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근거 통계, 조작됐다"
[홍헌호 칼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계 조작해 국민 속였다"
기사입력 2009-06-29 오후 2:28:25
"국민들이 이해하시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저희 국회의원들도 동료 의원들한테 미디어법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보면 아마 정확하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래서 정책에 관해서 이런 여론조사를 한다면, 앞으로 모든 쟁점법안을 이렇게 여론조사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고…."(6월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경원 의원의 발언)
국민들을 깔보고 내려다보는 나경원 의원의 평소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민들은 나 의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도 않고 그렇게 무분별하지도 않다. 사안의 경중(輕重)을 가리지 않고 쟁점사안마다 여론조사를 요구할 만큼 국민들이 그렇게 유치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경원 의원의 독선의 실체는 무엇일까
▲ 미디어법 통과에 앞장서고 있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 ⓒ뉴시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의원의 발언이 매우 불쾌하여 그가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다는 미디어법에 대하여 더 관심을 기울이기로 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나 의원의 대국민관(對國民觀)에 매우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 의원의 독선의 실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일차적으로 그와 그의 동료들이 맹신하고 있다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지난 1월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것으로부터 그 실체 해부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KISDI는 지난 1월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신문·방송 경영허용으로 현재 3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방송산업이 2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한 바 있다.
필자는 당시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 보고서의 일부인 고용효과의 허구성에 대해서만 비판 글을 썼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보고서의 실체에 대하여 파헤쳐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모으고 재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한지 며칠 후 필자는 이 보고서가 영국 OFCOM과 유엔 산하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의 통계수치들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이들의 보고서가 OFCOM과 ITU의 통계수치들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우선 필자는 이들이 내놓은 보고서의 구성체계와 논리체계가 지나치게 엉성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먼저 참고문헌란에 올라 있는 통계들의 적실성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검토 작업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일차적으로 이 보고서가 영국 OFCOM의 통계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KISDI, 영국 OFCOM의 통계 조작
KISDI는 문제의 보고서에서 영국의 미디어법 개편효과를 보여 준다며 영국 OFCOM의 "The Communication Market(2004,2006)"의 자료 일부를 소개했다.
<영국의 방송시장 규모>(단위 : 백만 파운드)
▲ (출처) : The Communication Market(2004,2006,2008)
(주) : The Communication Market(2008)은 2008년 8월 발표되었는데 KISDI는 이 부분을 누락했다. 연구자가 이 자료를 못 보았다고 잡아뗄 수도 있으므로 그들이 누락한 부분에까지 필자가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OFCOM의 자료에 2005년 영국의 방송시장 규모가 '124억 100만 파운드'라고 쓰여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영국 OFCOM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The Communication Market(2006)"이라는 파일을 열어본 결과 그것은 KISDI의 주장과 달리 '106억 2100만 파운드'에 불과했다.(http://www.ofcom.org.uk/research/cm/cm06 ) KISDI가 명백히 통계수치 조작을 한 것이다.
단순 실수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OFCOM은 이 책에서 여러 개의 도표를 통하여 '106억 2100만 파운드'라는 수치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단순 실수라 보기는 어렵다. 원래 총량적인 통계수치는 여러 도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KISDI, ITU의 통계도 조작
KISDI가 영국 OFCOM의 통계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 이틀 후 필자는 이들의 보고서에서 또 한 차례의 어이없는 통계조작을 발견했다. 어렵게 입수한 PWC의 "Global Entertainment and Media Outlook 2008~2012"[이하 PWC (2008)로 약칭함]라는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OFCOM의 통계수치 조작과는 비교가 안 되게 치명적인 통계수치 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경위에 대해서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PWC(2008)를 입수해 정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방송시장 비율이 0.92%로 IMF가 선정한 선진국 27개국 중에서 6번째로 높다는 사실이었다.
[표] GDP 대비 방송시장 비율
- 필자가 PWC의 보고서를 정리한 결과
▲ (주-1) IMF가 선정한 선진국 33개국 중 27개국의 자료만을 소개한 이유는 나머지 6개국의 경우 PWC(2008)에 통계수치가 없었기 때문임.
(주-2) 미국과 영국의 GDP 대비 방송시장 비율 수치가 큰 것은 영어권 종주국이라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방송수출시장이 넓기 때문임.
자료 : PWC(2008), "Global Entertainment and Media Outlook 2008~2012"와 IMF 통계, 활용한 통계수치는 2006년 기준.
