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들이 4대강을 지켜야 한다! 개발주의는 생태계의 ‘죽임’으로 이어지기 쉽다. 산 것을 죽이기보다 죽인 것을 살리기가 훨씬 어렵다. 4대강 프로젝트는 ‘죽임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사입력시간 [141호] 2010.05.28 15:09:28
고종석 (저널리스트)
생태적 감수성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생래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보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도 그 둘 다가 원인이 돼, 예컨대 이반 일리치 같은 이를 ‘구루’로 삼는 근본적 생태주의에는 약간 저항감을 느낀다. 근본적 생태주의에 귀를 열어놓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것이 더러 과거를 무작정 미화하고 ‘진보’(기술과 관련됐든, 체제와 관련됐든)를 적대시하는 낭만주의로 비치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타지 않고, 쓰레기를 덜 만들고, 세제를 덜 쓰는 정도의 실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생태주의가 ‘과거가 나았다, 과거로 돌아가자’라는 낭만적 함축을 지닐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는 세탁기나 냉장고가 있는 세상을 그것들이 없는 세상보다 더 ‘진보적’이라 여긴다. 또 나는 한 개인이 속한 신분에 따라 그가 누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들이 천차만별인 사회보다,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비슷한 질과 양의 재화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더 ‘진보적’이라 여긴다. 더 나아가, 한 개인이 공동체의 촘촘한 규율에 얽매여 있는 사회보다는, 적절한 연대 속에서 개인주의가 만개한 사회를 더 ‘진보적’이라 여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도(程度)’ 문제다. 근본적 생태주의가 자연과 ‘인간성’의 보전을 위해 다른 가치를 가볍게 여기듯, 흔히 물질적 진보를 내세운 개발주의 역시 기술 제일과 ‘인간의 편의’를 내세우며 다른 가치를 하찮게 여긴다. 둘 중 더 위험한 것은 후자다. 근본적 생태주의가 인류를 포함한 생태계의 ‘살림’을 목적으로 삼는 데 반해, 개발주의는 (그 선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생태계의 ‘죽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 것을 죽이기보다 죽은 것을 살리기가 훨씬 어렵다. 이명박 정권이 서둘러 진행하는 이른바 ‘4대강 프로젝트’는 이 ‘죽임’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태 문제가 걸린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4대강 프로젝트’ 역시 찬성파와 반대파가 맞서 있다. 그리고 그 찬반 여부는 개인들의 타고난 생태적 감수성과 축적된 정보에 달려 있다. 사실 4대강 프로젝트의 경우, 축적된 생태적 감수성은 그만두고라도 적지 않은 시민에게 이 사업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정보가 충분치 않다. 그래서 시민들은 정부의 말을 들으면 그 사업을 그럴듯하게 여기다가도, 생태주의자들의 말을 들으면 이쪽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4대강 프로젝트는 한때 생태주의자들과 치과의사들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견주면, 그 당부(當否)의 판단에 전문적 지식이 훨씬 덜 필요한 사업이다. 정부는 이 4대강 프로젝트를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니 ‘녹색 뉴딜 사업’이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추진한다. 그러나 이것이 시민사회의 반대로 정부가 포기하겠다고 공언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변형된 형태라는 점은 평범한 시민의 눈에도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생태론자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 최근 호(112호, 2010년 5·6월)에서 지적했듯, 이 ‘4대강 살리기’라는 것은 대운하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강의 흐름을 끊고 대규모 댐을 곳곳에 세우고 강바닥을 깊게 파헤친다는 것은 결국 뱃길을 만들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라면 ‘4대강 지키기’에 나서야
나는 <시사IN> 독자들이, 생태주의자든 아니든, 이번 호 <녹색평론>을 꼭 구해 읽기 바란다. 지면의 3분의 1 이상을 ‘4대강 프로젝트’에 배당한 이번 호를 읽고 나면, 정부가 이 사업의 효과로 내세우는 홍수 방지나 수질 개선 따위가 얼마나 군색한 핑계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4대강 문제’가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돼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비판자들이 ‘4대강 프로젝트’를 ‘4대강 죽이기’라고 비판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 4대강 문제는 정치적 좌우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니, 굳이 판단하자면, 4대강을 그냥 놓아두는 것이 정치적 보수가 해야 할 일이다. ‘보수주의(保守主義)’란 그 사회를 지탱해온 인문적·자연적 환경을 ‘지켜나가자’는 주의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임기 안에 이 사업을 마무리해 그것을 치적으로 삼고 싶을지도 모른다. 업적에 대한 정부수반의 욕망과 조바심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멀쩡한 강들을 ‘죽이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도 버려야 할 욕망이다. 4대강 프로젝트는 접는 것이 옳다.
4대강 프로젝트는 접는 것이 옳다.
4대강 프로젝트는 "접는 것이 옳다".
4대강 프로젝트는 접는 것이 "옳다".
좋겠다도 아니고, 맞다도 아니고, 옳다다.
고종석씨의 강력한 가치관이 엿보이는 말이다.
MB가 과연 4대강을 접을까?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거 빼고 나면 시첸데...
MB는 4대강을 끝까지 추진하다가 전국민적 저항을 받고 하야되는 것이 옳다.
그래야 두 번 다시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말아먹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