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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0대들은 왜 거리로 나왔는가?/진중권 
≫ 진중권 중앙대 교수.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해서 갔더니 앉아 있는 참가자의 절반이 중고생이다. ‘광야에서’를 부르자고 했더니, 아무도 그 노래를 모르더란다. 그래서 함께 부른 것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관제 데모가 아닌 곳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노래는 윤도현의 아리랑과 필승 코리아, 거의 월드컵 분위기다. 뭣도 모르고 나간 386 아줌마, 아저씨들은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매우 힘들었을 게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분노는 거의 거국적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일거에 22.4%까지 떨어진 것만 봐도, 정부의 협상 태도에 대한 불만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4%의 지지율은 그 동네의 고정 지지층까지 상당수가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정작 고교생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그들이 광우병 문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나중에 몇몇 학생들을 만나서 그 자리에 왜 나왔는지 물어 보았다. “대학 졸업해 좋은 직장 얻었는데, 광우병 걸리면 어떡해요?” 길에서 만난 여고생은 매우 솔직했다. “확률이 47억분의 1밖에 안 된다잖아요.” 슬쩍 시비를 걸어 보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급식을 받잖아요. 아직 나이도 어려서 앞으로도 오랜 기간 먹어야 하잖아요. 광우병은 잠복기가 10년이라는데, 지금 먹은 쇠고기가 10년 후에 광우병을 일으키면 어떡해요?”

한마디로, 자기들에게는 음식을 선택할 권리가 없고, 나이도 어려 앞으로 광우병 쇠고기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도 가장 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입시 전쟁을 치르느라 인생에서 가장 고단하게 사는 연령대에 속한다. 그렇게 모든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시험 하나 잘 본다고 밤잠도 못 자며 고생하고 있는데, 나중에 덜컥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니,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결국 광우병 쇠고기 사태가 그들이 거의 종교처럼 믿고 따르도록 배워 온, 그 삶의 목표 자체를 뒤흔들어 놓은 셈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으레 운동권이나 정치권 인사가 한마디 거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사회적 발언에 나선 것은 대중문화의 스타들. 이 또한 없었던 현상이다. 고등학생을 팬으로 거느린 스타들은 어떤 식으로든 10대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10대들만큼 순수한 스타들의 진솔한 생각의 표출이었는지, 아니면 보수언론의 주장대로 10대 팬들에게 어필하려는 기획사의 프로그램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타들마저 그 자리로 불러낸 것은 10대들의 힘이었다는 점이다.

광우병의 위험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괴담’ 형태로 번져나간 것도 10대 특유의 문화로 보인다. 학교마다 하나씩 있는 게 괴담이 아닌가. 게다가 인터넷에 언제 괴담 떠돌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그 괴담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지도 않았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패닉에 질린 얼굴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해, 교육부를 향해, 정치권을 향해, 아니 기성세대 전체를 향해 야유를 보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벌어진 일은 딱 이것뿐이다. 그 자리에 나온 아이들은 진보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다. 좌파들의 사주를 받고 그 자리에 나온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나왔다고 해서 앞으로 좌파가 될 것도 아니다. 촛불 든 아이들의 내면에는 좌우의 틀로는 재단하기 힘든 뭔가 다른 욕망이 깔려 있다. 아무튼 이번 사태를 통해 어른들은 지배체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균열을 드러낼 수 있음을 배웠고,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계기에 제 나라 정부와 유력한 보수 언론이 새빨간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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