체 추정으로 따르면 5~6000만 원. 표창을 받아도 션찮을 판에, 예산 안 갖다 썼다는 이유에서 왜 횡령이니 유용이니 하는 의혹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의에 대해서

 

2학기 강의를 왜 안 줬을까? 객원교수는 총장이 지정하는 교과목을 맡게 되어 있다. 그런데 2학기 때에는 이상하게도 내게 교과목이 지정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2학기에 국제심포지엄 때문에 내 업무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여 강의 부담을 경감해준 학교 측의 배려일 가능성. 둘째, 모종의 압력이 들어와 내 이름이 들어간 강의를 못하게 했을 가능성. 당시에도 이미 주요한 이유가 '후자'라고 짐작하고, 이를 '교권 침해'로 여기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황지우 총장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내가 강의하지 말라고 했다. (감정에 겨운 듯 얼굴이 약간 구겨졌다.) 진 교수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통섭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객원교수로 1년간 채용했다. 진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촛불 때 진 교수의 '활동'이 있었다. 정부가 진 교수를 껄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당시 나는 통섭 관련 예산을 확보하려고 구걸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내가 결정했다. 2학기 강의는 하지 말고, 통섭 프로젝트만 집중해달라고 했다. 객원교수에겐 강의만이 아니라 연구기획 역할도 있다. 그가 받은 돈은 정당하다." (<한겨레 21>, 2009년 5월 29일)

 

황 총장이 2학기에 내게 강의를 배정해주지 않은 것은, 촛불 때 내가 했던 '활동'으로 인해 정부에서 "껄끄러워하는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란다. 당시 한예종은 문화부에 통섭 사업의 예산을 구걸하는 입장이었고, 그 때문에 내게 강의를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백 번 양보하여 이를 계약 위반이라 하자. 그럴 경우에도 계약을 위반한 쪽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학교 측에서도 인정하는 사실.

 

김홍준 한예종 기획처장은 "진 교수는 강의와 연구를 포함해 포괄적으로 계약을 한 데다 2학기 강의의 경우, 한예종에서 강의를 개설 안 해 준 것이기 때문에 따져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2009년 5월 26일)

 

계약을 위반한 측에서 계약을 지킨 측의 급료를 환수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문화부 관료들의 아이큐가 두 자리를 넘는다면, 이걸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문화부 최종학 감사관은 한예종에 내 급료의 절반을 환수하라고 명령하고, 이를 슬쩍 언론에 흘렸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내가 급료를 '부당 수령'했다는 마타도어를 퍼뜨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정도만 하면 그 다음은 보수 언론이 알아서 해 준다. 아니나 다를까. 문화부에서 슬쩍 흘린 말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에 비교적 크게 보도되었다.

 


▲ 유인촌 장관에게 묻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애먼 사람을 잡지 말고 이번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와 관련해 아래 공식 질의에 답하라. ⓒ프레시안

 

유인촌 장관에게 묻는다

 

이것이 유인촌 산하의 문화부에서 애먼 사람을 잡는 방식이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장바닥 양아치들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듣자 하니 검찰총장께서 수사의 '절제와 품격'을 얘기했단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도 절제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이게 감사인가, 조폭의 행패인가? 이제까지 밝힌 사실에 기초하여, 이번 감사와 관련하여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 최종학 감사관에게 공식적으로 질의를 보낸다.

 

1. 채용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객원 조건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2. 교수 실적으로 보고한 나의 객원 활동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3. 출판 활동이 객원의 활동이 아니라면, 사적 문서인 출판 계약을 카메라에 담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4. 내가 객원교수로 활동하면서 2학기 강의를 거부함으로써 계약을 위반한 적이 있는가?
5. 계약을 위반하지 않은 이의 급료를 환수하는 게 윤리적으로 온당하고, 법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6. 윤리적으로 온당하지도 않고, 법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요구를 처분 결과에 담은 저의는 무엇인가?
7. 아직 감사 처분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기간이 남아 있는데, 감사 결과를 언론에 흘린 저의는 무엇인가?

 

한예종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번 감사는 철저하게 인터넷 낭인들이 쓴 시나리오대로 이루어졌고, 처분 결과 역시 그들이 창작한 시나리오에 그대로 뜯어 맞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내가 체험한 것과도 일치한다. 일국의 문화적 품격을 위해 이는 매우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문화부는 위의 질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변을 해주기 바란다. 답변이랍시고 인터넷 낭인들이 늘어놓은 허접한 논리를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그것은 문화부가 그 동안 인터넷 낭인들과 같이 놀아났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낭인들의 허접한 기사가 문화부 공식 입장의 '원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기 바란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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