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1970년대편) - 인물과 사상사 (2003-01-25) (읽음: 2003-04-30 09:41:52 PM)
- 강준만 지음
-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1970년대를 재현하다!
1970년대를 여는 새해 벽두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지향하는 민주 정치의 결실을 이루자"는 박정희의 신년사가 발표되었고, 미국에서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정인숙이란 미모의 여인이 살해되었고, 와우아파트가 붕괴했다. 1970년은 한국 경제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해였지만 그 한편에선 1970년대를 예언하는 김지하의 <오적>이 발표되고, 평화시장세서는 전태일이란 노동자가 분신자살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70년대가 궁정동에서의 총성으로 마감되기까지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의 3권의 책은 새마을운동 현장으로, 드라마 붐이 일기 시작한 TV브라운관 속으로, 우리 건설업체가 진출한 중동건설 현장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보리밥을 싸올 것을 강요한 도시락 속으로 종횡무진하며 1970년대의 자화상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전태일은 가고 없다. 남은 건 경부고속도로다
1970년대는 어수선한 해방 이후와 전쟁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새로 개편되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를 보는 관점은 지금의 상황과 역사를 보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70년대를 바라보는 키워드로 꼽고 있는 것은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다. 경부 고속도로가 7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말이라면 전태일은 그 이면에서 희생당하고, 억눌리고, 왜곡되어야 했던 우리 사회의 가치를 말한다. 그러나 전태일은 가고 없다. 사람들은 전태일을 잊어버렸다. 남은 건 경부고속도로다.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기억 속에서만 지난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한편에서 잊혀져버린 전태일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일깨우고 있다. 1970년대, 새롭게 일어났던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외면해버린 진실은 또 무엇인가?
역사는 스스로 다가와 대중의 눈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다
이 책은 개인적인 기억속에서, 때로는 TV나 입소문을 통해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1970년대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전해주고 있다. 중장년층에게는 지난 기억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젊은 세대에게는 현재의 행복 뒤에 숨겨진 한 시절의 땀과 눈물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갖가지 사건에 대한 흥미 잇고 실감나는 접근을 통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체를 통해 이 책은 70년대를 가장 진실되게 그리고 박진감 넘치게 알려줄 것이다." (모닝365 책소개글)
- 월간 인물과 사상 구독연장 선물(보너스북)로 받은 책이다.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혹은 조정래 소설 '한강'과 비슷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비슷했다.
- 이러한 류의 책을 예전에는 '빨간책' 혹은 '불온서적'이라 하여 읽지 못하게 했다. 별 불온한 내용도 없구만...
- 70년대, 특히 70년대 초(1970~1972)는 박정희와 유신, 그리고 전태일과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딱 그시기이다. 역시나 언론학자답게 언론의 당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고, 그간 쌓인 방대한 역사문건들을 기초로 박세길의 '다현사'보다 훨씬 깊이있게 분석했다.
- 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보긴 했으나, 새삼스럽게 놀라운 충격으로 와닿은 대목 하나.
"불행하게도 민족 반역자들은 진짜로 이순신을 좋아했다. 그들은 이순신한테서 기절초풍할 매력을 발견(?)했다. 조선 5백 년, 민족사 5천 년에서 이순신만 가지고 있는 매력 포인트! 그걸 밝히면 민족 반역자들이 이순신에게 깜빡 죽었던 이유가 나올 것이다. 그게 뭘까? 변치 않는 애국심이다. 왕과 대신들이 도망을 다니든 말든, 원균이 모함을 하든 말든, 백성이 좌충우돌하든 말든, 이순신은 오직 나라사랑의 길로 매진하는 애국자의 표상이었다. 돈도 벼슬도, 음모도 핍박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의 나라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는 약간 과장은 있지만 대체로 진실이다. 애국자 이순신의 모습이 민족 반역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이순신은 욕망도 야망도 없다. 나라사랑만 있을 뿐이다. 민족 반역자도 독재자도 욕하지 않는다. 일본제국이든 대한제국이든 국가라면 무조건 받들 뿐이다. 빨갱이로 집어넣고 고문을 해도 '아야' 소리도 안 낸다. 묵묵히 백의종군을 다짐할 뿐이다. 이 사람이 바로 민족 반역자들이 발명한 성웅, 일명 '바보 이순신'이다. ...... 성웅은 머릿속에 '나'는 없고 '국가'만 있는 인간상이다. '나'를 잃어버린 존재다. 이런 성웅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다. 즉 '성웅=멸사봉공 정신'이다. 멸사봉공, 박정희는 이 말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는 1939년 만주군관학교에 보낸 '충성 혈서'에도 이 구절을 빠뜨리지 않았다." (최상천 [알몸 박정희](사람나라, 2001), 72~75쪽, p. 274에서 재인용)
내가 존경하는 인물 1호로 꼽았던 이순신... 과연 나는 멸사봉공 때문에 이순신을 존경한 것이었던가? 아니면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이순신에 대한 성웅화 작업, 세뇌작업 때문에 그렇게 머리에 박힌 것인가? 과연 내가 이순신을 존경하는 인물 1호로 꼽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같은 '이'씨라는 점도 있긴 했을 것이다. 또한 본관도 비슷한 '덕수'와 '덕산'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 이순신을 존경했던 것은, 멸사봉공 정신도 물론 큰 이유이기는 했겠지만 그보다 더 컸던 것은, 외세를 '힘'으로 물리친, 그것도 철저한 준비와 뛰어난 전술 전략으로 적을 압도한 바로 그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을 압도하는 '힘'에 대한 동경과, 침략자에 대한 거부감과, 멸사봉공 정신과, 오뚜기처럼 끊임없이 일어서는 그 뚝심이 총체적으로 합쳐진 결과였을 것이다.
멸사봉공만 강조하여 나쁘게 악용한 민족 반역자들은 당연히 옳지 않지만, 또 그 부분만 강조하여 반대로 이순신을 폄하해버리는 해석도 옳지는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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