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 양성(兩姓)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나는 한 때(초창기에) 주변 사람들이 깊이 관여했던 적도 있고 해서 관심이 많았던 적도 있긴 했지만,
이제는 관심사도 아니고, 또 현재 운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해서
간간이 왜곡된, 잘못된 지식에 대해서만 바로잡는 차원에서 댓글을 다는 수준일 뿐인데...
그런데 가끔 그런 분들도 보인다.
- 싫다. 짜증난다. 몹시 불쾌하다. 성(姓)은 우리 고유 문화이자 전통인데 뭐하는 짓이냐. 개또라이들.
- 지금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시대인데 남녀평등이 웬 말이냐.
- 수꼴페미 국썅년들. 여성부 해체(으잉?)
뭐, 생각은 자유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까지는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말이, 글이 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 문제다.
혐오감, 불쾌감이 필터링도 없이 그대로 표현되고, 공공연한 비아냥과 짜증과 비하에,
심지어 잘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남성 역차별"이라는 궤변까지 나온다.
그냥 생각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쯧쯧...
자, 단도직입적인 표현 몇 개 해보겠다.
"시대 참 좋다. 어디 시꺼먼 니그로들이 백주대로를 활보하고 있어? 어우 불결해."
"호모 새끼들이 뭔 결혼을 한다고 지랄들이야?"
"걷지도 못하는 병신노무 새끼가 집에나 쳐박혀 있지 왜 기어나와서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해?"
위에 있는 것과 이것이 뭐가 다른지 곰곰히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다른가?
많이 다른가?
물론 생각하는 것은 자유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한 바를 표현할 자유도 있다.
단,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이 꼭 법적인 제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생각 그 자체만으로야 책임질 일도 없고, 또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지만,
그 생각을 몸 밖으로 꺼내 공공연히 표현을 하는 순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비난받을 발언을 했으면 비난을 감수할 책임이, 매장될 발언을 했으면 매장되는 것을 감수할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내키는 대로 행하고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무한 자유가 용인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똘레랑스"(용인,관용)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똘레랑스, 좋은 말이다. 우리 나라에는 홍세화씨가 거의 처음으로 들여온 개념인데,
모든 일에, 특히 법이나 도덕, 관습 등에서 엄격하게 선을 딱 긋지 않고 어느 정도 여유와 배려를 해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똘레랑스의 범주에 "앵똘레랑스"(비용인, 불관용)도 포함될 수 있느냐 하는 논란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타인에 대해 용인하지 않고, 배척하고 차별하고 적대하는 태도까지도 용인할 것이냐의 문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앵똘레랑스를 허용하고 용인하는 순간 민주주의(똘레랑스) 그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앵똘레랑스에는 앵똘레랑스로 맞서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이미 결론 났다.
인종 차별, 성 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 그리고 여성 차별...
이러한 앵똘레랑스는 똘레랑스(용인)되어서는 안 될, 사라져야 할 민주 사회의 적들이다.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원론적으로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여성 차별 철폐 내지는 완화를 위한 좀 급진적인 수단일 뿐이다. 사람에 따라 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물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반대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비하하고 공공연히 "디스"하면서,
그들을 모독하고 인신공격성 말장난까지 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 차별이기도 하다. 인종 차별, 동성애자 차별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 생각에, 운동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남들이 동의 의사를 표시할 때 침묵하고, 더 나아가, 관심을 끊으면 된다.
한가한가? 그것 말고도 주변에는 생각하고 관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사서 불필요한 문제를 만드는 건지...?
"개인의 자유는 무한히 확장되어야 한다. 단, 그 자유는 타인의 불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자신의 여러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문구로,
개인적으로 현대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말이다.
(여기서 "불편"은 일시적인 불쾌감이나 불리함이 아닌, 지속성의 차별과 억압, 또는 고통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걷는 것은 개인적으로야 자유 행위이겠지만
뒤따라 걷는 비흡연자에 대한 무차별한 폭력 행위이자 고통 강요 행위이므로 당장 멈춰야 할 행동이다.
좀 비약하자면 익명의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테러라는 측면에서 "911 테러"와도 별반 차이가 없다.
길거리 흡연자들은 대부분 힘 세고 거친 사내들이며, 늘 지속적으로 주위에 피해를 끼친다.
반면, 쌀개방 반대 도로 점거 시위와 같은 것은 일시적인 교통 체증으로 운전자의 불편을 유발하긴 하지만
농업,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선을 위한 행위이므로 멈춰야 할 행동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서 좀 애매한 것은,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종교 캠페인 행위다. 캠페인 주체의 입장에서야 구원을 위한
공익적인 목적에서 행하는 일이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타종교의 맹신 강요에 다르지 않다. 일시적으로
무시하고 참고 넘기면 될 일이므로 멈춰야 할 행위는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일반 대중을
압박하고 강요하는 고통스런 수준이 된다면, 멈춰야 할 행위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은근히 더 짜증나게 하는 "도를 믿으세요?"도 마찬가지.)
즉, 정리하자면,
내가 하는 별 뜻 없는 자유 발언도 누군가에게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과 억압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앵똘레랑스 행위가 된다. 그런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고,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하는 발언이 내 일기장에 쓰는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관습이든 전통이든,
사회적 약자, 소수, 낮은 위치의 사람을
힘과 쪽수와 성(性)과 지위의 우월함 등을 이용해 차별하고 억압하는 발언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이 아닌,
그 책임을 묻게 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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