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FTA와 흡사한 한-인도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이 체결되었습니다. 해당 협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직종이 바로 SW개발자입니다.
인도는 세계 2위의 12억 인구규모, 젊은 인구분포, 년 8%의 고성장 등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무척 큰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위의 기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인도는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에 수출할 상품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이고, 특히 SW산업이 가장 발달해있죠.
인도에서는 SW산업에 종사하면 좋은 근무환경에서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SW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신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수한 인재들이 SW산업에 많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상을 주도한 인도의 상공장관은 한국의 하드웨어와 인도의 소프트웨어가 결합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죠.
한국은 인도에 가전, 철강, 기계, 석유화학제품 등을 관세 없이(또는 단계적 철폐) 수출하는 대신,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인도는 인력시장의 개방을 가장 강하게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그것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인력시장 개방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이 바로 SW개발자, 엔지니어, 영어 보조교사입니다. 참고로 양국이 민감한 농수산물, 임산물 등은 낮은 수준에서 개방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인도의 SW개발자들이 대거 들어오면 한국 IT업계의 원가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적극 수용했다고 합니다. 한국 과학기술의 중심인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구인할 수 있는 인력의 폭이 넓어지고 단가도 떨어질 것이니 당연히 환영할 것입니다. 반면에 개인은 그렇지 않은 입장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SW산업에서 인도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서 일부 회사에서는 전체 개발자 수의 1/3을 차지할 정도이고 또한 웬만한 SW기업의 VP들을 보면 인도 출신이 꼭 끼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My Job Went to India”라는 서적이 나와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번역서는 이것)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SW산업의 인력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인도에 시장을 개방하였으니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우리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니 그것이 어느 정도 진입장벽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SW개발의 특성상 다른 업종과 달리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아주 큰 장애요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인도 인력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가는, 지금 한국에서 부족한 개발자들이 얼마나 공급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그들의 급여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의 쓸만한 개발자들은 생각보다 몸값이 그리 낮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간 실력차도 많이 납니다. 한국에 들어오는 인력의 품질과 급여수준에 따라 이번 CEPA 체결이 한국 SW산업에 영향도 달라질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개발자들은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낙관하면 당합니다. 인도는 어떻게든 풍부하고 유능한 SW인력들을 한국에 공급하려고 할 것이고, 한국 기업들은 비용이 싸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외에 자동차 1대라도 더 팔려고 하는 것과, 그들이 어떻게든 1명이라도 더 해외로 보내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 외화수입이니까요.
안타깝게도 한국 개발자들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뾰족한 묘안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뻔한 대응 방안일지라도 그 내용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개개인의 기술력 향상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따로 언급하지 않습니다(밤 11시에 퇴근해서 할 시간이 없다고요? 안타깝지만, 이 사회는 개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그 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갖춘다. 이것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에 대한 얘기입니다. 인도 인력들이 못하는 한국어라도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발자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어 말하기, 쓰기 능력이 부족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이나 글로서 최대한 잘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나 기획자, 마케터들이 그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K씨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개발자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그것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소셜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아무리 개발이 좋아도 컴퓨터만 붙잡고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상위 0.1%의 개발자라면 단지 개발만 잘해도(아무리 성격이 나쁘고 사교성이 떨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개발자들에게 이 세상은 처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업계 인맥은 대부분 회사 사람들이다”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세미나에도 많이 참석해서 업계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또는 해고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도움을 줄 지도 모를 일입니다.
3. 자신을 아주 싸게 팔거나 비싸게 팔 수 있어야 한다. 아예 인도 인력들보다 더 낮은 급여를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차별화된 자신의 스펙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중간하면 one of them이 됩니다. 고급 스펙을 구성하는 것에는 학력, 직장 경력, 프로젝트 경력, 수상 경력, 자격증, 특허, 논문 등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사내 또는 업계 인사들 중 롤 모델을 정하고 벤치마크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스펙을 만들어 가십시오.
4. 특정 비즈니스 도메인으로 자신의 경력을 특화 시킨다. 특정 비즈니스 도메인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도메인으로 자신을 특화 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금융업, 유통업(POS), 교육업 등 해당 분야의 프로젝트 경험을 집중적으로 쌓아서 해당 분야의 비즈니스 로직을 잘 이해하고 관련 인맥도 확보함으로써 지속적으로 Job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로직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개발자는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5. 해외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인도 인력들은 자국에서 일할 수도 있고, 미국에서 일할 수도 있고, 이제 한국에 와서도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한국 인력들을 대부분 한국만이 옵션입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경우가 극히 예외적이죠. 그러니 당연히 기본적으로 불리한 게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개발자들도 해외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마인드, 능력을 갖추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먹힐 수 있는 프로젝트 경력, 국제 자격증, 국제 특허, 해외 인맥 등으로 자신을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이 불리한 게임의 룰을 계속 따라야만 합니다. 자신을 팔 수 있는 시장을 글로벌로 확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정합니다. 현실이 삭막하고, 위의 내용은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 사회는 여러분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발자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도, 여러분의 회사도, 그 누구도, 여러분의 자기계발을 지원하고 경력을 관리해주지는 않으니까요.
오직 자신만이 미래를 개척할 주체입니다. 다만,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동료들은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PS: 이번 사안을 계기로, 9월 중에 업계현황 및 경력관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플레이스의 ‘개발자 행사’를 가지려고 합니다. 업계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강의도 듣고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참가희망 인원의 대략적인 파악을 위해, 참석 의사가 있으신 분은 덧글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IT업계는 정치의 불모지라더니, 그 틈을 타 이런 저런 족쇄들이 마구잡이식으로 생겨나고 있다.
개발자 신고제에서부터, 인도 CEPA까지...
MB는 대체 IT를 뭐라고 생각하고, 개발자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삽질만 아는 그의 눈에는 IT와 개발자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이번 일련의 사건들로 서서히 드러나는 듯 하다.
이제 슬슬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의 첨병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한 "개발자"들은 이제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에서 벗어나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할까? 그럴 수 있을까? 과연 개발자들이 정치세력화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