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보수 정당·진보 정당 전국의 지방정부나 의회에 진보 정당이 무리로 들어가 한나라당 독점을 깬다면,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도 큰 힘을 얻을 것이다. [137호] 2010년 05월 03일 (월) 09:43:01 고종석 (저널리스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는 말은 세밑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상투어지만, 올해는 첫 넉 달만 돌이켜봐도 다사다난했다. 그 다사다난함을 ‘어수선함’이라 고쳐 말할 수도 있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대한민국이 특히 더 어수선해진 것도 같다. 이 어수선함 속에서 6월2일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어느 영역에서나 독점은 일반적으로 해롭다. 그것은 사회를 더 낫게 만들 경쟁의 공간을 없애버린다. 지금 한나라당은 독과점 정치세력이다. 신자유주의자들과 정치적 극우파를 망라한 이 공룡 정당은 중앙행정부와 입법부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의회까지 움켜쥐고 있다. 특히 지자체 독점은 1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지자체에서 부패 스캔들이 자주 터지는 것은 부분적으로 이런 해묵은 독점 탓일 테다.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지방 정치 수준에서 한나라당을 견제하고 감시할 정파가 없다.
이번 지방선거는 여야 세력 균형을 되찾는 마당이 돼야 한다. 야당이 밉살스럽더라도, 그들이 지자체 수준에서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설령 유권자들이 이런 맘을 먹더라도, 사분오열된 야당 가운데 어느 당을 도와야 할지 막막하다. 야권의 지방선거 후보 단일화를 위한 이른바 ‘5+4 협의’는 물 건너갔다.
한나라당의 대안이 진보 정당인 까닭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후보 단일화다. 한나라당과 뿌리가 같은 자유선진당은 제쳐두고라도, 다른 야당끼리 연합전선이 이뤄지면 야권에 승산이 있다. 최소한의 공동 강령을 내세워 반(反)신자유주의 민중전선을 만들어낸다면 말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자기중심주의를 떠나서, 단일화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이를테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신자유주의에 올라탄 정파다. 진보 정당들과는 이념적 좌표가 아예 다른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각각 뿌리를 공유하지만, 그들 사이에 부는 찬바람은 근친 증오라는 게 뭔지를 보여줄 만큼 사납다. 이렇듯 정치인 스스로 유권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데, 유권자가 마법을 부려서 정치판을 정리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해 지자체 독과점을 연장한다 해도, 그걸 유권자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균형의 관점에서, 야당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민주당을 한나라당의 대안 세력으로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 보수 정당이라 낙인찍는 것은 과장된 정치 선동이겠지만, 오늘날 이 두 당의 이념적 바탕이 판이한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하니, 민주당의 뿌리라 할 해방기의 한국민주당은 친일 지주와 자본가들을 기반으로 한 보수 정당이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때 박정희가 퍼뜨린 정치적 지역주의의 바이러스가 그 뒤 유권자들을 감염시키며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개혁성’을 돋보이게도 했지만, 이 당이 그 보수주의 유전자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실상 지금의 한나라당은 김영삼을 통해서 제2공화국 집권기의 민주당 구파 계보를 흡수했으므로, 지금의 민주당이 민주당의 역사를 독점하려 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물론 한나라당에는 민정당과 공화당 같은 군사정권기 집권당의 계보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그 정당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명박이라는 특이한 개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6월 항쟁 이후 자라나기 시작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반동 개혁의 암초에 걸리기는 했다. 또 이 정권 주류 인사들의 자발없고 천박한 처신 탓에 이전 두 정권 시절이 ‘잃어버린 낙원’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컨대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은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정권 핵심부에 포진한 이들이 훨씬 더 몰상식하고 욕심 사납다는 점 정도겠다.
이리 생각하면 한나라당의 대안이 진보 정당들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큰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국의 지방정부나 의회에 진보 정당이 무리로 들어가 한나라당 독점을 깬다면,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도 큰 힘을 얻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 정당들 역시 옛 여권 세력과 마찬가지로 유권자의 곤혹스러움을 없앨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어떻게 다른지를, 과연 다르기는 한지를, 대부분의 유권자는 모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치세력이 주저앉는다면, 그건 자업자득이다.
참으로 날카롭고도 섬뜩한 지적이다.
"정치인 스스로 유권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데, 유권자가 마법을 부려서 정치판을 정리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해 지자체 독과점을 연장한다 해도, 그걸 유권자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예컨대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은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정권 핵심부에 포진한 이들이 훨씬 더 몰상식하고 욕심 사납다는 점 정도겠다."
"진보 정당들 역시 옛 여권 세력과 마찬가지로 유권자의 곤혹스러움을 없앨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치세력이 주저앉는다면, 그건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