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809/h2008090102360725580.htm
[손호철의 정치논평/9월 1일] 정주영, 이명박, 오세철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공산당을 합법화해야 한다."
1992년 한 정치인이 한 말이다. 대부분 그 정치인이 당시의 진보정당이었던 민중당 관계자나 냉전세력이 빨갱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김대중 당시 민주당 대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공산당이 제일 싫어하고 그 자신도 공산당을 제일 싫어할 최고의 재벌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이었다. 최고의 재벌답게 공산당을 합법화해 보아야 별 문제가 없고 불법화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국민당을 만들어 외도를 한 정 회장의 이 발언에 대해 냉전적 언론들은 난리를 쳤고 정 회장은 자신의 발언이 와전된 것이라고 발뺌을 했다. 그러나 정책토론회에서 국민당 정책위원장은 문제발언이 있기 얼마 전 필리핀이 공산당을 합법화한 것을 상기시키며 필리핀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공산당 합법화 주장했던 정주영
이로부터 16년이 지난 올 봄, 대만이 공산당을 합법화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보다 한참 낙후한 필리핀이 이미 16년 전에 합법화했고 우리와 비슷한 분단국이면서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국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과 대치하는 대만도 합법화를 하는데 우리는 무엇하고 있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도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쪽 불구의 민주주의를 청산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로 도약할 기회가 있었다. 국민이 거대여당을 만들어준 17대 국회의 2004년 정기국회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지지에 힘을 얻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해찬 국무총리가 불필요하게 한나라당을 차떼기정당이라고 비난했고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한나라당은 등원거부로 맞섰다. 결국 한나라당을 도와준 이 전 총리의 이적행위, 그리고 전략부재와 무능으로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노무현정부는 항복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제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있다.
신공안정국을 통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의 관계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난 것도 놀랍지만 특히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은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해 온 데다가 북한을 강하게 비판해온 조직으로 지하조직이 아닌 공개조직, 그것도 '반북적'인 공개조직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한 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대통령이 급하긴 정말 급했나 보다.
이와 관련, 오 교수와 함께 민중당을 주도한 바 있는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사회주의가 좋다고 생각할 자유는 있지만 사회주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강령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행동할 자유는 없다"고 말했다. 아니 혼자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두뇌 속 사상의 자유'는 있고 이를 표현하고 결사체를 만들 표현과 결사의 자유, 즉 '두뇌 밖 사상의 자유'는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ABC도 모르는, 웃찾사다. 눈물겹게 고마운 한나라당표 '두뇌 속 사상의 자유' 만만세다. 이번 사건이 얼마나 억지인가는 법원이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관계자 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경영제자 이 대통령의 공안정치
8ㆍ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선진화를 위해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한참 낙후한 필리핀보다도 최소한 16년이나 뒤지고, 경제발전에 비해 인권후진국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대만보다도 뒤진, 시대착오적인 공안 통치로 되돌아가면서 선진국으로 나아간다니 선진화치고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선진화이다.
이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경영을 배운 정 회장의 제자다. 이 대통령이 멘토였던 정 회장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간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촌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 덕분에 정 회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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