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 한겨레신문사 (2002-05) (읽음: 2003-03-29 10:14:52 PM)

- 박노자(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지음

 

-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박노자는 주장한다. '난 한국인'이라고......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여러 잡지와 신문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의 글에서처럼 그는 신랄하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박노자 교수, 호리호리한 몸매에 훤칠한 키, 전형적인 서구유럽인 스타일이었던 그의 첫인상은 '젊은 레닌'이었다. 혁명의 나라 러시아와 그의 닮은 외모가 빚어낸 이미지였으리라. 그러나 몇 마디의 대화를 통해 그가 무척이나 순박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배려와 겸손하면서도 정확한 자기 주장 역시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나누며 박 교수는 자신의 새로운 조국, 한국에서 내는 첫 책에 대한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부디 낯선 이방인의 대책 없는 비판이 아니길, 진정 사랑하는 이 나라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책을 통한 인세수입 모두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쓰여졌으면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 이방인으로 하여금 이 한 권의 책을 쓰게 했던 것일까. 박노자와의 짧은 만남이 남긴 의문이었다. 그리고 궁금증은 그가 적은 머리말에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노조의 지원을 받는 좌익 정당들이 국회 의석을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공산당의 기관지까지도 국고 보조금을 받아 발간하는 다양성의 나라, 입사 때 여성이나 장애인이 '정상적인 남성'보다 더 유리한 평등의 나라에서 살면서, 노동운동가들이 감옥에 잡혀가고 여성들이 손님의 냉면을 잘라주는 '음식집 아줌마' 정도의 역할밖에 맡지 못하는 고국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기가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가슴이 아픈 만큼 할 일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기도 한다. 학생들이 교수를 만날 때 노르웨이처럼 동등한 인간으로서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는 나라, 매매춘을 한 여성이 스웨덴처럼 국가의 보호를 받은 반면에 그들의 성(性)을 돈으로 산 남성 '고객'들은 잡혀가서 심판을 받는 나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각종 원조를 제공하는 일이 덴마크처럼 지성계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가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자기가 남을 잡아먹고 싶으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기를 겁내며…… 다들 의심이 깊은 눈으로 서로서로 쳐다보면서……(노신(迅), 『광인일기(狂人日記)』 중에서)

이 말보다 우리의 초상화를 정확하게 그려낸 말은 없을 것이다.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병들을 앓고 있는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논해보고, 나아가서 '치료과정'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날카로운 이방인의 눈, 그리나 따뜻한 한국인의 마음

박노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전근대적 유물들' 이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라는 교집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로부터 비롯된 무장숭배가 남한에서는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과 김유신 동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주체탑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발견된다는 논리 역시 흥미롭다. 물론 이들 '우상숭배'가 남북한 정권의 정통성 부여와 이를 통한 체제유지라는 필요성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는다. 

박노자는 이처럼 감춰진 기만과 폭력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보수언론과 지배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날카로운 메스는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문화>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로 이어진다. 그는 묻는다. 젊은이들이 군대생활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되는 이유, 종교가 사적 이익의 보루가 되는 이유, 교수가 되기 위해 부당한 대우와 위협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물음 속에는 이 땅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제도적·사회적 폭력에 대한 울분이 섞여 있다.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폭력을 가르치는 군사문화, 굴종과 타협을 강요하는 대학 사회의 현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의 선 밖으로 내몰고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 등은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박노자가 이 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어렵거나 거창하지 않다. 다만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가 안고 있는 '비상식들'들을 하나둘 없애 나가야되지 않겠느냐는 애정 어린 충고일 뿐이다. 우리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역시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과 선량한 상식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Yes24 책소개글)



- 날카로운 안목과 한국인다운 심성을 가지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 박노자를 [인물과 사상]에서 자주 봤었다. 그의 책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 신선하거나 재미있는 소재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한가지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것으로 보이며 노정권 들어 슬슬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긴 하다. 

-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그의 통찰은 참으로 대단하다. 민족주의는 그에게 있어서는 역시 극복되어야 할 '그릇된 이데올로기'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통념과 일치한다. 민족주의는 한국의 고유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한다.... 저항적 민족주의건 그 무엇이건. 

"한마디로, 현재 국민의 정신적 성숙으로 국가가 더는 주민들을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갈 전망이다. 이 역사적 진화를 '교실의 붕괴'나 '사기 저하', '국가관의 위기'로 보는 파쇼적 국수주의자 일부는, 학생들에게 단군 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어린 뇌리에 '국가'와 그 권력에 대한 공포와 무조건적 존경을 주입하려 한다. 학생들의 의식이 성숙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한국형 파시스트들은 원색적인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빛이 바랬던 국가의 신성함(?)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 그들에게는 민족과 단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족과 단군의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국가, 즉 국가의 지배층에 맹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p. 54-55) 

"미국의 선교사, 군인, 외교관의 오만과 인종, 문화적 차별주의가 식민지 조선과 남한의 많은 지식인에게 반미의식을 불러일으켰듯이, 현재와 같은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은 많은 '수혜자'에게 심한 반한(反韓)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앞에서 이야기한 고려인 여성도 그렇지만, 6년전 참치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조선족 선원이 끔찍한 선상 반란을 일으킨 일이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p. 72) 

그만큼 한국인들의 비 한국적인 이방인들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 극심하다는 것이겠지... 

"...남북 통치자가 합의하여 통일을 이룩한 뒤에도 지금 북한 수용소에서 고생하거나 만주벌판을 떠도는 북한의 반체제 투사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할 북한 주민의 편에 서서 또다시 투쟁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지만, '현실 사회주의'와의 패할 수밖에 없는 투쟁에서 자신의 미래까지도 희생하는 바로 이러한 태도가 남한을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장 사회주의적인 태도다." (p. 80)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실익이 아닌 '민중을 위한'이라는 명분과 대의에 목숨을 내바친다! 심지어 자신의 미래까지도 희생하면서!!! 

"여기서 나는 또 하나 충격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유럽 사회나 소련 지식인 그룹에서 일반적으로 당연시하는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가지려면, 이 나라에서는 '운동권'이라는 일종의 '반란자'대열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군대라는 것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훈육기관이라는, 우리로서는 일반적이고 당연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 '반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사고를 하기 위해서 꼭 '반란'을 일으켜야 할 현실!" (p. 104) 

"...문제는 강간을 직접 당해본 사람은 현실과 효율을 잘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당해본 사람을 어차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로서는 김일성식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 논리를 발생시킨 현실과 이 논리를 따르는 많은 동포의 감정을 쉽게 무시할 수도 없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화해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p. 136) 

북한의 현실과 민족적 명분, 그리고 남한의 경제적 성장... 복잡한 문제다 역시.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해야 할 사실은, <독립신문>의 '개화 담론'의 한 맥을 이루는 것이 바로 노골적인 인종주의 사상이었다는 점이다." (p. 285) 

독립신문이 개화를 선도했던, 당시 가장 유력한 신지식 공론기관이었다는 사실 이면에는 바로 이런 사실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쉽게 알기 힘든데, 놀라운 발견이다. 인종주의는 오늘날 한국에서 타파되어야 할 가장 비 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패악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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