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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10월 6일] 역사는 반복하는가?(Ⅱ)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역사는 반복하는가?"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를 바라보면서 지난 주 이 지면에 던졌던 화두였다. 구체적으로, 최근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와 관련해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결과는 효율성과 풍요가 아니라 1930년대의 대공황이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 20세기 전반부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다시 한번 "역사는 반복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역사'란 세계가 경험한 1930년대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경험한 1997년의 충격이다. 다시 말해, 월스트리트의 위기와는 별개로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1997년 터졌던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한국에 또 다시 터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11년 전 외환위기 재현 걱정
1997년 경제위기는 매우 복합적인 산물이다. 우선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나 먹이를 찾아 나선 월가의 금융자본의 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가속화된 금융 세계화에 따른 동남아 환란의 세계적인 감염효과 등 국제적 요인들을 들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낡은 박정희 모델의 한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나친 낙관론에 기초해 무리하게 선진국의 상징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너무 빠르게 개방함으로써 단기간에 외채가 급증한 것에 연유한다. 나아가 위기관리 실패이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1996년 말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하는 분열적 정책을 펴다가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항복선언을 해야 했다. 이어 한보사태와 김현철 게이트까지 터져 레임 덕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대선국면까지 겹쳐져 여야를 통틀어 누구도 책임 있는 정책을 펴나갈 수 없었다.
물론 현 상황은 1997년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걱정스럽게도 위기관리라는 면에서는 1997년과 빼어 닮았다. 우선 대통령과 측근들의 낙관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간의 널뛰기식의 환율정책에 대해 반성을 하기보다는 월가의 금융위기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 "선제적 대응 덕분에 주가 환율의 충격이 작았다"고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또 청와대의 관계자는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더 큰 위기에 준비하는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며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쓰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환을 적극적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분열주의적 정책노선도 빼어 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닥쳐올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적인 경각심을 일깨우고 국민적인 에너지를 모아 초당적으로 대응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론을 분열시키는 분열주의적인 정책만을 추구하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무차별한 처벌이 도를 넘어서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유모차부대'에까지 확대되고 있고 최진실의 비극에 힘입어 야당과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이버모욕죄법을 만들고 있다.
이전 정권과 시민운동 등에 대한 전방위 표적사정을 펴는 한편 야당과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1%의 '강부자'를 위한 종부세 완화 등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 민중단체들과 시민단체들에서는 '이명박 독재 반대 국민전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는 근거 없는 낙관론만
이명박 정부는 우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알리는 한편 분열주의적 정책들을 중단하고 국민 통합적인 노선으로 선회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거국내각도 구성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나라 망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낙관론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라는 분열주의적인 정책 추진으로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1997년의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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