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북관계 관련 소식을 보노라면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남북한 어느 쪽의 언행을 봐도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발견하기 어렵다.
국제 기준들을 무시한 북한의 남한 부동산 몰수, 동결 정책은 일종의 “자살골”이라고 본다. 투자자 자산을 그렇게 대한다면 과연 어느 나라의 투자자가 북한에 생명처럼 필요한 돈을 대줄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서방 언론에서 대북 악선전이 흘러넘치는데, 북한이 오히려 비난자들에게 스스로 “도움”을 주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동북아 최빈국인 북한의 사정 개선에 절실히 필요한 관광 재개를 계속 미루고, 경협보다 ‘핵문제’를 우선시해 과거 정권들의 각종 약속을 사실상 파기한 남한 정부의 태도는 과연 신용과 책임의 태도인가? 더군다나 지금 남한 내 일부 극우파가 ‘천안함’의 비극을 반북 선전에 이용하려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 하겠다.
일반 범죄 용의자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법치국가에서 “북한 공격”의 그 어떤 확증도 나오기 전에 ‘북한 연루설’을 들먹이고 ‘보복’을 외치는 것은, 북한에만 ‘유죄추정’을 적용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결국 산적한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남북한 양쪽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의 원한을 이웃 나라에 대한 적대심으로 돌리면서 권력유지에만 급급하다는 것이 필자에게 남는 인상이다.
남한인 사이에서 대북 적대심을 선동하기가 쉬운 이유는, 북한의 돋보이는 “타자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자리매김하자면 위정척사론과 동도서기론적 근대의 선별적 수용, 그리고 초기의 신채호를 방불케 하는 혈통주의적 민족주의의 복합적 절충의 결과물이라 봐야 한다. 그 이분법성과 배타성이 하도 강하기에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이라면 조건부 호의적으로 보려는 구미 좌파까지도 북한이라면 거의 소화하지 못할 지경이다.
거기에다 조선시대식 권력세습 문제와 개인 인권을 사실상 이차시하는 국권주의적 사고 등까지 가미되기에, 남한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반북의식이 쉽게 확산된다. 그런데 과연 이 반북의식을 보수층 결합이데올로기로 만들어 정권유지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미래지향적 태도인가? 서구인들에게야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반외세 민족주의의 호소력을 잘 감지할 것이다.
민족자존처럼 호소력이 강한 구호들을 내세우는 정권과 대결한다고 해서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무너뜨린다 해도 그 유민들이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체제에 성공적으로 흡수될 수 있다고 보는가? 비록 어렵더라도 소모적 대결과 2000만 북한인들이 남한의 소외층이 되는 엄청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북한에 겸허하게 다가서서 그 타자성을 극복해보는 것은 유일한 방편일 것이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 했던 대통령을 비롯해서 남한 지배층의 상당부분은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들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왜 예수에게 이웃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이웃사랑이란 우월적 입장에서 행하는 자선행위는 아니다. 이웃이 나와 달라도 나처럼 되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갈증부터 풀어주고 그 배고픔부터 해결해주고 점차 서로 하나가 되는 게 예수와 같은 사랑이다. 친구보다도 오히려 나와 원한이 쌓인 이를 존중해주고, 있는 대로 받아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게 예수의 논리다.
일요일마다 성경을 읽는 한국의 많은 지배자들은, 대북 발언을 할 때에 그 생각을 왜 못하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이명박 정권 들어서 남북관계가 정말 한심한 수준이 되긴 했지...
역시 북의 문제만도, 남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결론이지만, MB 정권의 "몰상식하고 욕심 사나운" 인사들은 정말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