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스 파시즘 - 개마고원 (2001-07) (읽음: 2001-11-09 11:27:33 PM)

- 진중권 외 8인

 

- "한 출판사 사이트 게시판의 공방으로부터 직접적인 계기를 얻은 기획물로, 우리 사회에서 왜 성폭력 사건이 자심하게 일어나는지, 성폭력 사건이 표면으로 드러났을 때 정리·해결의 과정에서 필히 나타나는 '피해자 재보복'의 행태가 어떻게 가능한지, 또한 이를 방조·조장하는 구조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파헤쳐 보려는 시도이다. 군가산점제 논란, 여성 100인위의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 사건, 부산대 웹진 <월장> 사건, KBS노조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 박남철-반경환의 여성시인 모독 사건 등을 날카로운 관점으로 다룸으로써 한국 사회 남근주의의 파시즘적 정체를 해부하고자 한다.성차별이나 성폭력은 분명 '인권'의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절차적 · 외형적 민주주의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왜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보다 자심하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폭력 사건이 묻혀버리지 않고 드러났을 때 그 정리·해결의 과정에서 필히 나타나는 '피해자 재보복'의 행태가 어떤 터밭에서 가능하게 되는지, 그리하여 이를 방조·조장하는 구조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파헤쳐 보려는 시도이다. 군가산점제 논란, 여성 100인위의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 사건, 부산대 웹진 {월장} 사건, KBS노조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 박남철-반경환의 여성시인 모독 사건 등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방치된 사각지대에서 자라난 한국 남근주의의 정체를 해부해보고자 한 것이다.

'침묵'으로 드러나는 남성권력의 부패 
시인 박남철과 평론가 반경환에 의해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자행된 한 여성 시인에 대한 성적 모독은 그야말로 혐오와 모멸감의 극단을 경험케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성폭력이 일부 '무식한' 남성들의 무모한 공격인 양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되어왔지만, 이번 사건은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문인들조차 가세한) 남성권력에 의한 집단적 성폭력 방조마저 가능한 우리 사회의 밑바탕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성폭력은 일종의 계급폭력으로서 "지배의 위계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여성 전체를 소수자의 지위로 소외시키는 무기"이며, 특히 이 사건은 "'말'하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 자신이 만들어가는 데 대한 조직적 방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성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성 이미지를 관리하고 독점하려는 '말'의 억압인 셈"이라고 노혜경은 지적한다. 그 증거로 문단권력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을 들고 있다. 또한 이명원은 이에 대해, '문학 신비주의'의 한 변종으로서의 '문인 신비주의'와 가부장적 남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생식 신비주의'(남성권력의 '힘에 대한 숭배'와 '자아의 허약성')로써 한국 문단권력자들의 비겁한 침묵을 비판한다.

박남철-반경환의 언행은 소위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문인들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으며, 인권유린의 현장이 된 창작과비평사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한국 진보의 산실'이란 이름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이번 박남철-반경환 사건에서 보듯, 무자비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면서 창비 출신 문인을 위한 변명에만 열을 올리는 백낙청에게서 무슨 개혁과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고 물으면서, 진보와 실천을 표방했던 창비가 이제는 "본말이 전도된 '진보 상업주의'에 빠져 있으며 그 당연한 귀결로 권위주의적 패거리주의도 매우 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월장>에 대한 '싸나이'들의 사이버 테러와 관련해, 우리 군사문화와 성폭력 간의 함수관계를 분석한 진중권 역시 "폭력은 다수의 묵인 속에서 비로소 저질러질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은 더 이상 행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묵인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남성우월주의의 초라한 근거, only penis!
성폭력의 문제는 소위 '운동사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은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둘러싼 사태나 KBS노조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조직'과 '대의'라는 기치 아래 '내부 민주주의 문제'가 적극 개진되지 못하는 현실 그 자체가 여전히 '성차별' 따위는 후순위의 문제라는 투쟁시절의 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남성지배 사회'나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성함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들을 입막음하는 침묵의 카르텔은 한층 더 강고하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는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이라는 토론회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이제는 말하자"라니, 토론회의 제목이 참으로 슬프고 처절하다. 성폭력을 '해결하자'도 '근절하자'도 아닌, '말하자'는 제안으로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시타) 

