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떠오른 상념 하나.
어릴 때(20대 때) 일부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낯설고 어색했던 것 중의 하나가
"형이 다 해줄께, 형한테 말해~"
"오빠 못 믿어? 손만 잡고 자자"
이런 류의 말투였다. 아니, 말투라기 보단... 화법의 문제겠지. 오글거리는 3인칭 화법.
유아기 때나 쓰는 화법 아닌가? 싶었다. 난 한번도 해본 적 없다. 그 때도 그 이후도.
군대에서는 간부들이 죄다 저런 화법을 구사했다. 중대장도 행보관도 일직사관도.
그래서 다수의 하급자들 앞에서 훈계(?)할 때는 으레 쓰는 일반적인 화법이구나 하고 말았다.
"오늘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아주 실망했다..."
역시 난 한번도 써본 적 없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쓸 일이 없으니.
아빠가 되고도 한동안 아이들에게 엄마가 자연스럽게 "엄마가~..." 화법을 쓰는 것을 보면서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것은 정말 어색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인가 괜히 작심하고 한번 써 봤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얘기했지?..."
아... 처음 쓸 때의 그 어색함이란.
그런데, 쓰고 보니 알게 되었다. 3인칭 화법은 스스로 그 역할을 인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형도, 중대장도,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본인 스스로가 형임을, 중대장임을, 엄마임을, 아빠임을, 오빠임을 본인 자신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일종의 세뇌 화법인 것이었다. 그 역할이라는 것을,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원래는 유아기적 화법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대상도 대부분 유아기에 한정되긴 하지만
의외로 말하는 사람 본인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큰 화법인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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