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생뚱맞은 기사가 실렸다. 그나마 요즘 조금 개념 있어 보였던 ZDNet에.

 

(아래 원문기사를 실었다.)

 

화르르 타오른 비판적인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문득 떠오른 생각,

"나는 과연 '일반 프로그래머' 25명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나는 25명의 가치는 못 가졌다고 생각한다. 기껏해야 3~4명? 내 스스로, 아니 내 주위에서는 자타공인 '최고'라고 꼽히는 내가 겨우 이정도라니. '우물 안 개구리'를 절감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세상은 넓다'라고 도전의식을 불태워야 하는걸까?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사고방식은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아니, 이런 연상작용을 일으키게 만든 저 질문, 아니 저 명제 자체가 위험한 것 같다.

 

......

 

다시 한번 원문을 곱씹어본다.

 

"시장조사업체 분석 자료를 보면 슈퍼, 탑 프로그래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프로그래머에 비해 25배의 업무 성능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맺는 결론이 무얼까?

 

"이 정도면 1억원 연봉도 많은 액수가 아니다"

 

이거다.

결국 25배의 업무 성능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1억원을 충분히 연봉으로 줄 수 있다는 거다. 웃기는 이야기다. 1억, 이건 기껏해야 비교대상으로 지목된 '다른 프로그래머'들의 4~5배밖에 안되는 연봉이다. 실제로 25배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25배만큼 주려면 최소 연봉이 5~6억은 넘어야 된다. 고용보험, 퇴직금 등 각종 제경비까지 고려해 보면 훨씬 더 많이 줘도 된다. 겨우 1억이 뭔가?

 

그런데 이 제목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킬거다. 왜냐하면 능력이 슈퍼급이든, 탑급이든 대한민국에서 개발자 대부분의 연봉은 능력과 관계없이 경력 년수의 제한을 받게 되어 있고 10년차 정도된다면 보통 4~5천만원, 아주 잘 받아야 연봉 5~6천만원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을게 틀림없을 것이니까.

 

사실 25배의 업무 성능을 보인다면 25배에 해당하는 보상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 아닌가? 그런데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당연한 사실도 전혀 당연하지 않게 적용되고 있다. 극심한 착취 구조가 일상화되어버린 것이다. 저 뉘앙스를 보라. "1억원 연봉도 많은 액수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고 있는 분위기란.

 

최근 10여년 간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명제가 "20대 80" 이다. 조금 비약해서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의 뛰어난 사람이 80%를 먹여살리고 있다라는. 이 말을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1명이 벌어 4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얘기 또는, 5명 중 1명만이 쓸만한 인재라는 얘기다. 또 뒤집어 생각해보면 뛰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4배 이상의 '업무 성능'을 지니고 있단 얘기도 된다. 그런데 25배라니... 허 참.

 

한 사람의 업무적 능력이 다른 평균적인 사람의 25배가 될 수 있다는 시장조사도 '오버'지만, 그보다 더 '오버'이면서도 위험한 것은, 1억원을 연봉으로 받으면 25배만큼의 업무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거다. 겨우 평균의 4~5배 더 받으면서 25배나 더 일해야 한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걸까? 말하자면 개발자에게 1억원을 주면서 '전천후 만능 수퍼맨'이 되어 시키는 모든 일을 다 해야된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일뿐더러 매우 가혹한 일이다.(개발자들의 현재 처지가 워낙에 열악해 혹 1억원을 준다면 십중팔구는 시키는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할 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게 더 문제다.) 장담하건대, 저 회사에서 혹 운좋게 개발자를 뽑는다 하더라도 그 억대 개발자는 1년 내로 잘리거나, 혹은 때려치우고 나가거나, 스트레스로 과로사할꺼다.

 

아무튼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개발자를 대체 뭘로 보고 있는건가? 개발자는 만능이 아니다. 만능이어서도 안된다. 억대 개발자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현재 산업 구조상 개발자의 "업무 성과를 시간 개념으로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고, 개발자는 "어떤 일을 시켜도 척척 해내는 사람"이 절대 아니며, 결정적으로 개발자가 "소프트웨어 디자인부터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버'다. 꿈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전천후 만능 수퍼맨'이지 개발자가 아니다.

