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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는 유통기한 30년 지난 '우파의 답례품'
좌파의 재앙이 아니라 국민적 재앙으로 등극한 이명박 대통령
09.06.26 09:45 ㅣ최종 업데이트 09.06.26 09:45 진중권 (angelus)
▲ MB는 '국가적 재앙'? MB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복거일, 자유선진당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전 윤리위원장 인명진.
ⓒ 남소연 이종호 복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파의 선물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시론: 우파(右派)의 답례품' <조선일보> 2009년 6월 14일 자)
소설가 복거일의 말이란다. 이 블랙유머에는 MB라는 암담한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우익의 민망함이 담겨 있다. 결국 '너희도 노무현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대충 비기자'는 거다. 하지만 '500만 조문 인파'를 '떡 돌리는 분위기'와 등가 교환하자는 제안은, 그가 좋아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비추어 봐도 악덕상혼인 듯싶다. 아무튼, 자기들이 봐도 MB가 재앙은 재앙인가보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
복거일에게는 MB가 좌파에게만 골라서 재앙이면 좋겠지만, 분위기를 보건대 지금 그는 좌우를 초월한 국가적 재앙으로 등극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외려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우에 와 있다면 최소한 우쪽에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지금 우쪽에 있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회창.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24일 자)
MB 정권을 지지하거나 지원했던 이들도 그동안 드러난 'MB 본색'에 많이 당혹한 모양이다. 한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이다.
"이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분명 민주주의가 후퇴했는데 후퇴하지 않았다고만 하니 국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절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 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 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를 '악(惡)'이라고까지 불렀던 가톨릭 원로 정의채 몬시뇰. 그는 MB 정권이 출범했을 때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몬시뇰 역시 MB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이 귀국하면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봤지만 개각도 하지 않고 국정 기조도 바꾸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전하니 의외(다). … 왜 이렇게 민심이 떠났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2009년 6월 20일)
한나라당 쇄신위에서는 급기야 MB의 측근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파문을 우려한 원희룡 위원장이 부랴부랴 비보도를 요청했지만, 무슨 일인지 <조선일보>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자기들이 봐도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이 대통령은 듣지를 않는다. … MB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고 그 어떤 프렌들리도 아닌 단지 '캠프 프렌들리'(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문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지지율과 리더십, 두 다리 모두 풀린 '명바라기' 여당"
정부가 그릇된 길을 가면 국회가 견제해야 하나, MB라는 제왕 앞에서 여당의원들은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당'의원이기 이전에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정부에서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면, 국회에서는 '찌꺼기 같은 사람들'이 '찌꺼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지지층 사이에 걱정과 냉소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단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전하는 민심이다.
"(유권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한나라당이 있든 없든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 어렵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걱정과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정몽준 , 한나라, 정당도 아니라는 비판 많아' <연합뉴스> 2009년 6월 22일 자)
정부야 막 나간다 하더라도, 여당은 유권자의 민심을 대리하고 대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민심을 등지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명바라기'가 되었다. 대통령이 조종하는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같은 정당에 정치적 존재감이 생길 리 없다. 지난 22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급기야 여당이 '두 다리가 풀렸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약화는 지난해 총선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 한나라당의 현 상태는 두 다리 즉, 지지기반과 리더십이란 두 다리가 모두 풀리고 있는 국면이다." ('한나라당은 지지율과 리더십의 두 다리가 모두 풀린 권투선수다' <국민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마저 패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선거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서거 1주기와 겹치지 않는가?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MB는 즉시 레임덕에 빠진다. 이 시나리오가 두려웠나 보다. 마침내 <조선일보>에서 MB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정치적 고려 없이 결정한 조각(組閣)이 민심 이반의 출발점이었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통령 정치의 기본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 지금 정계 밖 시중 여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전망을 대단히 어둡게 보고 있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측근형'과 '돌파형'...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 <조선일보>는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자리가 모두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면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는 '측근형'으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돌파형'으로 분류했다. 사진 왼쪽부터 원세훈, 백용호, 천성관, 강희락.
