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치매보다는 연탄가스 중독 쪽이 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의 인정, 의리에서 비롯된 적당주의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를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도리, 일가·친인척에 대한 상대적으로 무분별한 인정, 감싸기 등등... 공과 사는 이 땅에서는 절대 구분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로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의지대로 밀어붙이기라도 할라치면 인간 말종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언론계는 그 부분에서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정말, 연탄가스로 가득 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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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406073848&Section=01
한국정치, 치매인가? 연탄가스 중독인가?
[손호철 칼럼] 대를 잇는 정권비리, 민주화운동 세력 너마저…
기사입력 2009-04-06 오전 7:45:12
1993년 2월, 김영삼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61년 5.16쿠테타 이후 22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대통령에 오른 YS는 사정의 칼날을 빼어들어 3당 통합을 통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정계 중 문제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내거나 정계를 떠나도록 만들었다. 거물인 박준규 국회의장도 여의도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어디 그 뿐인가? 전두환, 노태우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파헤치고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으로 보내는 혁명적인 조치를 했다.
이를 바라보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불법 정치자금은 이제 끝장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임기말 한보사태 등이 터지면서 YS의 아들 김현철과 측근들이 비리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야했다. 이를 바라보면서 지난번은 틀렸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최고위층의 권력형 비리문제는 이제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새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김대중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 역시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홍삼게이트가 잘 보여주듯이 DJ의 아들, 그리고 친인척들이 줄줄이 비리혐의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 때의 난감함이란….
YS에 이어 DJ가 측근들의 비리문제로 곤욕을 치루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본 만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 세 번째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 역시 잘못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드러났듯이 소위 대쪽이라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진영이 차떼기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노무현 캠프도 불법정치자금을 모집한 것으로 나타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감옥행을 해야 했다.
이같은 '차떼기 파동'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았기에(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이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낡은 3김과는 다른 '혁명적인 정치인'이었기에, 나아가 너무도 단호한 어조로 부정부패와의 단절을 공언하고 나섰기에, 이번에는 무언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 역시 잘못된 것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감옥을 갔고 노무현 정부의 사정을 책임졌던 민정수석까지 옥고를 치루고 있으며 사정의 칼날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아니 가까운 90년대 이후만 살펴보더라도 똑같은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렇게 여러 번 보고도, 임기 말이 되거나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이 사정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한국정치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치매가 걸리지 않은 이상, 이럴 수는 없다. 치매가 아니라면, 정권이 바뀌면 결국 사정의 칼날 아래 감옥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다.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뉴시스
특히 곤욕스러운 것은 이 같은 치매의 당사자들이 386 등 소위 민주화운동 출신이라는 점이다. 차떼기 소동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사퇴하겠다는 식으로 '상대적인 청렴함'을 주장했지만 민주화운동의 부패의 규모가 한나라당과 냉전적 보수세력에 비해 단위가 하나 적은 것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실망감이 너무 크다.
문득 천관우의 연탄가스 중독론이 떠오른다. 80년 신군부 출범후 신군부를 지지함으로써 명망을 잃고 말았지만 박정희 시절 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인으로 존경을 받았던 천관우는 우리 사회의 부패문제를, 특히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어떻게 부패에 물드는가를 '연탄가스 중독현상'이라는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정계와 언론계 등은 기본적으로 연탄가스가 가득 차 있는 곳인데 처음에는 그 속에 들어가 연탄가스를 안 마시려고 숨을 안 쉬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조금 숨을 들이마셔 연탄가스를 조금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연탄가스를 마셔야 하면 이 바닥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두 번째는 멀쩡한 정신이 아니라 이미 연탄가스를 마신 상태에서 다시 연탄가스를 마시기 때문에 거부감이 적어지고 세 번째는 두 번 연탄가스를 마신 상태에서 연탄가스를 접하기 때문에 더욱 거부감이 적어짐으로써 그 감각이 마비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수준이상으로 연탄가스를 마신 것 같아 "이러면 안 되지"하고 결심을 해 일어서려 하면 이미 너무 연탄가스를 먹어 일어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출신의 정치인들도 연탄가스 중독에 걸린 것인가?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와는 별개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이는 '또 다른 수단의 정치'라는 문제이다. 물론 이번 박연차 리스트가 정치세력화를 노리는 친노세력, 나아가 여의도의 정치권을 겨냥한 MB진영의 기획사정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부패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야당탄압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민의가 아니라 검찰과 사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부패근절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이 민의를 대신해 정치를 움직이는 '또 다른 수단의 정치'는 부패 못지않게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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