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재집권 하는 두 가지 길 민주당은 진보 정당들과 합당하거나, 진보 정당들과의 공동 강령을 통해 민중전선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만이 한국을 극보수 정치에서 구해내는 길이다. 2010.07.22 09:42:58
가까운 앞날에 정치적 지각변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직을 박근혜가 움켜쥐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한나라당 주류세력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해도, 그래서 박근혜가 가는 길에 온갖 장애물을 설치한다 해도, 이 ‘선거의 여왕’을 고립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상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를 비주류 지도자라 할 수도 없다. 세종시를 놓고 벌어진 결투에서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청와대를 굴복시켰다. 박근혜는, 정권 전체에서는 비주류 지도자일지 몰라도, 당에서는 사실상의 주류 지도자다. 이명박계가 이 ‘무관(無冠)의 여제(女帝)’를 이기려면 당을 깨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바라지 않는 바다.
설령 정치의 복잡한 파동방정식이 박근혜의 대선 출마를 막는다 해도, 한나라당의 재집권 가능성은 민주당의 정권 탈환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둔 승리가 여권의 오만방자함 때문이지 민주당의 ‘예쁜 짓’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더구나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이명박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나 다른 보수 진영 후보와 겨룬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가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긴 하겠지만, 그것이 보수 정파 후보의 결정적 약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노무현이 잘못해서라기보다 민주당과 그 후보 자신이 무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린 여론이 민주당 패배에 얼마쯤은 기여했겠지만, 그것이 결정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예전처럼 만년 제1 야당으로 남아 극보수 정당의 들러리나 설 것인가? 그게 싫다면 민주당은 제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념 차이는 크지 않다. 세종시나 4대강 사업을 두고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이념과는 큰 관련이 없다. 이렇게 이념이 별다르지 않은 두 당이 겨룰 때, 지역주의가 발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민주당이 호남과 포개지고 한나라당이 영남과 포개질 때, 민주당의 정권 탈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영남 인구가 호남 인구의 곱절도 훨씬 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이기려면, 자신들이 한나라당과 달리 사회적 약자의 편이고 보편적 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강령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진보 정당들과 합당을 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당의 노선은 지금 민주당의 노선보다 훨씬 왼쪽으로 가야 한다. 신당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10년의 집권 기간에 민주당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좌파 세력’이라는 ‘모함’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어차피 그런 마당에 진짜 좌파 정당이 되는 것이 민주당에게는 손해도 아니다. 그 신당이 뭐라 불리든, 이 정당은 ‘좌파’라는 말이 한국에서 지닌 부정적 뉘앙스를 중화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좌파’라는 말을 언중의 머리와 가슴속에 ‘희망’의 상징으로 새길 수 있다.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가고 싶지 않을 길을 가라
물론 합당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각 당의, 또 그 당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이해관계는 통합이 아니라 분열에 더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통합의 길은 민주당이 진보 정당들과 힘을 모아(사실은 스스로 진보 정당이 되어) 꼭 가야만 하는 길이다. 우선은 정권 탈환을 위해서 그렇지만, 설령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진보 정당의 출현은 한국의 정치지형을 크게 바꾸며 정치를 정책의 대결장으로 만들 것이므로.
이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면, ‘플랜 B’가 있다. 합당은 하지 않되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이 최소 공동 강령을 통해 민중전선을 이루는 것이다. 그 경우에도 민주당의 노선은 지금보다 왼쪽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꼭 민주당에서 내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할 것이다. 이 민중전선의 단일 후보가 집권한다면, 그는 범진보 정당을 아우르는 공동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합당이나 민중전선은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길은 지금 야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이 결코 걷고 싶어하지 않을 길이다. 서로 간의 양보와 타협이 있어야만, 다시 말해 정치력이 있어야만 닦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한국을 극보수 정치에서 구해낼 방도는 이것밖에 없다. 무더운 날씨에 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꾼 한여름 밤의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