ⓒ 남소연 유성호 원세훈
여기에 올린 첫 번째 글에서 정부운영과 기업운영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하며, '대통령이 국가를 기업으로 착각하다 보니 정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조선일보>에서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이야말로 국정을 헝클어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 이 대통령의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언뜻 비효율적이라고 보이는 정치야말로 각종 이해와 욕구를 수렴해 국민 통합을 이뤄가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위의 사설)
웬일일까? <동아일보>에서도 '정치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읽어 보니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 의미의 파괴를 시도하는 다다이스트의 아방가르드 실험이다. '정치가 없다'는 말을 <동아>는 이렇게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정치는 이런 갈등이 공동체의 균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관리 조정 해결할 책무가 있다. …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일방적 요구사항을 담은 이른바 5대 선결조건을 내세워 국회 개회를 가로막고 있다. … 정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야당들의 횡포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독재이다. ('사설: 정치가 없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그냥 막 가라는 주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과 <동아>의 수준차를 본다. 아무튼 MB의 행보를 놓고, 보수층에서도 이렇게 견해가 갈린다. MB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답은 분명할 것이나, MB가 어디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던가? 그가 내놓은 인적쇄신안을 보자.
"청와대 주변에선 1순위가 '측근형', 2순위가 '돌파형'이란 말이 나온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백 국세청장 내정자는 … 이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분류된다. … 천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천 내정자는 용산참사·PD수첩 사건 수사 등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강 청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 정국' 수습 과정에서의 역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을 해보면서 권력기관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권력기관장 빅4(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MB 뜻 읽는 사람들' <조선일보> 2009년 6월 23일 자)
한마디로, 이번 인사의 메시지는 공안라인을 더 강화하겠다는 얘기. 이를 두고 '기수'를 파괴하는 혁신이라 자화자찬하나, 어차피 MB는 조직 내의 기수서열에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그의 이해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내는 돌쇠들을 '측근' 자리에 앉히는 데에 있다. 기수 파괴의 '혁신'이라는 화장발 아래 숨은 '쌩얼'은 친정체제로 인한 문제를 친정체제의 강화로 돌파한다는 어이없는 역행이다.
청와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이른바 '중도실용론'이라는 것. 이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슬쩍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이를 제대로 꼬집는다.
"이를 근원적 쇄신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됐다. … 국정혼란의 원인은 대통령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 대통령이 중도에 있지 않고 우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니다." ('昌,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이 총재의 말대로,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박정희와 김일성 모델 추종하는 MB의 국정철학
MB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문제는 그의 측근들이 잘 이해한다는 그의 "국정철학"에 있다. 정확하게 그의 '국정철학'은 1970년대 박정희 모델에 사로잡혀 있다. 동시에 그것은 남한에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김일성 모델이기도 하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나타나 국민을 대상으로 카리스마 정치를 펴는 경향이 있다. 이 권위주의적 통치는 물론 아직 자연의 속도에 묶여 있는 농민의 전근대적 신체를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강제로, 기계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그 엘리트 역할을 불행히도 박정희가 이끄는 군인집단이 맡았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그나마 군대는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이미 소총과 기관총, 대포와 함포, 전차와 항공기 등 근대적 기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산업화 역시 결국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기계에 뜯어 맞추는 과정이기에, 그 시절에는 군인적 신체가 산업적 신체를 찍어내는 주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척결해야 할 퇴물 취급을 받은 '군사문화'라는 것이 한때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의 박정희와 북조선의 김일성. 남북한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두 인물의 특징은 '현장정치'를 좋아했다는 것. 박정희는 농촌이나 산업현장 시찰을 좋아했고, 김일성 역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교시를 내리곤 했다. 대통령이 모내기해야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령님이 교시를 내려야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닐 게다. 그것은 '가장 높은 권위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강림 드라마로 인민을 감동시켜 생산에 동원하는 일종의 선무활동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림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가 생색을 내봤자, 괜히 폐만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장 방문을 앞둔 부대 분위기는 다들 경험해 봤을 게다. 실제로 한 일주일간 아무 일도 못한다.) 반면 MB는 유난히 '현장정치'를 좋아한다. 현장감독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제 정치적 이상을 박정희라는 '산업화 영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제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MB도 제 형상대로 공공기관장을 찍어내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자.
