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의 한국일보 칼럼이 중단된 이후, 간혹 [인물과 사상]에서만 칼럼을 볼 수 있었는데, 최근 이리저리 찾다보니 [선샤인 뉴스]라는 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곳의 칼럼을 퍼다 날라본다.
>> 원문: http://www.sun4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52
대한민국엔 영ㆍ호남인만 사는가?
[강준만 칼럼]
2008년 09월 28일 (일) 20:14:53 강준만 kjm@chonbuk.ac.kr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의 주장은 이미 여러 번 했던 것이다. 왜 자꾸 했던 말을 또 하는가? 한국사회의 진보에 중요한 문제가 크게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 내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 그 어떤 직간접적 반론도 보질 못했다. 무조건 무시당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 주장의 수용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의 해묵은 문제들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지역주의 청산의 선구자라도 되는 양 늘 이걸 목청 높여 외친 덕분에 개혁ㆍ진보의 간판까지 얻고 출세를 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일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직접적이고 집요한 사적 이해관계가 숨어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자기부터 살자고 하는 욕심이 판단을 흐린다. 자기부터 살자고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공익과 부합된다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핍박당하는 소수자들이 자기부터 살자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앞서 말한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그들의 방법은 지역주의 청산은커녕 지역주의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들은 늘 지역주의 청산의 답을 호남에서 찾으려고 든다. 호남이 어떻게 달라져야 영남이 바뀐다는 논법이다. 딜레마 상황에서 호남이 먼저 돌파구를 여는 게 호남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 선의일까? 선의라 해도 그건 초등학생 수준의 순진한 발상이지만, 논법을 제시하는 자세가 고약하다. 역사적 업보와 지방의 낙후로 인한 모든 국가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호남에 집중시킨다.
그들에겐 호남 정치인을 비판했을 뿐이라는 도피처가 마련돼 있다. 정치인이야 대한민국의 동네북인데 그걸 때리는 걸 누가 마다하랴. 일부 개혁ㆍ진보적 호남인들까지 그런 주장에 부화뇌동하거나 오히려 앞장까지 서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 정치인을 뽑은 유권자들은 어리석거나 사악했나 보다. 아무리 투표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게 한국 유권자들의 오랜 습속이라곤 하지만 이런 자기모멸이 없다.
나는 일찍이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게 개혁ㆍ진보의 가면을 벗으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개혁ㆍ진보의 기준이 무엇인가? 나는 서구식 기준에 동의하지 않으며, 한국에선 학벌과 지역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주요 기준으로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엔 사이비 개혁?진보주의자들이 많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나의 답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영ㆍ호남인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반적 법칙과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지, 호남에서 어떻게 작위적으로 무얼 해보려는 수법은 성공할 수 없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지방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한가지 불멸의 법칙은 “우리 고향 사람ㆍ세력이 중앙에서 힘을 써야 지역발전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법칙은 늘 현실로 입증되곤 했다. 이 경험 법칙을 깨려고 애쓴 정권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중앙정부의 인사와 예산이다. 이것에 대해 지역을 초월한 투명성ㆍ공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못하면 아무리 영ㆍ호남 세력이 균형되게 동거를 하는 정당을 세운다 해도 분열로 깨지게 되어 있다. ‘동진(東進)’이니 ‘서진(西進)’이니 하는 전략ㆍ전술 차원에서 이뤄지는 방식으론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없다.
모든 걸 한번에 뒤엎으려는 성급은 죄악일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 고향 사람ㆍ세력이 중앙에서 힘을 써야 지역발전에 유리하다”는 법칙을 깨는 게 진정한 진보다. 이 법칙이 깨져야, 지역주의 투표 행태도 완화되고 진보정당도 클 수 있다.
/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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