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강준만 칼럼/6월 4일] '이념'과 '인격' 사이에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경박함으로 입만 열면 사고를 쳐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전 시장의 입도 노 대통령 못지않다.…한 마디로, 언제 무슨 말을 해 사고를 칠지 모르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다.”
손호철 교수가 한국일보 2007년 2월 26일자 칼럼에서 한 말이다. 손 교수의 안목이 날카롭다.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쇠고기 파동’에 관한 이야기는 홍수처럼 흘러 넘치니, 차분하게 ‘이념’과 ‘인격’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공적 활동만 옳은 ‘인간말종’들

 

손 교수의 칼럼을 하나 더 소개한다. 5월 26일자에 실린 손 교수의 칼럼 ‘김용갑을 다시 생각한다’에 지지를 보내면서 그 취지를 좀더 발전시켜 볼까 한다. 공론화는 잘 되지 않고 있지만,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극소수 사람에게나마 ‘인간 말종’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공적으론 대단히 호평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까지 누리고 있다. 아니 사적 영역에서도 그 나름의 장점이 많아 이 사람과 부딪힌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손 교수의 선배는 ‘인간 말종’이라는 평가를 낳게 할 만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적인 문제이고 일종의 공적 영역인 운동이라는 면에서는 그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손 교수는 이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안 된 사람이 특정 이념을 가지고 운동을 한다고 해 보아야 그것은 다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얼른 보자면, 손 교수의 선배가 대국적이고 대범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바로 이런 생각이 그간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공적 영역을 지배해 온 주류 정서이자 원리였다. 이런 원리에 따라 ‘작은’ 문제는 늘 ‘큰’ 문제에 압도 당한 채 그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다.

지금도 수많은 정치ㆍ운동의 현장에서 다양한 주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이른바 ‘진영주의’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상대 진영의 내부 고발은 반기면서도, 우리 진영의 내부 고발은 금기시하는 것도 그런 논리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ㆍ운동이 늘 안으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상대편의 잘못에 의해 득세함으로써 ‘반작용의 악순환’ 게임을 벌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영주의 앞에서 도덕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정쟁(政爭)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주요 이유다. 진영의 지지와 열광은 가장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투사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진영의 피를 끓게 만드는 데에 유능한 사람이 영웅이다. 그 사람도 자신의 진영이라는 든든한 보호막이 있으므로, 인격 수양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인격은 막대한 공적 영역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인격과 도덕을 따지는 건 사치스럽다 못해 어리석은 일이었으리라. 일제의 가혹한 지배는 외면한 채 개인과 집단의 도덕을 강조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욕을 먹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독립도 하고 민주화도 이룬 오늘에까지 그런 ‘전통’이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인격이 없더라도 이념이나 실적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게 사회 전체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고의 틀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시적 성공을 거둘 수는 있어도 다음 단계에서 무너지고 만다. 이명박 식 실용주의의 함정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격’을 사소하고 사적인 것으로만 여겨온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격과 이념은 같이 가야 한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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