"종합해보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한 기관장들이 상당한 감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년에 100건에 이르는 직원과의 만남을 가진 CEO, 100번 정도 현장을 돌아다닌 도공 사장' 등이 우수 사례로 꼽힌 점을 고려하면 이번 평가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장과 수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스타일'이다." ('공공기관장평가=충성도 평가?' <아이뉴스> 2009년 6월 19일 자)
누군가 책상에 앉아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 현장에 내려가 부하직원들 귀찮게 한다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일 잘한다' 할 것이다. 이게 다 외국에서 만든 수입기계에 맞추느라 신체를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던 시절의 잔재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번 위기를 맞아 청와대에서 서민 행보를 강화하겠단다. 기사의 부제가 재미있다. "가슴 뭉클 서민 행보 부각."
"현장 행보를 집중 부각시키는 '감성 코드'는 청와대가 준비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다. 청와대 직원들은 지난해 '이 대통령의 가락시장행과 박부자 할머니의 눈물'을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이 같은 가슴 뭉클한 현장 행보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법치-서민 투트랙에 감성 접목' <헤럴드경제> 2009년 6월 23일 자)
▲ 2008년 12월 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노점에서 우거지 파는 할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왼쪽)과 "이명박 김일성 히틀러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오른쪽).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이명박
청와대 직원들이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은 그 장면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즐겨 연출하던 장면이기도 하다. 가령 남한 가락시장의 사진과 북한 군부대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소프트웨어"는 "가슴 뭉클한" 북한식 "감성 코드"였다. 청와대의 마인드가 산업화 초기에 꽂혀 있다 보니, 정서와 취향 역시 복고풍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MB의 "국정 철학"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고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MB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
MB는 박정희를 꿈꾸나, 그는 절대로 박정희가 될 수 없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경제가 돌아가던 시대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처럼 근대화의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 소말리아나 짐바브웨 국적을 취득할 일이다. MB는 자신이 박정희 비슷한 계몽군주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온 사회가 디지털로 이행을 완료했는데, 그는 저 홀로 산업화 영웅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산업화의 로망(浪漫) 속에 사는 디지털시대의 돈키호테다.
박정희 그룹은 나름대로 선진적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농민이던 시대에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경제적 적합성'은 갖추고 있었다. 그 정권이 정당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지됐던 것은 경제적 적합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고도성장은 결국 그의 무덤이 되고 만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관치경제가 시대착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그의 통치가 경제적 적합성마저 잃는 순간, 그는 부하에게 제거당하고 만다.
MB는 어떤가? 한국사회는 이미 산업화를 넘어 탈산업 사회로 이행했다. 고졸자의 87%가 대학에 가는 초고학력 사회, 최고의 IT 인프라를 가진 정보사회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에 사는 게 바로 MB 그룹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상상력이 가장 낙후한 세력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있지만, 산업화 초기의 모델에 갇힌 그들의 통치에는 '경제적 적합성'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그러니 '타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게 국민의 답답함이다.
경제는 2~3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경제지표들 여전히 2∼3년 전 수준'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빅딜'은 허망한 망상으로 드러났다. 감세로 괜히 재정만 악화시켜 놓고, 수십 조의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디어법으로 새 일자리 2만6천 개를 만든다 하나, 그 말을 믿으려면 IQ가 유인촌이어야 한다. 미디어는 광고를 먹고 살고, 광고시장은 한정되어 있다. 숟가락 개수를 늘린다고 밥이 느는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는 '4대강운하' 하나뿐인데, 워낙 시대착오라 실현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좌초하면 정권은 식물인간이 된다.
거국적 반대를 뚫고 시대착오적 경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다 보니, 정치도 개도국 수준으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 하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누렸다. 그러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자 민주를 돈 안 되는 허망한 가치로 여기고 MB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살리라는 경제는 못 살리고, 멀쩡히 누리던 민주적 권리만 빼앗아간다. 그러니 국민은 황당할 수밖에. '가시적' 성과를 좋아하는 MB. 유감스럽게도 그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뿐이다. 거리에 널린 전경들을 보라.
