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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고민  
[강준만 칼럼] 

 2008년 10월 19일 (일) 21:24:51 강준만  kjm@chonbuk.ac.kr  
 
 
“리버럴 아메리카도 없고 보수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아메리카 합중국(合衆國)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 아메리카도 없고 백인 아메리카도 없고 라틴아메리카도 없고 아시안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냉소의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아니면 희망의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미국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2004년 7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 연설 하나로 무명의 오바마는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바와 같이 4년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까지 쟁취하게 된다.

 

오바마가 내세운 화합의 메시지엔 명암(明暗)이 있다. 그걸 반기는 이들도 많지만 분노를 표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전통적인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흑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제시 잭슨 목사는 지난 6월 “버락이 흑인들을 폄훼하고 있다”며 “그의 그곳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가 흑인들에게 연설을 하며 실업률이나 재소자, 부동산 문제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도덕적 문제만 언급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며 그렇게 비난한 것이다.

 

잭슨의 비난을 어떻게 평가하건 오바마가 미국인들이 느끼는 피로 현상의 핵심을 건드린 건 분명해 보인다. 막상 선거전이야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치달을망정 오바마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선 그 무엇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고 든 셈이다.

 

그런데 한국엔 그런 피로 현상이 없을까? 오히려 한국이 더한 게 아닐까? 이걸 잘 보여주는 게 민주당의 지지부진이 아닐까? 많은 논객들이 민주당에 대해 이런저런 주문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비켜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성(野性)을 회복해야 한다느니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라느니 등의 주문이 가장 많은 것 같은데, 그렇게 한다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를까?

 

아니 그 이전에 그게 가능할까?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정체성 문제로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였지만 답을 내지 못했다. 구성원들의 생각이 각기 다른데 무슨 수로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으랴. 야성 회복에 대해서도 한가지 목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물론 여기엔 인터넷의 축복과 저주가 가세했다. 종합평가를 하자면 인터넷을 통한 대중의 정치참여는 축복에 가깝겠지만, 당면한 문제에 있어선 과도기적으로 중구난방(衆口難防)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유권자들은 냉소라는 두터운 외투를 걸친 상태다. 부정적 의미로 말하는 냉소가 아니다. 최소한의 자기 보호 메커니즘으로서의 냉소다. 민주당의 부진은 민주당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한국 정치와 공공영역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이렇게 문제 제기가 근본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면 보수파가 더 재미를 보게 돼 있다.

 

민주당이 민주당의 문제를 넘어서 대중의 근본적인 정치 불신·혐오와 싸우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카드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모든 의원들이 문자 그대로 공복(公僕)처럼 사는 감동 작전을 펼치는 것이지만, 그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금배지를 단 목적이 무엇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려고 하겠는가?

 

이런 상황이 진보정당들에겐 절호의 기회지만, 진보적 의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존재 근거가 대중과의 소통에 족쇄가 된다. 오바마식 화합의 메시지도 수사학을 넘어선 구체적 대안으로 입안된다면 해볼만 하지만 수많은 재시 잭슨들이 용납하지 않을 게 분명한 이상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승리가 전부라지만, 세상은 의외로 승리에 무관심하다.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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