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 보나 사회 분위기로 보나 노르웨이는 한국과 거의 다른 세계로 보이지만, 최근 며칠간 천안함 소식은 노르웨이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크게 다루어졌다. 천안함의 수수께끼가 풀려서 그렇다기보다는 가면 갈수록 각종 의문이 증폭되고 한반도를 주축으로 돌아가는 동북아 안보상황의 미래가 불투명해져서 그렇다는 느낌은 든다.
합동조사단이 비록 “북한 어뢰공격의 확증을 찾았다”고 발표하지만, 항적·교신기록의 공개로 뒷받침되지 않는 ‘결과 발표’는 새로운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북한 잠수함이 한국 해역에 잠입해 어뢰를 발사하고서 유유하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한국 해군의 경계망이 허술하단 말인가? 침몰해역에서 수거됐다는 파편만 가지고 “바로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 어뢰”라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명확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지금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북한에 돌리는 한국 당국이 과연 앞으로 남북관계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천안함의 비극이 정말로 북한 소행인지 아닌지는 이 시점에서 필자로서는 최종적 판단을 유보하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 공격설’이 이미 국내의 광범위한 보수층 사이에서 하나의 ‘통설’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정부 발표 자체에 대해서는 신뢰가 비교적으로 낮지만, 미디어 공세와 압도적 ‘애국주의’ 분위기 조성으로 약 60∼70%의 한국인들이 ‘북한’과 ‘천안함’의 관련성을 믿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는 이명박 정권과 보수매체들이 본인들의 정치적 과제를 ‘훌륭하게’ 해냈다고 볼 수 있다.
즉 천안함 사건 등을 이용해서 냉전기의 ‘레드콤플렉스’를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일본의 반북 정서나 미국의 9·11 이후의 안보공포와 같은 현대적인 안보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새천년형 안보주의와 박정희 시대 반공주의의 결정적 차이는 ‘반공’ 퇴색이다. 안보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북한은 1970년대식 ‘공산 악마’라기보다는 미국 보수층이 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처럼 “음흉하고 공격적이고 민주사회와 평화 공존할 수 없는 광신주의적 집단”으로 재현된다.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가난하고 후진적이면서도 스스로 진보할 능력 없이 늘 도발만 일삼는” 북한이, 100년 전의 유럽 제국주의의 도식대로 ‘선진적인 대한민국’에 의해서 ‘계몽·개조·지도’되지 않는다면 미래로 나아갈 방법은 없다. 우월감으로 가득 찬 이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보수층 속에서 나름의 이념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명박 정권은, 민생 방면에서의 각종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40∼50%의 지지율을 얻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순전히 국내정치의 부속물로 취급해온 이명박 정권의 ‘성공’은 ‘소탐대실’격이다. 집값 폭락이 아직 그나마 모면되고 수출경제가 그래도 여전히 돌아가는 등 경제적 현상유지가 가능한 한 반북 안보주의 이데올로기가 국내적으로 보수층 결집 기제로서의 기능을 계속 발휘하겠지만, 그 일차적 대가는 북한 지배층과의 ‘소통 가능성의 증발’일 것이다. 전 정권의 ‘햇볕 정책’을 믿고 대남 화해 모드로 들어갔다가 이처럼 ‘소박’을 맞은 북한이, “더는 속지 않겠다”는 속셈으로 이제 남한 지배자들의 어떤 말도 근본적으로 신뢰하지 못할 가능성은 크다.
미국, 일본에 뒤이어 한국 정부로부터도 달콤한 약속을 들었다가 끝내 ‘바람’ 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북한 지배층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것이고 유럽과 중동, 동남아 등의 자본에 계속 ‘러브콜’을 보내야 할 것이다. 경제·외교적으로도 남북 사이의 거리가 계속 멀어질 것이지만, 한국 군사예산의 지속적 증가에 발맞추어 북한도 민생을 희생시키면서 반민중적·군사주의적 ‘선군’ 정책을 계속 추구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 보수층의 이데올로기적 결집의 대가는 분단의 완전한 영구화와 한반도의 지속적 군사화, 폭력화일 터인데, 바로 이와 같은 일을 두고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않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이명박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터무니없는, 아무도 믿지 못할 같잖은 발표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보수반동세력의 열렬한 환호덕일까? 아니면 수구언론의 전방위적 밀어주기덕일까?
무엇이든, 이 땅에서 끝내는 쓸어버려야 할 비상식적 인간 이하 쓰레기들이 최근 들어 엄청나게 많아졌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