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강준만 칼럼/6월 18일] 인격은 사교술이 아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격의 중요성을 역설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자격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부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인격이 중요하다고 떠드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 또 있으랴. 내 경우에도 그럴 위험이 다분하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이 지난 주 <손호철과 강준만에 잇대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밝힌 ‘몇 가지 개운치 않은 생각’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같이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그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씀 드려 볼까 한다.
■ 경계할 것은 이념의 절대 우위
특정한 사람의 ‘인격’은 누가 판단하는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는 건너뛰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어렵기 때문에 건너뛰자는 게 아니다. 인격을 누가 판단하건, 인격보다는 이념이 절대 우위에 있다고 보는 기존 통념을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조직의 목표 실현을 앞둔 매우 급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 조직의 지도자는 “해일이 이는데 조개 줍고 있다”며 그 사건을 묵살하려 하고, 그 조직에 몸 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시도를 대국적인 판단으로 간주해 그 사건의 은폐에 가담한다.
한국 정치와 운동의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성격의 문제다. 극단적인 사례인지라 인격 판단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겠지만, 큰 걸 위해 작은 건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을 평가하는 데엔 유효하리라 믿는다.
고 논설위원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사람됨’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인격은 일반인 평균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건 동의하기 어렵다.
인격은 사교술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바, 특히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격은 주로 갈등관계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사람됨’이 뛰어나다고 극찬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예컨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의 고향을 따져 물어 어떤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면, 이건 인격 파탄에 가까운 것이다.
고 논설위원은 ‘이념의 해악’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 해악은 ‘인격’의 넉넉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자신의 믿음을 털어 놓았다. 이건 논점을 좀 벗어난 말씀인 것 같다.
고 논설위원이 화를 내는 ‘이념’의 소유자들은 똑같이 고 논설위원의 ‘이념’에 화를 낼 것이다.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이런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느 이념이건 그 실천이 그 신봉자의 나쁜 인격에 의해 왜곡되고 타락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옳으리라 본다.
소설가의 인격으로 그의 작품까지 평가해도 좋으냐는 의문도 논점을 벗어난 비약인 것 같다. 논점은 인격과 작품의 관계가 아니라, 작품만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 소설가의 인격을 문인들의 술자리 가십으로만 소비하는 기존 풍토에 대한 평가다. 범죄행위거나 그에 가까운 인격적 일탈행위가 빈발했음에도 그걸 너그럽게 껴안는 것이 문인다운 도량이라고 생각하는 풍토는 바꿔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 인격이 되레 이념을 망친다면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건 많겠지만,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인격이 이념의 실천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해 보자는 뜻이기도 하다. 인격이 이념을 망친다. 이 세상이 꼭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믿는 야심가들의 아집과 탐욕은 수많은 분열과 파쟁을 낳지 않았는가.
한국은 ‘이념 과잉’의 사회다. ‘명분 중독증’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가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고 개탄했던 거나, 민세 안재홍이 “조선의 운동은 걸핏하면 최대형의 의도와 최전선적 논리에 열중 집착한다”고 탄식한 건 여전히 유효하다. 진짜 문제는 인격을 강조하는 게 정치적으로 잘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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