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학도 출신이다. (어우~ 이렇게 고상한 표현을 쓰려니 뭔가 느낌이 잘 안 산다.)

즉, 대학 때 나는 공대생, 공돌이였다. (그래. 이게 제대로 된 느낌이다.)


그런데 대학 때 내 몸은 공대생이었지만 내 정신은 공대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때 내 정신은, 또는 정신의 지향점은 사회학, 정치외교학 또는 신학 그 어느 중간 부분 쯤에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걸 준거집단이라고 하나.


내 몸과 내 정신이 따로 놀았던 첫 번째 이유는, 더이상 그다지 맡고 싶지 않았던 고등학교의 '냄새'가 공대에서는 짙게 맡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은, 타 대학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중, 남고를 거쳐 공대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본 사람은 꽤 공감할 듯 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요즘은 공대를 넘어 모든 학과가 거의 비슷해진 것 같긴 하지만.


수업 --> 도서관 --> 과제 --> 수업 --> 도서관 --> ...


쳇바퀴 돌 듯 강의실과 실험실, 도서관을 왔다갔다하지 않으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학점을 딸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공대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회실에 교수 연구실까지 들락거리고 나서야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공대가 싫었다.


두 번째 이유는 공학, 특히 소속 학과 전공이 내 취향/적성에 그다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맞지 않다"라고 느낀 건 고3때 진로를 결정한 때부터 든 예감이었지만 "확신"한 것은 졸업할 무렵이었다. 대학 다니던 동안은 애써, 또는 무의식적으로 잊고 살았고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을 한 다음 뒤늦게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야 다시금 슬슬 굳어져가기 시작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진작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재수해서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에 다시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학 출신 학과와 이후 사회 진로와는 큰 연관 관계가 없기도 했고 IMF를 맞은 당시 암울한 현실에 비추어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 본들 그다지 별 의미 없는 일이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때나 요즘이나 내겐 "안맞고 싫은" 것은 있었어도, "원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는 점이 가장 컸다. 나는 어떤 목표, 즉 플러스를 설정해두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아무 데로나 한 발을 내딛고 그로써 발생하는 마이너스를 하나씩 차근차근 제거하면서 진도를 나가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그게 나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고, 또 나를 남과 구분 짓는 나만의 특징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불현듯 많이 든다...



이유를 두 가지만 쓰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한 가지가 더 떠오른다.



마지막 이유는, 소위 그때 당시 공대생은 일명 '단무지'라고 불릴 정도로 무식한 부류 취급을 당했다. 물론 그 '무식'이라는 의미는 일반 사회상식이나 인문사회 교양, 정치 등에 대한 것이었고 또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싫었던 게다. 분명히.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학과보다는 한 중앙 종교 동아리에서 소위 '꿘' 세례를 받고 본격 생활하게 된 이후부터 부단히도 '무식'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신학, 사회교리, 사회과학, 인문사회학 등에 나름 심취하여 그 결과 당시 내 처지로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도 쉽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내심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많게는 한 달에 4~5권씩 거의 학교 다닌 4년 동안 일 년 열 두 달 신학책이나 사회과학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으니... 오죽하면 주위에서 나를 공대생이 아니라 사회학과나 정외과 학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전공 성적은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시험 기간에도 틈틈이 짬날 때마다 사회과학책을 읽을 정도였으니 어찌 언감생심 성적이 좋기를 바랄 수...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인문사회학에 열을 올린다고 해도, 내 밥줄이 그것이 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단순한 지적 욕구 충족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임을. 즉, 내 생활 전선과 밀접한 관계에 있지 않는 이상 그것은 '머리'의 일이지, '몸'의 일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몸'의 일이 되기엔 공대생 출신의 현실과 미래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이자 "넘사벽"이었다. 공대생으로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노동 현장에 투신하여 현장 활동가가 되거나 또는 통일운동가가 되거나, 또는 엠네스티와 같은 인권운동 또는 기타 비슷한 관련 인문 사회 분야 전문직으로라도 진출할 가능성이 단 1%도 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당장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의 불일치에 대한 혼란감에, 그 어떤 행동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내 스스로가 그렇게 무력하고 어리석게 느껴진 적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그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교내외 집회나 투쟁에 참여할 수도, 그렇게 열심히 불렀던 투쟁가를 힘차게 부를 수도, 내쳐 팔뚝질을 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인문사회학에 관련된 책들도 더 이상 가까이 하기 힘들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드디어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지금은,

공돌이 출신의 사회인으로서, IT 업종에 종사하는 직장인으로서, 각종 정치·사회 이슈의 한복판에 비록 직접 뛰어들 수도, 들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어디까지인지 늘 고민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만큼은 하려고 한다. 기부가 되었든, 촛불 집회가 되었든, 봉사 활동이 되었든, 인터넷 글쓰기가 되었든... 그게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하고 참여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봤자 주로는 술자리 뒷다마나 까는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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