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법계 막가서야 되겠습니까? 법원장 재판 개입, 용산 편파수사, 재벌 면죄부 판결 그리고 대통령 서거. 이제 분노와 슬픔을 넘어 사법정의의 길을 물을 때다. 휘청이는 법원·검찰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출간한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창비)의 광고 카피다. 아쉽다. 이 책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도 마찬가지다. 몇몇 서평도 아쉬웠다. 김 교수가 일반 시민이 판검사에게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라고 말을 걸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 취지를 놓친 채, 그 대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너무도 비현실적이라고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제목을 붙인다면, “법조 ‘스톡홀름 신드롬’”이 적합할 것이다. 197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인질강도 사건에서 인질들은 인질로서 당한 폭력을 잊어버리고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어 인질범의 편을 들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행태를 보였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불렀다. 이 개념을 다른 분야에 써먹을 때에 나타나는 문제는 ‘인질’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개념의 용법 타당성을 놓고 논란이 자주 빚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계의 ‘스톡홀름 신드롬’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지만, 그 취지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그 서비스의 주체가 되는 게 엄청난 출세로 여겨진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가문의 영예’로 여기는 잔치판이 벌어지고, 자기가 살던 동네와 다닌 학교에 축하 현수막까지 나붙는다. 사법시험은 대학의 평판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일부 대학들은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돈으로 스카우트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학교의 명예를 모든 교수·학생들이 즐긴다.
법조계를 존경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법은 썩었다”고 믿는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유전무죄·무전유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 가족·친척 중에 판검사·변호사 하나 정도는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왜? 국민, 특히 돈 없는 서민은 법의 인질이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공포가 있다. 바로 그 공포 때문에 그들은 인질범에게 주눅이 들어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청탁은 사람 사는 인정이지만 너의 청탁은 범죄”라고 보는 이중의식을 갖지 않은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법조인 탓을 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그들은 집념과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선택받은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들을 단죄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인질 노릇을 자처할 때 변화의 출구는 열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법조인 못지않게 국민이 달라져야 할 이유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 것이다.
“판검사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장벽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용기를 내 판검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 전화 한 통 걸 데가 없다고요?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여러분 같은 입장입니다.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