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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패권주의를 깨야 한다
[강준만 칼럼]
2008년 10월 05일 (일) 23:28:30 강준만 kjm@chonbuk.ac.kr
“예전에 강준만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너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라는 강한 파토스때문에 읽기가 부담스럽지요. 대체로 광주 전남쪽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피해의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픈 5·18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부지기수로 많이 있었습니다. 5·18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지나치고 정치적이고 피해의식적입니다. 5·18은 승화되어져야 합니다. 지역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나 김대중씨도 지역주의적인 면이 강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님은 그 점을 인정을 하지 않지요. 피해자 논리로는 더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제가 광주쪽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그쪽 분들이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극단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앗쌀하게 등등. 이 문제도 피해의식과 연결된 부분인데요. 광주분들의 극단적인 성향은 그쪽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치유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낼 수는 있지만 그것도 정도문제입니다. 분명히 우리 호남사람들도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역적인 특수성이 보편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실린 ‘대한민국엔 영·호남인만 사는가?’라는 글에 대해 ‘쁘띠’라는 독자께서 주신 의견이다. 좋은 화두를 제기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5·18을 ‘부지기수’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과 민중에 대한 정치인·지식인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엔 동의할 수 없지만, 좋은 뜻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내겐 호남 정서가 없다. 호남의 한심한 점(피해의식 포함)에 대해선 ‘쁘띠’보다 내가 더 비판적인 것 같다. 나는 호남의 보수성과 추한 면을 비판한 글을 여러 차례 쓴 바 있고, 그 덕분에 호남 광신도들로부터 “아무리 강준만이라지만 이건 용서할 수 없다”며 혹독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강준만이라지만’은 ‘쁘띠’가 지적한 나의 ‘치우쳐 있는’ 점을 감안해준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내 글이 호남 지역주의라는 관점에서 읽힐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고, 그 가능성이 ‘쁘띠’의 반응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한 건 자존감이다. 호남의 자존감을 짓밟는 짓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무더기로 저질러져도 잠자코 있는 호남! 아니 박수까지 치는 일부 순진한 호남인들! 이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은 호남 파토스에서 비롯된 호남 옹호론보다 더 과격할 수 있으리라. 과거 ‘쁘띠’가 내 글에 대해 느낀 ‘부담’은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호남인의 자존감이 좀 상한들 어떠랴. 나의 더 큰 문제의식은 선의야 어찌됐건 지역주의와 관련해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주문을 호남인에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또 한번의 ‘호남 죽이기’를 초래해 지역주의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걸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현의 말마따나 엄마도 사람이지만, 호남인도 사람이다.
내가 깨고자 하는 건 영남패권주의만이 아니다. 영남패권주의를 흉내내려는 호남패권주의 열망도 분쇄 대상이다. 지역주의를 영호남의 관계라고 하는 관점에서만 보려는 시각이 바로 그런 패권주의의 산물이다. 나는 그렇게 해선 지역주의가 해소되지 않으니, 모든 지역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을 세우고 실천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내게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내 주장이 새롭다는 듯 바라보는 시각의 교정이 바로 대안이다. 호남인에게 주문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도 대안이다. 더디 가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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