디지털의 경쟁력은 참여와 자율의 창발 효과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사회를 '매스게임'에 비교해 보자.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령 북한의 매스게임을 보자. 그 게임은 한 사람(혹은 몇 사람)이 머릿속으로 기획한 것이다.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 기획한 그 프레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들 몸을 맞춰야 한다. 이런 매스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두뇌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족이 된다. 이게 MB가 꿈꾸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리라. 하지만 지도자가 '인풋'한 것을 인민들이 그대로 '아웃풋'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한 개인이 가진 두뇌용량의 한계에 갇히게 된다.
다른 유형의 매스게임도 있다. 천수만 새떼들의 비행. 새들은 누가 명령하거나 지도하지 않아도 하늘에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려낸다. 촛불집회가 그것을 닮았다. 지도하거나 명령하는 사람 없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체적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를 '창발'(emergence)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형의 집회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토대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다. 정보화 사회의 경제는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머리들의 창발 효과를 통해 발전한다. 디지털의 경쟁력은 바로 개별 주체들의 참여와 자율에서 나온다.
여기서 MB의 리더십이 얼마나 시대착오인지 보게 된다. 아직도 그는 2주일에 한 번 공중파에 나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는 이를 '국민과의 대화'라 부른다. 솔직히 이런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되어야 한다. 굳이 해야겠다면 대학로에 소극장 빌려 모노드라마를 하면 되지 않는가. (연출은 유인촌씨가 맡는 게 좋겠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뒤를 잇는 '파란 명박의 고백'은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정도는 감동시킬 것이다.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간 MB
MB는 대체 왜 저렇게 뻣뻣하게 굴까?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인간이 기계 앞에서 일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기계가 상수였다. 즉 일단 기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의 동작과 속도에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뜯어 맞추었다. 그것은 물론 군대식 훈육과 숙련을 요하는 일이었다. 반면, 인간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상수가 된다. 예를 들어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디자인에서는 외려 컴퓨터를 섬세하게 인간의 신체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초기에 남한의 박정희와 북한의 김일성이 공히 '인간개조'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이렇게 인민을 권력자에 뜯어 맞추는 게 산업화 초기 정치다. 정보화 사회는 물론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국민의 참여와 자율을 강조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MB는 어떤가? 그는 꿋꿋하다. 자신을 상수로 놓고 국민을 변수로 간주한다. 국민이 자기에게 맞춰야지, 자기를 국민에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 지금 디지털 국민들은 MB의 산업적 신체에 뜯어 맞춰지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다.
얼빠진 언론이 만들어낸 자수성가 신화에 스스로 도취해 MB는 나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맹점을 통해, 그의 개인적 불행은 곧 국가적 불행이 된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히틀러의 말이 졸지에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 한국의 정치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힌 사내의 개인적 로망에 갇혀 버렸다. 2MB. 괄호치고 확장불가. 졸지에 이게 우리가 아직 3년 반 동안 들어 살아야 할 세계의 최대용량이 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피에쑤)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복거일씨, 착불로 반송합니다. 유통기한이 30년이나 지난 걸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덧붙이는 글 | 매우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네이트'(거기에도 쪽글이 수백에서 수천 개까지 붙었다.), 혹은 블로그와 사이트에서 읽은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실 이명박 개인을 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저러는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그가 왜 대통령으로 뽑혔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게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다.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작은 할 일을 찾아보자. 이 글은 카피레프트, 맘껏 퍼가도 좋다. 하루 종일 걸려서 쓴 글이다. 힘들게 쓴 글이니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원고료 대신에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은 실천으로 보답해주셨으면 좋겠다.
세 번째 글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계속된단다. 두어 번 더 연재되려나?
진중권 교수가 '카피레프트' 즉, 오마이에서 직접 글 읽고 원고료 보태주는 것이 의미없다고 선언했으니 계속 퍼와서 예전처럼 실어놔도 되겠지만, 이제부터는 링크만 남겨놓고 숨기련다. 눈 감고 아웅하는 짓인 줄은 알지만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 ^^;
이런 명문은 널리널리 원문이 읽혀지고, 원고료도 팍팍 올라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원고료를 지불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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