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집권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했을 때 우리는 그 참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 10년이 60년의 민주공화국 역사에서 민주세력이 정치부문에서 주도권을 가진 이른바 ‘민주화된 시대’를 말한다면, 오늘 집권한 세력의 ‘잃어버린 10년’ 발언은 다시 반민주세력의 시대로 되돌아갔다는 선언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는 오늘날에도 버젓이 살아있는데, 민주세력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민주-반민주 대립구도에서 스스로 벗어나 무장해제한 셈이 된다.
실상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이명박 정권 사이에는 고문이라는 반인권 국가폭력 행위가 있고 없고 말고는 별 차이가 없다. 물론 일상적으로 저질러졌던 고문이 사라졌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큰 진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뿐이다. 검찰·경찰을 비롯해 공권력을 총력으로 동원하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일방주의 통치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 언론관련법 밀어붙이기, 세종시 뒤집기,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민주노조 죽이기, 비판·반대세력에 대한 철저한 배제 등 거듭되는 반민주적 통치 행위는 한편으로 시민사회가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에서 스스로 벗어났기 때문에 큰 저항 없이 관철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시절이라면 적어도 대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을 것이며 노동계의 저항 또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져 시민사회의 연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제 부역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이래 한국 사회에서 사익만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은 계속 강고해져 왔다. 그들은 정치부문에서만 10년 동안 주도권을 상실했을 뿐, 경제, 행정, 사법, 국방, 언론, 교육, 지역 등 모든 부문에서 주도권을 잃은 적이 없다. 민주정권이라면 이 부문들의 민주화를 주된 과제로 삼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집권에 스스로 만족하기도 했지만 수구세력의 힘이 워낙 강한 탓도 작용했을 것이다. 두 차례 성립한 민주정권은 그들에 맞서 사회부문들을 민주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대신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면서 이를 우회하거나 봉합하는 데 그쳤다. 가령 김대중 정권은 스스로 용서를 구하지 않은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함으로써 역사의 가르침을 거역했고, 노무현 정권은 일부 수구신문과 싸우기도 했지만 시장에 권력을 내주는 길을 피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반민주 구도는 희석되었다. 그렇지만 반민주 수구세력이 약해진 것은 분명 아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게 막무가내의 이명박 정권이며, 저물어가는 2009년이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절망과 무기력의 해로 남는 배경이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을 낳고, 힘없는 정의는 무책임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백번 옳지만 너무 쉬운 주장이다. 우리에겐 아직 그럴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고 말해야 옳지 않을까. 그 역량을 키우고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먼저 민주-반민주 대립구도를 재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고 결집도 잘하듯, 극단주의자들과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열성적이며 결집도 잘한다. 오늘 스스로 민주를 표방하는 세력이라면 적어도 ‘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주의 자격이 없다고 말해야 할 만큼 엄중한 때라는 점을 지방선거가 있는 2010년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