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잘잘못은 가려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동의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현재 실패로 판명되었거나 판명되는 중이고,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모든 관료들과 정치세력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점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된 적이 없었으면 잘잘못을 가릴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딜레마고, 또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라는 점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이 지적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딜레마다.
역사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 하지 않는가? 과거 기업의 해외매각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지 않았으면 어쩌고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추진되었고 그것이 확실히 대한민국을 IMF로부터 단기간에 탈출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약발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 그렇지... 그런데,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당시 누가 알았을까? 몰랐던 것이 죄가 될까? 아니, 혹 예측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당장 나라가 무너져내릴 판국에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대안을 검토/실행할 수 있을만한 "대인배"들이 과연 있을 수 있었을까? 앞으로도.
과거로 소급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이처럼 무의미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 그것도 확실히 잘잘못이 검증되지도 않은 단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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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5498
부두(voodoo) 경제학, 부두 정치를 넘어서
[손호철 칼럼] 쌍용차와 GM대우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기사입력 2009-06-22 오전 7:53:25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 스스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의 저항을 접하면서 이 칼럼(2009년 5월 11일자)에서 박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이명박 정부와 자본에게 해준 충고였다.
곧 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씨의 영결식이 지난 주말에 있었다. 박종태 열사의 명복을 빈다. 박 열사는 그나마 장례라도 치렀으니 다행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묻혔던 또 다른 비극인 용산참사의 경우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어 주검들이 아직도 싸늘한 병원 냉장고에 꽁꽁 얼어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외로운 추모대회를 열어야 했다.
ⓒ프레시안
어디 그 뿐인가? 쌍용차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조치에 반대해 외로운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자동차 산업의 올바른 회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쌍용차 사태의 책임에 대해 응답자중 70%가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을 잘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답했고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절대 다수가 정리해고와 경찰력 투입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기에서 국민들이 매각을 잘못해 책임이 크다고 답한 정부가, 응답자들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노동계와 시민사회 진영의 반대에도 쌍용차를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했다.
쌍용차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GM대우이다. GM대우는 지난해 87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이의 해법을 놓고 4월 부평을의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뜨거운 논쟁을 벌인 바 있다. 한나라당은 2000억 원대의 지원책을 내놓았고 민주당은 GM대우 회생을 위한 6500억 원 추경예산 편성안을 제출했다. 나아가 민주당은 GM대우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의 노조출신인 홍영표 전 FTA국내본부장을 공천하는 등 GM대우의 회생문제를 쟁점화해 지지를 많이 얻었다.
그러나 GM대우, 정확히 말해 대우자동차를 지금의 상태로 만든 장본인은 사실 민주당이다. 아니 민주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김대중 정부이다. 1997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대우자동차 등 여러 한국의 '대표기업'들까지도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와 "지금은 식민지시대가 아니므로 외국자본은 많이 들여올수록 좋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섰고 김대중 정부는 이 같은 철학에 기초해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을 추진했다.
이에 대우자동차 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대위를 만들어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나 역시 당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의 자격으로 공대위의 공동대표로 참여해 반대투쟁에 적극 나선 바 있다.
특히 공대위는 이탈리아의 피아트, 프랑스의 르노도 80년대 위기에 처한 바 있지만 정부가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 기업을 정상화했다는 것을 근거로 해외매각 대신 이와 비슷한 해법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그렇게 해서 위기를 넘긴 르노가 결국 삼성자동차를 인수했다. 반대로 자동차 회사들의 위기를 방치해 영국은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자신들의 자동차 회사가 없는 나라가 됐다. 나아가 오바마 정부도 최근 이 같은 해법을 도입해 GM자동차에 대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이를 국유화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처절한 저항을 폭압적인 공권력으로 진압하고 GM에 헐값에 매각하고 말았다.
그 결과가 현재의 위기이다. GM대우는 지난해 87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그 이유가 매출감소가 아니라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대규모 손실에 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도에 따르면 GM대우의 미국경영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파생상품 거래로 약 2조원의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GM대우가 GM계열사들과의 특혜성 거래로 인한 매출채권(수출하고 받지 못한 대금)이라는 손실도 2조2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GM대우의 미국경영진이 GM대우의 자산을 GM으로 빼돌려 현재의 GM대우의 부실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과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함으로써 현재의 사태를 야기
하는데한 데 큰 책임이 있다. 물론 1997년 IMF위기를 초래해 대우자동차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한나라당역시 이 같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지난 부평을 선거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마치 자신들이 GM대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인 것처럼 선심공약을 내세우며 경쟁을 한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부두(voodoo) 경제학'. 아프리카 부두교의 무당과 같이 시끄러운 굿판을 벌려 요란을 떨지만 과학적 처방과는 거리가 먼 경제정책을 비판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세계적 추세와는
전정반대로 감세 등 신자유주의정책의 심화로 나아가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주술적인 해외매각 정책이 가져온 쌍용차와 GM대우의 비극을 보고 있노라면, '부두경제학', '부두정치'라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한나라당은 대우자동차, 쌍용차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인 1997년 경제위기를 자초한 것에 대해, 민주당은 이 두 기업의 해외매각을 강행해 현 사태를 야기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사실 지난해 터져 나온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김대중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도입했던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김대중 정부의 관계자들의 자기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엉뚱하게도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당의 우경화전략을 들고 나서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 나아가 우리 사회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무비판적인 해외매각 정책에 대한 역사적 성찰에 기초해 GM대우와 쌍용차사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제 '부두경제학'과 '부두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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