그러나 PWC의 유사한 자료를 정리한 KISDI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방송플랫폼시장 비율이 0.68%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표] 국가별 방송시장 규모
- KISDI가 PWC의 보고서를 정리한 결과
▲ 자료 : KISDI,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2009.1.19)
양자 간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필자와 KISDI의 계산 결과 둘 중 하나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KISDI의 보고서를 더 꼼꼼히 재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KISDI가 만들어 놓은 표에는 2006년 우리나라 명목GDP가 1조 2949억 달러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6년 우리나라 명목GDP가 1조 2949억 달러라니. 2006년 우리나라 명목GDP는 원화로 850조 원 정도였고 대미환율은 1000~1050원 정도였는데 우리나라 GDP가 1조 2949억 달러라니. 문제의 보고서를 낸 경제학 전공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수치에서까지 착각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 보고서를 쓴 연구자들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 수치의 출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ITU라고 한다. 왜 한국은행과 세계은행, IMF, UN, OECD 등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통계수치를 쓰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ITU도 공신력 있는 기관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와 전화를 끊고 ITU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본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곳 어디에도 1조 2948억 8000만 달러라는 수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2006년 대한민국의 GDP가 8880억 달러라는 수치가 선명하게 기록돼 있었다. (☞http://www.itu.int/ITU-D/icteye/Reporting/ShowReportFrame.aspx?ReportName=/WTI/BasicIndicatorsPublic&RP_intYear=2007&RP_intLanguageID=1)
정보통신연구원이 명백하게 국제기구의 통계 수치를 조작한 것이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민주당 변재일 의원도 지난 2월 KISDI의 GDP 통계조작에 대하여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ITU 홈페이지에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KISDI의 GDP 통계조작에 대하여 보다 더 명쾌하게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다.
조작한 통계를 원상태로 돌리면, 연구결과 정반대로 달라져
정보통신연구원이 조작한 국제기구의 통계를 원상태로 되돌릴 경우 KISDI가 내놓은 보고서의 연구결과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우선 이들이 국제기구의 통계를 조작하여 만든 표의 수치들은 ITU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원래 통계수치들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표] 국가별 방송시장 규모
▲ (주-1) 정보 :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조작한 통계수치
(주-2) ITU : ITU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원래 통계수치
(주-3) 필자가 계산한 0.92%와 이 표의 0.98%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필자와 KISDI의 방송시장 분류기준이 다르기 때문임.
자료 : PWC(2008)과 ITU, 2006년 기준.
그리고 조작된 통계수치를 토대로 작성된 연구보고서의 내용 또한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ㅇ 주요 선진국의 방송플랫폼 시장비중은 GDP 대비 평균 0.75%, 국내 방송시장은 GDP 대비 0.67%로 선진국에 미치지 못함.
☞ 주요 선진국의 방송플랫폼 시장비중은 GDP 대비 평균 0.75%, 국내 방송시장은 GDP 대비 0.98%로 선진국 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음.
ㅇ 방송플랫폼 부문의 GDP 대비 비중이 규제완화 이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할 때, 규제완화로 방송플랫폼 시장은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 수준인 GDP 대비 0.75%로 증가.
☞ 국내 방송플랫폼 시장이 이미 GDP 대비 0.98%로 선진국 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므로 규제완화로 그것이 GDP 대비 0.75%로 증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ㅇ 규제완화로 방송 시장이 GDP 대비 0.75%로 증가할 경우 경제전체 생산유발효과는 1조 7164억 원 ~ 2조 9419억원, 경제전체 취업유발효과는 1만 2523명 ~ 2만 1465명.
☞ 이미 국내 방송시장이 GDP 대비 0.98%로 선진국 수준을 넘어 시장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는 바 생산유발효과나 취업유발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임. 오히려 과당경쟁으로 경제적인 부(負)의 효과, 즉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큼.
통계가 조작된 보고서에 동조한 정치인들,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필자는 평소에 국책연구소의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최소한 그들은 뜬구름잡는 이야기로 자신들의 독선을 정당화하려 하는 폴리페서들(정치권력 지향형 교수들)보다는 소통하기가 더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가 국제기구의 통계를 조작하고, 조작된 통계를 근거로 진실과는 180도 다른 보고서를 내놓으며 국민들을 속이려 한다면, 이런 행태는 결코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혹자는 국민들을 속이는 행위도 때로는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는 결코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행위가 아님을 숱하게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국책연구소 일부 연구원들의 국민 기망행위, 그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는 하루속히 이번 통계조작에 관여한 일부 연구자들의 행위에 대하여 엄중한 책임을 묻고 징계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또한 조작된 엉터리 보고서를 검토도 하지 않고 진리라 우기며, 5000만 국민들을 속이는 데 동조한 분별력 없는 정치인들도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할 것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