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박 - 시공사(2005, 초판: 1995 도서출판 뫼, 전 3권)

 

- 좌백 지음


- "김용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불교적인 작품이 《천룡팔부》라면 좌백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불교적인 작품은 《생사박》이다. 각 장의 이야기 제목부터 흡사 선불교의 화두와 같다. 예컨대 '바람은 무슨 색이며 비는 어디서 오는가', '살생은 그 죄를 자기 몸에 새긴다', '구름이 골짜기에 비끼니 돌아갈 새가 집을 잃는다' 등. 옛속담과도 같은 속인의 지혜도 깃들어 있다. 예컨대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오르고 오리는 추우면 물속에 들어간다', '돌로 치면 개는 울지만 사자는 덤빈다' 등이 그러하다. 서정적인 색채의 제목도 있다. 예컨대 '꽃 웃음 뜰 앞에 비 뿌리고 소나무 난간 밖에 바람이 운다', '사랑이 얕으면 끊어지기 쉽고 맺지 못한 정에 원한은 길어' 등이 그러하다. 좌백의 소설 가운데 스타일리쉬한 문체와 제목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생사박》(시공사, 2005)이다.

 

내용만을 놓고 보면 모든 소설 장르 가운데 무협소설만큼 인문정신을 농후하게 발산하는 분야도 없다. 선과 악, 지배자와 피지배자, 고수와 초보자,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 정파와 사파,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굵직굵직한 대립과 충돌이 있다. 또한 이들의 경계선을 오가는 크고 작은 회색분자들과 온갖 권모술수가 등장한다. 이런 메시지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무협소설이 고전취향의 평론가들에게 폄하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낙후된 이야기, 오락효과를 노린 중복구조, 과장된 초현실주의적 묘사와 우연이 남발하는 스토리 전개 때문이다. 그러나 무협소설에서 리얼리즘이나 실사구시의 정신을 찾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 아닐까.

 

무협지는 성장소설의 가치를 지닌다.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최대노력의 원칙과 최소노력의 원칙을 모두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협소설이다. 일반적으로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최대노력의 원칙을 천명한다. 예컨대 좌백의 소설 <생사박>은 소림사 파계승 검은돼지 흑저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무술혼이다. 여기서'생사박'은 협의적인 의미로는 흑저가 창안한 박투술의 이름이지만, 광의적인 의미로 보면 인간의 실존적인 주제를 담은 존재의 길이다. 즉 생사박은 흑저란 파계승의 해탈에 이르는 길이었다.

 

"종소리 들으며 번뇌를 끊어라. 

지혜 속에 보리를 나게 하라. 

지옥에서 떠나 삼계를 벗어나라. 

원컨대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반대로 최소노력의 원칙은 반영웅적 인물들을 통해 나온다. 가령 섭검영 같은 인물이 그렇다. 섭검영은 과대망상꾼처럼 자신을 부풀리길 좋아하는 허풍선이급 인물이고 영화에 나온다면 1초 내외에 땅에 쓰러질 엑스트라급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인터파크 책 소개글)


- 소림 파계승 법현 흑저의 인생역전 이야기? 박룡수, 용수 진립동, 금룡장 소운, 흑룡방, 구신, 황거지


- 위 소개글에 '섭검영'이라고 된 인물은 '엽검영'인 듯.


- 좌백의 소설은 기타 다른 무협과는 뭔가 좀 색다르다. 가공할 내공과 화려한 무공 같은 것이 안나온다. 아, 이번엔 그런 인물이 하나 있긴 했다. 용수 진립동. 소림 속가 출신으로 중원권법 제일인자. 백보신권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벽공장에 이어 격공장까지 시전하는 가공할 인물. 보통 이런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끝내 뛰어넘으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엑스트라로만 보기엔 비중이 좀 있다고 해야 하나...


- 내겐 몹시 생소한 불가적 용어들이 마구 나온다. 주 배경이 소림사다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가도 이런 글을 보면 참... 뭐랄까... 작가의 불교문학에 대한 깊이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라고 표현해야 하나... 뭐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협에서 불교적 세계관이라니, 좀 생뚱맞다고 해야 하나... 아니, 어떻게 보면 무협이 아니면 어디서 그런 세계관과 그런 용어들과 그런 문학적 표현들을 볼 수 있을까?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그렇지만 난 이런 식의 오그라드는 현학적인, 잘 알지도 못하는 표현, 절대 못한다.


- 좌백식 무협도 몇 편 연달아 읽다 보니 나름 잔잔한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좀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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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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