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돼지털의 아날로그 파일: "이문열의 치졸한 말 바꾸기"

경남 도민일보 - 시사 꼬집기

돼지털

 

한동안 조용히 있던 소설가 이문열 씨가 또 막말을 해 입방아에 올랐다.

원래 그런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그가 한 말을 보자니 '이토록 천박한 역사인식을 가진이'가 어떻게 글로 살아가는지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촛불을 불장난으로 비하하는 것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의병'을 들먹이는데 이르러서는 부화뇌동 곡학아세도 유만부동이지, 이럴 수는 없지 싶다.

그가 "5년이 넘는 중국사 장정"을 끝내고 내놓은 <초한지> '글머리'를 먼저 보자.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의 글과 행동을 비판하며 책을 불태우는 일까지 있었으니, 작가로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만도 했을 게다. 그러나 '홍위병'이라니.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의 글에 반감을 갖는 이들을 '홍위병'으로 불러왔다.

홍위병이란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기에 준군사적인 조직을 이루어 투쟁한 대학생 및 고교생 집단을 일컫는다. 현재로서는 문화대혁명이 중국공산당사에서도 '극좌적 오류'였다는 평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홍위병'도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이문열 씨도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정도의 뜻으로 이 말을 쓴 듯하다.

이번에는, 그가 방송에서 했다는 '의병' 이야기를 살펴보자.

17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한 그는 "의병은 국가가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뿐 아니라 내란에 처했을 때도 일어나는 법"이라며 "홍경래의 난은 지방 관군과 의병 연합군이 진압했다. 이제는 의병과 같은 반대 여론이 크게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그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옳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의병'은 앞서 든 '홍위병'과 그닥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의병은 임진왜란 때와 구한말 일어난 것이다. 

이 씨가 든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의병까지 포함해 예전의 의병은 거의 대부분이 '근왕'을 기치로 내걸었다. 일부 좀도적이 세를 불리니 '의병'이라고 내세운 일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근왕'이 표면적 이유였다. 심지어는 임꺽정이나 동학농민전쟁도 왕조를 갈아엎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얘기지만, 지난 역사이기에 지금의 기준으로 딱부러지게 어느게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홍경래와 우근칙 같은 반란 지도부는 역적이고 이를 진압한 민병은 '의병'이라고 말하는 이 씨의 역사의식 빈곤이 놀랍다.

다시, 대충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민란'을 훑어봐도 고려시대 망이·망소이의 난 같은 일부 천민 반란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나"라며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되겠다고 했을 뿐, 대부분은 왕 주변의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왕이 선정을 베풀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성공하면 충신, 실패하면 역적'이라고 역사를 희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씨가 '홍위병'과 '의병'을 이처럼 달리 쓰려 한다면 뜻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 우파를 공격하면 '홍위병'이고, 좌파 성향이면 '홍위병'이고, 이 씨를 공격하면 '홍위병'이다. 

우파를 지지하면 '의병'이고, 현 정부를 지키는 것은 '의병'이고, 이 씨와 생각을 같이하면 '의병'이다. 

지난 정부를 지지한 젊은이들은 '홍위병'이었는데, 현 정부를 지지해 촛불을 진압할 이들은 '의병'이란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

중국의 홍위병은 모택동을 지지하는 조직이었다. 그렇기에,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에서 이 씨를 공격하는 젊은이들을 '홍위병'이라고 몰아붙일 때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일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촛불 집회를 진압할 '의병'을 주장하는 이 씨의 말은 '우파 정권을 지킬 홍위병이여 일어나라!'는 격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사실 나는 이명박 정부를 우파 정권이라고 보지 않는다.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극좌 오류였다면, 이명박 정부는 '오락가락 기회주의 오류'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씨가 <초한지> 글머리에 썼던 글 끝부분이다.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앙앙불락 지내는 사이에 한 시대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바라노니, 이제 더는 시대의 아이들과 불화하고 싶지 않구나."

불화하고 싶지 않다면, 죽으로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의 천박하고 몰역사적인 세계인식으로 내 놓는 말과 글은, 글쎄 젊은이들의 돌팔매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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