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문학사상사 (2000-11) (읽음: 2001-08-03 10:22:20 AM)
- 무라카미 하루키
- "고베는 일본 효고 현의 국제 무역도시로, 1995년 긴키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의 피해가 가장 컸던 도시다. 섬나라에 사는 일본인들이기에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저하게 훈련을 하고 준비한다지만, 대자연의 가혹한 재앙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진의 여파에 따른 화재, 건물 붕괴로 인한 압사자, 교통 사고 등 6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베 대지진. 그것은 일본인들에게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와 상실에 대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하여 일본의 문예지에 <지진 이후에>라는 제목으로 연재해 온 단편 다섯 편을 다시 손보고, 새로이 한 편을 추가해 엮은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집이다. 하지만 여섯 편의 단편 모두 지진 형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역과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지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도 거의 없으나, 지진 현장에 대한 상상이나 기억이 구심점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일본의 비참한 상황이나 피해자들의고통이나상실의 아픔, 또는 피해의 수습을 논하고 잇는 것만은 아니다. 즉 이 작품은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이나, 전혀 인간의 의지나 정황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한순간에 엄습해 오는 돌연한 재앙으로 불행을 겪게 된 사람들의 총격과 아픔 그리고 어떤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을 앞세워, 지진과 같은 큰 재난이 불러온 고통이 개개인들에게 어떻게 내면화되고 극복되며,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탁월한 하루키 자신이 스토리 텔러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그리고 섹스와 주제를 종래의 l인칭적 영역을 벗어나, 처음으로 3인칭의 시야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개입 자세를 보여 준 사실이다. 고베 대지진은 결국은 타자들에게 일어난 재해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외관상 아무 관련이 없느 것 같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개인들에게 타자의 고통은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또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실의 저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그 무엇이 현실을 조종하고 현실의 틀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한다.
<쿠시로에 내린 UFO>
닷새동안텔레비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고베 대지진 뉴스만을 정신 없이 듣고 있던 아내는 돌연 행방을 감춘다. 남편과 텅 빈 생활을 계속 할 수 없다고 친정으로 영영 돌아가 버린 아내를 찾을 생각도 없이 주인공 고무라는 아내의 이혼 신청을 받아들이고 만다. 회사 동료의 부탁으로 그의여동생에게 ‘텅 빈 상자’를 쿠시로에 가서 전달하는 고무라. 그 여동생과 함께 온 친구 시마오 양과 러브 호텔에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하나, 발기 불능으로 실패하고 만다. 고무라의 머릿속에는 참혹한 지진의 광경이 가득 차 있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구요”라는 시마오 양의 불가사의한 주문과 같은 격려의 말과 함께 <쿠시로에 내린 UFO>는 끝나고, 다음 작품인 <다리미가 있는 풍경>으로 인계된다.
<다리미가 있는 풍경>
미야케라는 중년의 화가와, 여고 때 학교가 싫어 가출해, 게이스케라는 청년과 동거하고 있는 쥰코가 모닥불 앞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미아케는 아내와 아들이 지진이 일어난 고베에 살고 있다는 말을 살짝 비치지만,더이상 얘기를 하지 않는다. 미야케는 자신이 최근에 그린 그림 <다리미가 있는 풍경>의 다리미는 다리미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주인공 요시야는 열여덟 살밖에 나이차가 없는 미혼모인 모친과 살고 있다. 모친은 자살 일보 직전에 한 신흥종교 간부인 다바다가 구원의 길로 이끌어 광신적인 신도가 된다. 요시야는 모친이 여고시절 세 번째 피임의 실패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세 차례에 걸쳐 완벽한 피임을 했는데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신’의 아들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느 날 모친은 요시야의 출생의 비밀을 말해 주면서, 산부인과 의사인 그 부친의 오른쪽 귓불이 개에게 물어뜯겨져 나갔다고 말해 준다. 요시야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오른쪽 귓불이 없는 사람을 만나 그를 미행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구장에서 몇 번인가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한 끝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
여의사인 사쓰키는 그 남자가 지진으로 파괴된 집더미에 묻혀, 죽었으면 하고 소원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버리고 뱃속의 아이를 지우게 한 데대한원한이라고 시사한다. 그녀는 휴가차 온 태국에서 안내인인 니밋의 소개로 점쟁이 노파를 찾아가는데, 그 노파는 사쓰키의 마음속에 도사린 돌을 삭히지 않으면 곧 죽게 된다고 말한다. 사쓰키는 자신의 비밀을 니밋에게 말하지 않았고, 니밋 역시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남자의 수수께끼로 남겨진 채 끝까지 풀리지 않고, 모든 건 불명의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길이 2미터나 되는 거대한 개구리가 신용금고에서 빚 독촉 일을 맡은 독신의 40대 남자 가타키리에게 다가와, 고베의 대지진에 촉발되어, 도쿄에도 괴멸적인 대지진을 일으키려 한다는 지하의 지렁이 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뒤에서 응원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가타키리의 사양에도 개구리 군은 한사코 그를 설득하고, 마침내 개구리 군의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벌꿀 파이>
인기 작가 쥰페이는 대학시절에 친구로 지내던 다카쓰키와 결혼한 여자친구 사요코를 잊지 못하고 늘 그리워한다. 결혼 후 사요코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과 멀어지고 쥰페이와 자주 접촉하는데, 그녀의 딸 사라는 고베 지진 보도에 영향을 받아, 지진아저씨가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사요코의 남편은 쥰페이에게 자기 아내와 결혼해 줄 것을 권하며, 이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쥰페이와 사요코는 섹스를 하게 되고……. 쥰페이는 사요코와 사라를 지키며 지금과는 다른 소설을 쓰자고 다짐한다.
하루키는 조심스럽게 인간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일 수 있다는 깨달음에 대해 말한다. 이 작품은 문학적인 의미와 가치에 있어서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읽는 이에 따라 또 시야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독법이 있다는 것이 이미 일본 문단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발간 4개월 만에 벌써 모든 문예지와 일간 신문 등에 거의 빠짐없이 이 연작소설의 신간평이 게재되었고, 이 작품을 중심으로 해설 평론 대담 등을 엮어 낸 한 권의 단행본도 발간된 사실은 하루키 작품의 풍부한 작품성을 말해 주고 있는 예이다." (인터파크 책소개글)
-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이란다. 비슷한 주제와 배경을 가진 단편 6편을 모아 책 한권을 구성했다.
[쿠시로에 내린 UFO],
[다리미가 있는 풍경],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벌꿀 파이]
정말로! 제목은 그 내용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아니, 관련이 있긴 하지만 '제목=주제'로서의 관련 만큼은 전혀 없다. 그것이 하루키 소설의 특징인 것 같다.
- 개인적으로는 하루키 류의 '자폐증'적인 글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이나 '노르웨이의 숲'등등... 책을 읽고 나서도 책 한 권 읽었다는 뿌듯함마저도 생기지 않는 엿같은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고.
- 이번 연작소설은 '자폐증'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키의 매니아들로서는 그리 탐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발전'이다. 개인에서 사회로 눈을 돌렸다고 많은 비평가들은 얘기하지만, 그런 느낌은 소설 속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고베 지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 무슨 사회로 눈을 돌린건가. 그렇게 따지면 기존의 하루키 소설들은 60~70년대 일본 전공투,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나. 그건 그럼 사회로 눈을 돌린 것이 아니란 말인가. 쳇.
- 결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똑같다. 짜증 난다.
- 꼭 긍정적인 점 한 가지를 더 들라면, 앞으로는 조금씩 더 '자폐'에서 벗어나 '사랑'과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쓰겠다는 하루키의 다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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