이렇게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온 '침묵'은 남성권력의 자발적 '침묵', 즉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방관과 조장을 통해 구조화된 것이며, 그 밑바닥에는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이것이 얼마나 강고한지 일부 여성들조차도 이에 전염되어 있다는 김진희의 지적을 보라.) 별 생각 없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 남성들이 소위 '싸나이'적 정체성 앞에서 간단히 무릎꿇고 마는, '싸나이'라는 정체성에 자발적으로 동화되는 이러한 상황은 그것이 여성에 대한 '싸나이'의 우월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하, 열등한 것들. 너희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주아주 열등해. 원래 남자들 보다 열등하게 태어났어. (…) 월등한 내가 봤을 때 너넨 수억 년을 진화해야 대화가 될 정도가 될 것 같다."(부산대 웹진 <월장>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글 중에서) 

물론 '싸나이'들의 우월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빈자리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보복 속에는 여자를 지배하지 않고는 자기 확인이 안 되는,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왜소함을 웅변하고야 마는 남성들의 일그러진 자아"(-정승화)와, 때로 전형적인 가해자 심리전(피해자 모욕주기, 가해자들의 패거리 심리 궐기시키기, 수치심 전염시키기 등)으로 "우리 모두를 공범의식과 원죄의식에 빠뜨리는 것에 익숙한 파렴치"(-김현수)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남성우월주의의 근거 위에 덮인 먼지를 떨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고작 '페니스'뿐인 것이다.

왜 페니스 '파시즘'인가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이 있었을 때 상류층의 병역비리에 대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제대군인지원법을 강화하는 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것은 남성들끼리의 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때 희생자로 사회적 약자들을 방패로 사용하는 비열한 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권김현영)

남성우월주의에 근거한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방조되는 파시즘적 요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노혜경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성의 성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용인하거나 조장함으로써, 남성들은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자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약자에게 강자로부터 받은 억압을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집단적 성폭력의 방조는 단순한 여성억압의 차원을 넘어선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는, 궁극적으로는 남성 내부의, 힘에 근거한 위계적 구조를 고착화함으로써 파시즘적 사회로 가는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性)에 대한 극단적 불신이란 '반합리주의', 인간불평등에 대한 확신, 폭력성에 대한 둔감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파시즘과 한국 남근주의는 그 얼마나 닮아 있는가.

우월성을 주장하며 페니스를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그건 차라리 '파시즘'이란 유령의 손아귀에 붙들려 옴짝달싹 못하는 급소로서의 페니스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싸나이'들도 스스로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셈이다. 남성지배 구조가 타파되지 않는 한, 그들 역시 스스로의 왜곡된 정체성에 발목잡힌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성들은 약하거나 악하다. 어쩌면 그들의 성기처럼. 남성성의 상징인 그것은 곧잘 여성을 정복 또는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둔갑하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피부 중 가장 연약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가장 다치기 쉬운 작은 살덩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면 남성들의 위협도 이처럼 보잘것없는 허장성세인지 모른다. 실제보다 커 보이고 싶고 힘있게 보이고 싶어하는 점에서도 그 둘은 닮았다.(-정승화)" (Yes24 책소개글)


- 늘 보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좀 따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웬걸~!!!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들구나! 하는 느낌을 생생하게 받을 수 있었다. '100인 위원회'사건 때는 내가 몰랐고, '월장'사건 때는 게시판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나도 구경꾼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정말,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일수록 성차별이 더 심하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 더 뻔뻔스럽고 잔인하게 대처한다는 사실이 나를 당혹케 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지만... 

- 한국이라는 공간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남녀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의 제도, 법, 인식 모두가 이 불평등한 공기 그 자체가 되어 있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그냥 가능한 일.... 그러나 한번 눈을 뜨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어떻게 폭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한 글들이 많이 와닿는다. 나도 혹시 그런 가부장 문화에 찌들어 어느 누군가를 괴롭게 만들 그런 '남자'중의 하나일까...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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