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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3월 26일] '철새'가 희망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선, 총선 등 각종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도지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있다. 이름하여 ‘정치 철새 증후군’쯤이 될까.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평소의 신념과 언행을 뒤집은 뒤 이당 저당으로 옮겨 다니는 이 같은 행태는 특히 이번 대선에서 도를 넘은 듯하다.”(경향신문 2007년 12월 15일자)
“선거철 ‘철새’ 정치인들은 이번 한나라당의 공천 신청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는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 때 정책을 주도하던 고위 관료도 적잖이 포함돼 있다.”(한겨레 2월 15일자)
■ 연고주의에 얽매인 한국정치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치 철새’에 대한 비판이다. 기회주의적 정치인을 ‘철새’라 부르는 건 진짜 철새에 대한 모독이라는 반론도 적잖이 제기되었지만, 이 용어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역설이지만, ‘철새’야 말로 한국정치의 희망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우리는 서양의 정당 정치를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굳게 믿고 있다. ‘정당 정치’란 ‘가치 정치’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선 ‘연고(이익)’가 ‘가치’를 압도한다. 우리는 연고주의를 배격한다는 가면만 쓰고 있을 뿐 실제 생활에서 연고주의를 배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늘 공적으론 연고주의 비판에 앞장서는 신문들이 매일 각종 연고 모임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는 게 그 좋은 증거일 게다.
열린우리당의 전성시대에 전북 전체 유권자의 10%가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이었으며, 열린우리당 전체 기간당원의 20%가 전북 당원이었다. 전북인이 특별히 정당정치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벌어진 일인가? 아니다. 대부분이 연고에 의한 모집이었던 바, 그만큼 연고주의가 강하다는 걸 스스로 폭로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코드 정치’는 이론적으론 그럴 듯해 보였지만, 상당 부분은 ‘밥그릇 싸움’의 문제였다. 높은 자리 준다는 데 코드 안 맞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향신문 2007년 10월 26일자는 한 대학교수의 말을 인용해 “사석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경멸하고 증오하던 한 지식인이 참여정부에 들어가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충성과 아첨을 더 열심히 하고 밖으론 더 과격하게 행동함으로써 정권의 자기성찰을 방해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구 정권 인사 퇴진론’도 그 본질은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이런 주장이 한국엔 ‘가치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한국은 ‘가치 정치’가 과잉이라서 문제다. ‘이익’을 ‘명분’으로 포장하는 게 극단으로 치달은 나머지, 가치로부터 자유롭고 자유로워야 할 영역마저 가치의 영역인 양 사기를 치는 일이 너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중립영역 넓혀야 정치 정상화
한국사회가 잘 되려면 정치 바람을 타지 않는 중립적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건 정치권의 밥그릇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립 영역의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새 정치인들은 정치권의 그런 음모를 사실상 폭로해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수가 적다면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돌릴 수 있겠지만,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들은 온몸으로 “가치? 그런 건 없다. 다 자기 이익을 위해 시늉만 낼 뿐이다”고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의 밥그릇을 줄이고 정치바람을 타지 않는 중립영역을 넓혀나갈 때에 정치가 기존 의 과부하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다. 정당의 수명은 길어지고, 대학교수와 언론인들이 떼거리로 정치권을 향해 몰려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철새가 더 많이 나와 기존 질서를 전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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