 

개발자는 개발 능력 자체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개발 능력은 코딩, 디버깅, 테스트, 이식, 성능, 분석, 설계의 7가지 능력을 총칭한다.) 그에 따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면 지금도 자연히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뻑적하게 나올 수밖에 없으며 그런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3D의 이미지가 개선될 때 비로소 떠나간 개발자도 돌아올 것이며, 개발자 전반의 질적 수준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현재의 극심한 착취 구조란 말이다.

 

이와 같은 '어긋난 말잔치' 속에서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억대 연봉을 줄 만한 인재가 없더라' 또는 '개발자에게는 억대 연봉을 줘서 일을 시킬만한 가치가 전혀 없더라'라는 식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미 불가능한 기준을 세워놓고 그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속에 숨은 의도는 너무도 뻔하다.

 

"개발자 너희들은 별 투자 가치도 없는 일회용 도구일 뿐이야."

 

소프트웨어 산업이 3D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발자를 '개발자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1억원이든 5억원이든 5천만원이든 액수의 크고 작음 이전에 개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발자를 올바른/적절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고, 그 평가에 맞는 보상을 능력과 역할에 맞게 평등하게, 합리적으로 주는 일이다. 양질의 개발자들이 10년, 20년 자부심을 가지고 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비로소 소프트웨어 산업에 비전이 생기는 거다. 1~2명의 스타 개발자가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IT업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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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090623112446

 

"연봉 1억에 개발자 모십니다"

조봉한 하나아이앤에스 사장, 슈퍼 프로그래머 확보 의지 강조

송주영 기자 jysong@zdnet.co.kr

2009.06.23 / AM 11:35

하나아이앤에스, 조봉한, 1억연봉, 개발자

[지디넷코리아]"억대 연봉 개발자를 모십니다."

 

 
조봉한 하나아이앤에스 사장은 23일 지디넷과의 인터뷰를 통해 "1인당 생산성만 보장할 수 있다면 연봉이 아깝지 않다"며 "연봉 1억원을 보장하는 슈퍼 프로그래머를 채용하겠다"고 말했다.

 

하나아이앤에스는 슈퍼 프로그래머 3~5명을 채용, '슈퍼 프로그래머' 팀을 꾸릴 예정이다. 이 팀은 업계 최고 수준의 애플리케이션, 아키텍터 등으로 구성된다. IT 애플리케이션 품질 콘트롤 타워, 기술 컨설팅, 튜닝 등 프로젝트 지원, 신규 솔루션 연구 개발 작업 등을 하게 된다.

 

슈퍼 프로그래머는 전공, 국적 등을 가리지 않고 채용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차세대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고 C언어 중심으로 미들웨어, DBMS, 아키텍처 등 IT 관련 전반 지식을 갖고 있는 인력은 우대한다.

 

하나아이앤에스는 하나금융그룹, 하나은행, 하나대투증권, 하나HSBC생명보험 등의 IT개발, 운영서비스를 담당하는 그룹 IT 계열사다.

 

금융업종이 상대적으로 타 업종 평균에 비해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지만 프로그래머 연봉 1억원이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은행에서는 고참부장급이 1억원을 넘겨 연봉을 받는다.

 

조 사장은 "시장조사업체 분석 자료를 보면 슈퍼, 탑 프로그래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프로그래머에 비해 25배의 업무 성능을 보인다"며 "이 정도면 1억원 연봉도 많은 액수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나이, 직급, 경력을 따지지 않고 선입견 없이 업무 성과를 시간 개념으로 계산하겠다는 것.

 

그는 "슈퍼 프로그래머는 어떤 일을 시켜도 척척 해내는 사람"이라며 "소프트웨어 디자인부터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나아이앤에스는 슈퍼 프로그래머를 뽑기 위해 내부 인력을 대상으로 면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땅한 인력을 선정하지 못한 상태다. 하나아이앤에스는 외부에도 문을 열어 능력 있는 개발자를 슈퍼 프로그래머로 '모셔올' 계획이다.

 

또 고액 프로그래머의 영입으로 조직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우려, 내부 인력에게도 문을 열어놓고 서로 인정하며 키우는 조직 문화를 형성할 예정이다.

 

조 사장은 "저가로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1인당 생산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로 업계가 변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되는 동시에 3D란 오명을 벗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비용을 투자해 뛰어난 인재를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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