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진중권 선생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는 듯 하다.
"반MB는 이미 국민 대다수가 하고 있습니다"
반MB민주연대를 하더라도 전선을 제대로 "경제문제"에 집중해서 형성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제대로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물론 지금 만들려고 하는 빈MB민주연대가 경제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리는 없겠지. 현재의 지지부진한 내·외부적 문제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틀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일테니 뭔가 현재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갈 수 있을 가능성도 있긴 하고.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구태의연하고 복지부동한 모습 자체를 바꾸지 않고 이대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겠다는 것은, 글쎄... 도둑이 강도 나무라겠다는 의미 이상으로는 국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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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no=21764
(진보신당 게시판 - 세상사는 이야기)
민주당-민주노동당의 반MB 연대에 대한 단상
진중권, 2008-11-29 06:37:31
김대중씨의 발언이 있고 나서, 바로 민주당이 민주노총을 방문하여 반MB연대를 하기로 천명했네요. 연대는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겠지만, 과연 그런 방식의 연대가 효과적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저런 형태의 연대는, MB에게 정권을 내주었던 작년의 상태를 그대로 재연하겠다는 얘기로밖에 안 들립니다.
민주당의 경우, 제가 강연차 방문했을 때 받은 주관적 느낌인데, 아예 집권 자체를 포기한 것 같더군요. '집권을 위해서는 다시 지역당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제 주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반박당했습니다. '정당에는 역사란 게 있다'나요? 그 역사가 어떤 역사인지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요. 한 마디로 집권을 못하더라도 지역에서 기득권만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얘기죠. 열린우리당 시절에 지역의 기득권마저 빼앗길 뻔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이 상태가 낫지 않겠냐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이쪽도 전여옥만큼 참 팔자가 편해 보이더군요. 아무튼 지역이 의제를 대신하는 한국정치의 파행적 구조가 낳은 이 현상,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민주노동당의 경우, 대선 참패후에도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거부했던 분들이고, 그후에도 이렇다할 개혁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네요. 촛불 때에도 강기갑 의원의 1인 플레이를 제외하면, 당 자체는 존재감이 없었고 당원들의 자발적 움직임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지요. 이번 민주당과의 연대의 움직임도, 최근 당세가 위축되면서 존립의 위기감을 느끼는 가운데, '재기를 위해 그래도 뭔가 해보자'는 심정으로 기껏 과거에 존재했던 비판적 지지의 관성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평가합니다. 원내 정당이면서 정책 단위를 만드는 데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득세는 '민주, 통일'이라는 80년대 의제에 안주하다가, '배가 고프다'는 서민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사이에 MB가 경제대통령의 허상을 안고 거의 무주공산을 차지하듯이 들어와버린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지난 정권 10년 사이에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중산층이 줄어들고,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중요한 원인에 대한 반성이 없이 또 다시 그 밥과 그 나물을 모아 비빔밥을 만든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런 기대는 나중에 또 다시 참담한 심정으로 꺼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허상에 불과합니다. 당장 지지율을 좀 올리니 마니, 하는 차원에서 얘기해야 할 게 아닙니다. 뭔가 근본적인 수술이 있어야 합니다.
MB가 워낙 꼴통이라 그나마 10년간 이룩해온 '민주, 통일'의 업적마저 무화시키니, 다시 저런 의제로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나라당이 MB의 가공할 실정 속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제기되는 '민주, 통일'의 의제보다는 여전히 장기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제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선택의 준거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후자를 건드리지 않고, 전자만을 갖고 하는 연대는 허깨비일 뿐입니다. 파괴력도 없구요.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는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안 없는 연대라니요...
다시 말해, 민주당은 자신들이 경제정책에서 그 동안 한나라당과 큰 차별성이 없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거기서 분명한 전략적 선회를 선언해야 합니다. 이것 없이 어영부영 다시 연대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배에 반창고 붙여놓는 격이지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민주, 통일'이라는 이슈 하나만으로 곧바로 민주당 정권시절의 경제적 실정을 덮어버리려 한다면, 굳이 독립된 진보정당을 유지하기보다는 차라리 민주당과 합당에 나서는 게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민주당이 야당이 되었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진보신당이 갈려 나왔으니, 사실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도 거의 사라졌지요.
연대를 하려면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을 가지고 해야 할 텐데, 그런 것에 고민 없이 그저 반MB만 선언한다고 뭐가 될 것이라 보는 모양입니다. 반MB는 이미 국민 대다수가 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뭔 짓을 해도 한나라당을 지지할 골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그런 골수가 아니면서 아직 MB를 지지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MB가 좋아서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요. 대안이 없어서 마지못해 지지하는 것이지. 그러므로 연대를 하려면 제대로 된 대립구도를 만들어내야지요. 한 마디로,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MB 정권의 핵심의제, 즉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길 전망이 있어야 싸움을 걸지요.
물론 진보신당은 MB 정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후퇴, 납북협력의 동결에 대해서도 앞장서 투쟁해야겠지요. 연대가 필요한 사안에는 당연히 적극 결합해야하구요. 덩치가 작아서 그렇지, 아마도 이 역시 진보신당이 누구보다 잘 할 겁니다. 민주당의 경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이 없고, 그나마 공격수의 역할을 할 유시민은 이미 탈당을 한 데다가 요즘은 몸을 사리며 MB정권에 대한 공격보다는 노짱 보디가드에 주력하는 인상이고, 한때 그쪽에서 말 좀 하던 사람들은 죄다 노무현 정권에 줄댄 "원죄"(자기들 스스로 그렇게 부르더군요) 때문에 말빨이 안 서고... 그래서 뻘쭘해 하는 그런 상황이지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가장 중심에 놓고 실천에 옮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런 전술적 차원의 기동을 넘어, 장기적으로 대안경제의 상을 제시하는 전략적 기동이겠지요. 여전히 "문제는 경제"입니다. 이것 없이 한나라당 독재, 극복 못합니다. 빈부격차의 폭을 줄이고, 서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중산층의 층을 두텁게 하고, 삶의 안정성을 제고하고,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를 진정으로 선진화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 이게 진정한 의미의 진보적 의제이고, 또한 그게 앞으로 진보신당이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도 이제 정의롭고 효율적인 성장의 전략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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