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1080647&Section=01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손호철 칼럼] MB와 자본은 얼마나 많은 열사를 만들려는가?
기사입력 2009-05-11 오전 8:55:24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1991년 봄, 87년 민주화 이후 조성된 변혁적 분위기에서 생겨난 운동권의 일련의 방북사태와 관련해,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해 나갔다. 이에 여러 운동가들이 투신, 분신과 같은 죽음으로 저항했다. 이에 대해 한 신부 대학총장이 나서 엉뚱하게도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 선배가 조선일보에 운동권을 질타하는 유명한 '죽음의 굿판론'을 제기해 충격을 줬다.

 

당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를 제기한 방식들을 제외하면) 생명사상에 심취했던 김 시인이 생명을 지키라고 후배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충정을 이해하게 됐다. 사실 우리의 운동은 외국처럼 테러나 무장투쟁 같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비폭력'이 특징이었고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자기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많은 열사들을 양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죽음의 굿판론이 반쪽, 아니 3분의 1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생명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 시인이 왜 당시 운동권에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일갈을 하고, 정작 죽음의 굿판을 강제한, 죽음의 굿판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노태우 정권과 냉전적 언론 등에 대해서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호통을 치지 않고 침묵했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김 시인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에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저항하는 열사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초기의 전향적 노동정책에서 강력한 노동탄압 정책으로 전환을 하면서, 한 달 동안에 4명의 노동자가, 일 년 동안 6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던지며 노동탄압에 저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그리고 노 대통령은 망자들을 위로하고 이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민주정부 하에서 독재시대에나 쓰는 낡은 투쟁방식을 사용한다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

 

올 1월 금호재벌 산하 대한통운 광주지사는 화물연대 소속 택배 노동자들과 배달 수수료를 건당 30원씩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3월 중순 사측은 합의서를 전면 부인하며 파기했고 이에 택배 노동자들이 준법투쟁을 벌이자 78명의 해고통지문을 보내왔다. 이는 유서에서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한 노조지부장인 박종태 씨의 '죽음의 저항'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제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것입니다"로 이어지는 그의 유서를 읽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 지난 9일 열린 고 박종태 씨 추모집회 ⓒ프레시안

 

언제까지 한국의 국가와 자본은 죽음의 굿판을 계속할 것인가? 충격적인 것은 박종태 열사의 죽음이 있은 지 며칠 뒤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이다. 이 대통령은 7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97년 외환위기 때 노동유연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전제한 뒤 "이번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를 개혁하지 못하면 국가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노동유연성 문제를 연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97년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가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는 등 노동의 유연성을 대폭 확대해 한국노동자를 대표하는 얼굴이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97년 외환위기 때 노동유연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정말 기이한 주장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식의 아전인수식 통계가 아니라 국제적 기준을 적용할 경우) OECD 가입 국가 중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게 되었는데 "노동유연성 문제를 연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니 답답하기만 하다.

 

사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이번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노동의 유연성 제고를 주요경쟁력으로 생각하던 미국의 최고 CEO 사이에서 노동자들을 일회용으로 간주하는 미국식의 주주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이며 일본식의 종신고용제도 등에서 배워야 한다는 자성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계의 이 같은 자성과는 정반대로 이 대통령은 가뜩이나 높은 노동유연성을 더 높이자니 아찔하기만 하다. 세계가 경재위기로 탈신자유주의를 하고 있는데 유독 혼자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길을 닦아 놓은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하는데 이어 또 다시 청개구리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더 죽여야 속이 찰 것인가 한숨만 나온다.

 

김지하 시인은 MB정권과 금호재벌 등 자본들에게 일갈해주어야 한다. 용산학살, 대한통운 같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아니 나라도 대신 MB정권과 자본들에게 일갈해주고자 한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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