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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계에 ‘한국’ 학자가 있는가?  
[강준만 칼럼] 
 
 2008년 11월 02일 (일) 08:55:24 강준만  kjm@chonbuk.ac.kr  
 
 
『시사IN』 10월 25일치에 “한국 경제학계에 ‘한국경제’ 학자 없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의 문제 제기를 소개했는데, 몇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학 연구와 교육이 한국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한국 현실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계의 중심에 있거나 이런 내용이 연구나 교육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자처하기 힘들다.”

 

이 기사는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교수·정교수 승진 등에 필요한 연구 업적 평가의 기준이 해외 SCI급 저널에 실린 논문 횟수이기 때문이다. 국내 학술지보다 미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3~5배 이상 높은 점수를 받는다. 미국 경제학지에 논문이 실리려면 미국 경제학계의 이슈를 따라가야 한다.”

훌륭한 기사다. 이 주제를 좀더 넓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경제학만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기사도 지적했지만, 학계 인력 충원의 미국 의존도가 너무 높다. 해외 SCI급 저널 숭배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정치(외교)·경제·사회학과 교수 165명 가운데 ‘미국 박사’는 전체의 86%인 142명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경우엔 전체 31명 교수 가운데 94%(29명)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 1,711명중 전공별 미국 박사 비율을 살펴보면 사회과학(경영·행정 포함) 82%, 자연과학 78%, 공학 76%, 교육학 57% 등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외교통상부가 세계 각국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외무 공무원의 제2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2년 단위로 시행하고 있는 해외연수 프로그램도 미국 일변도다. 올해 들어 파견된 외무 공무원 37명 중 89.2%에 달하는 33명이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간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유학 출신은 미국 유학 출신에 비해 훨씬 적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점이 많은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보다는 영국·독일·프랑스에 편중돼 있다. 국내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도 의존 문헌은 해외 유학파와 다를 바 없이 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에서 생산된 것이기에 정도는 덜할망정 눈을 밖으로 돌리는 건 비슷하다.

 

우리처럼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밖으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본말의 전도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서양 이론과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건 우리의 난제를 푸는 데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근본주의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상아탑에서건 대중 지식시장에서건 잘 먹히는 건 바로 그런 지식 상품이다. 그래서 소통을 시도하면 할수록 한국사회의 이해가 더 어려워지고 갈등은 심화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게 꼭 ‘지식 사대주의’ 때문만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박정희 시절 국가권력에 의해 오·남용된 ‘한국적’이라는 말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더불어 갈등을 피해가려는 ‘안전의 욕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서양의 좌파적 언론비판은 국내 극우신문도 크게 다뤄줄 정도로 환영받지만, 국내의 언론비판은 아무리 온건해도 꼭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무난한 지식과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지식이 주류 지식이 되는 사회는 자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지방도 서울 중심의 지식 풍토로 인해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건 아닌가? 우리의 지식 풍토가 이대로 좋은지 대대적인 검증과 성찰이 필요하다.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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