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성당

낙서장 2016. 5. 26. 10:17

이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완전 냉담자에 무신론자가 되긴 했지만

난 거의 가톨릭 모태신앙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영세를 받았으니.


어려서부터 당연히 매주 토요일 오후 또는 일요일 아침이면 성당을 나가야 했고

그 성당은 걸어서 약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겨울이면 추위에, 여름에는 더위에 땀 범벅이 되면서도

어쨌든 부지런히 즐기면서 다녔던 것 같다. 간식에, 주일학교 친구들 만나는 재미도 컸었으니.


중고생이 되어서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큰 법,

학교·동네에서는 전혀 만날 수 없는, 오직 성당에서만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여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설레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참 열심히도 다녔다.


대학 들어가서는

제도권 교회를 넘어서 민중신학, 해방신학과 같은 깊이 있는 "신학"들을 접하면서

예수가 2천년 전, 그 사회 속에서 실제 어떤 입장이었는지,

현재 교회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을 얻게 되기도 했다.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냉담자, 무신론자가 되는 결과가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서부터 성당을 열심히 다녀서 결국 내가 얻게 된 것은

종교, 성경, 그리고 성가(찬송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었던 것 같다.


과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창조설이니 삼위일체니 무염시태니 하는 "신앙"의 측면보다

종교가 서양 역사에 미친 영향과 그 의미를 알게 됐고,

그 역사 속에서 살다 간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서 알게 됐으며,

성가 속에서 수많은 음악 장르, 특히 클래식을 가까이 접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악보,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즐거움도 알게 됐고...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무척 깊어졌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즘 내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집 근처 교회를 다닌다.

성당 말고 교회. 예배당. 프로테스탄트.


냉담자이며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이제 별 관계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성당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물론 내심 못마땅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성당은

아이들 걸음으로는 꽤 먼, 걸어서 약 20분은 걸리는(1~1.5km) 곳에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미어터질 지경인데다 차량 운행도 하지 않았고,

취학 이전의 유년부 아이들 대상으로는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동미사도 일요일 아침 일찍 너무 이른 시간에 있어 보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반면 가까운 교회는

일요일 오전 늦잠을 충분히 자고 나서도 갈 수 있는 느즈막하고 적당한 시간에 하는 데다

집앞까지 차량으로 태워가고 태워다 주는 친절한 택배(?) 서비스도 기본이고

5~6세 미취학 유년부 프로그램도 있어서 평일 유치원 보내듯 마음 편히 보낼 수 있었고, 

또 갈 때마다 뭘 그리 바리바리 선물이며 과자며 많이 주는지 황송할 지경이기까지 했다.

(이건 우리 동네의 그 특정 교회만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러니 어찌, 무슨 대단한 신심이나 굳은 마음이 있지 않고서야

교회를 보내지 않을 도리가 있나!

특히 주말 오전 두어 시간이라도 아이들에게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꼭 "전도"의 측면만이 아니라

육아나 부모 배려의 차원에서도 성당은 이런 점에서 매우 아쉽다.

우리 동네 성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모든 성당이 다 그렇다니까...


결국은 경제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그만큼 너무 쉽게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쉬운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모르겠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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