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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를 기다리는 사람들


2008년 10월 26일 (일) 20:48:50 강준만  kjm@chonbuk.ac.kr  

 
“언론과 출판인은 국내서 저자들의 언론비평은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해외 학자의 허명(虛名)에 매달려 시대에 뒤진 지식의 수입 유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언론과 출판인이 지식의 사대주의,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중략) 이번에는 지방 언론의 서울 사대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지방신문의 북 섹션과 출판광고 또한 철저히 중앙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김영재 대구신문연구원 대표가 월간 『인물과 사상』 2008년 11월호에 기고한 <출판과 언론의 지식 사대주의>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평소 언론 관련 책의 ‘지식 사대주의’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온 입장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 사대주의’ 문제의 원조는 대학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가급적 어렵게 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지식인(제3세계 지식인은 안된다!) 이름과 이론을 조금 거론해줘야 속된 말로 ‘있어 뵈는’ 느낌이 들고 논문같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법칙’이지 의심의 대상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니 앞서 한 ‘속된 말’은 그들로선 공감할 수 없는 비방이요 모함이 된다. 이들이 배출한 학생들이 언론과 출판계에서 일하면서 그 ‘법칙’을 이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또다른 진정한 문제는 그 ‘법칙’에 그 나름의 효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우선 끈적끈적한 현실적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론비평만 하더라도 국내 언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국내 서적은 우선 언론 홍보에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 반면 미국 언론비평서가 미국의 유수 언론을 아무리 까고 조져도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극좌적 비판이어도 국내 극우신문조차 크게 다뤄준다.

 

언론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공개적인 논쟁을 한번이라도 해본 분은 잘 알겠지만, 그게 그렇게 할 만한 짓은 못된다. 왜 ‘짓’인가? 한국엔 논쟁을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점잖고 고상하고 좋은게 좋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많아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책을 읽는 주요 목적은 교양이나 휴식이나 지적 허영심 충족에 있기 때문에 골치 아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책을 반기지 않는다.

 

한국 사회엔 ‘딜레마’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은 해결 가능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해결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게 돼 있다. ‘지식 사대주의’와 더불어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이다. 이 와중에 번성하는 게 지식과 고민이 부족한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달랑’ 원칙 몇가지만을 학습한 뒤에 그걸 모든 사회 문제에 적용시키려는 강심장들이다.

 

아니 강심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관의 문화’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는 그걸 ‘방관’이라 부르지 않고 ‘포용’이라 부른다. 표현의 자유의 축복이라고 과장하는 이들도 많다. 이 모든 현상에 대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지식과 소통의 목적에 대한 생각만 바꾸면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각종 세미나들이 매년 수천건 열리지만, 그 코스는 거의 비슷하다. 우선 서울에서 사람들이 초청된다.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접대를 위한 비용을 댈 스폰서가 필요하다. 끝나면 그 돈으로 밥 먹고 술 먹는다. 세미나 덕분에 바뀔 것도 없고 바뀐 것도 없다. 그러나 비판은 금물이다. 세미나의 목적은 지식과 소통이 아니라 친목과 휴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문제를 미뤄뒀다가 홍수 때에 한꺼번에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홍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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