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전, 세계사를 영원히 바꾸어놓은 비극이 벌어졌다. 세르비아인이 저지른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 빌미가 돼 1914년 7월28일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와 그 동맹국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사흘 뒤 독일까지 가세해 러시아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 세 왕조가 서로에게 선전포고했을 때에 불과 4년 후 그들이 다 같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줄 알았겠는가?
알았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 중에서 그 누구도 유서 깊은 왕실들을 쓰러뜨리고 약 2000만명 이상을 도살할 “대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다.
1914년 7월이나 8월에 유럽을 휩쓸었던 유행어는 “성탄절까지 해치우자”였다. 즉 전쟁이 반년 이상 걸리지 않고 “아군”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전쟁열에 휩싸인 “열강”들의 대중들이 공유했던 “통념”이었다. “애국적” 선전선동에 넘어간 비전문가들이 그랬던 것이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유럽 각국 지배계층의 예측능력도 그것보다 나은 편은 아니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대(對)독일 및 대오스트리아 작전계획에 따르면 베를린 함락은 개전 이후 6주 만에 이루어져야 했다. 동서 전선 양쪽에서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독일은, 개전 40일 만에 파리를 함락시키고 그다음에 군 총력을 동쪽 전선으로 이동시켜 몇 주 만에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던 것이었다. 1915년 초에 들어서야 유럽 엘리트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스스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이르렀는데 야만적인 장기 소모전을 이미 멈출 수는 없었다.
운명적인 1914년 여름에 지배자들이 “전쟁”이란 커다란 비극을 이렇게 쉽고 바람직한 일로 여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대형 대포와 비행기 등 새로운 기술이 초기에 완승을 거두게끔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술만능주의도 한몫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보수적 엘리트들은 진보화돼갔던 대중들의 관심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 했다. 독일에서 1912년 총선 이후 원내 최대 정당이 된 사민당의 약진이 황실과 군부로서 두려웠는가 하면, 프랑스 공화주의 우파는 전쟁이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잘 포섭할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러시아로서는 1914년 7월에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미 곳곳에 바리케이드들이 설치되는 등 노동자들이 급진화돼가는 상황에서 역시 정치적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단기적 이득에 눈이 먼 정계 맹인들이 결국 자신들의 무덤을 파면서 수천만명을 도살장으로 내몬 것이었다.
지금 이 땅에서 국민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공안통치를 계속 밀고 나가는 이명박 정권과 남한군은 북한 “도발”의 경우에 동시다발적으로 “공세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해서 북한을 단기간에 제압할 수 있는 것처럼 “타격”을 장담하는 것이다. 모든 인접국들이 북한보다 더 잘산다는 사실을 점차 알아차리고 장사판에 익숙해지는 주민들을 군사적 애국주의로 단결시키려는 북한 지배자들도 “도발 시 섬멸적 보복타격”을 약속한다. 남북 양쪽 둘 다 장기 전면전을 원할 리가 없지만, 내부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양쪽 대결태세가 어느 수위를 넘어버리면 그다음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상호 타격의 악순환이 가동돼 한반도 전체가 한순간에 폐허가 돼버릴 수 있는 것이다. 95년 전, 급진화돼가는 노동자들을 군에 동원시켜 “몇 주밖에 걸리지 않을” 전쟁 속에서 순치시키려다가 유럽 전체를 커다란 도살장으로 만들어버린 “열강”들의 전철이나 밟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