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407184256&Section=03

 

"쿨(cool)한 당신! 제발 투표장으로 가라" 
[진중권 칼럼] MB 교육 철학의 미신
기사입력 2009-04-07 오후 7:01:55

 

또 다시 색깔 공세

 

내가 경기도민으로 사는 김포의 아파트로 경기도 교육감 선거 공보물이 날아왔다.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져보았다. 대강 경기교육희망연대에서 범도민 후보로 선정된 김상곤 후보에 맞서 몇몇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난립하는 형국인가 보다. 이럴 때 보수우익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이 색깔 논쟁. 선거 4일을 앞두고 현직 교육감인 김모 후보가 김상곤 후보를 겨냥해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진춘 경기도교육감 후보(기호 4번) 쪽이 지난 4일 오후부터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 김상곤 후보(기호 2번)를 겨냥해 '전교조 이념교육, 교육이 무너집니다'란 내용이 적힌 선거현수막을 거리에 내걸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 막판 4일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오마이뉴스>, 2009년 4월 5일)

 

선거 막판에 이러는 것을 보니 상황이 어지간히 급하긴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김상곤 후보 측에서는 "김상곤 후보는 경기 환경운동연합 대표, 안양YMCA 사무총장 등이 지지를 선언하는 등 보수단체를 뺀 200여 개 교육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추대한 범도민교육후보"라면서 "막판에 선거 패배가 짙어진 김진춘 후보 쪽이 공정택 후보의 전략을 표절해 네거티브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도 그런 수법으로 당선이 됐다. 하지만 그는 불법적인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 법정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그는 교육감 자리를 내놔야 한다. 엄청난 선거비용을 들여 뽑아놓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귀중한 시간 쪼개 투표장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한 시민들의 선택은 헛수고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 허탈한 부조리가 반복되리라는 우려를 자아내는 징조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폐기해야 할 MB의 교육 철학

 


▲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하루 앞둔 7일 경기 수원 팔달구 우만 1동 2투표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소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너절한 이념 공세에 말려들 필요 없이 차분하게 두 후보의 정책을 비교해 보자. 여기서 선거 공약 하나하나를 다 살펴볼 수는 없고, 대체로 요약을 하자면, 김진춘 후보가 MB 정권의 교육 정책에 비교적 충실히 발을 맞춘다면, 범도민 후보로 선정된 김상곤 후보는 'MB식 특권교육'을 비판하며 21세기에 걸 맞는 창의성 교육을 주장한다. 두 후보가 내놓은 정책의 바탕에는 실은 매우 깊은 교육 철학의 차이가 깔려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차이는 진보/보수, 우파/좌파의 차이가 아니라, 두 개의 시대 사이의 대립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우리 교육의 발목을 사로잡고 있는 몇 가지 사회적 미신을 깨야 한다. 첫째는 "경쟁과 평등은 서로 대립되는 가치"라는 미신이다. 명박스러운 이들은 '경쟁이냐, 평등이냐'라고 물으며,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핀란드를 비롯한 북구의 교육이 입증하듯이, 가장 평등한 교육이야말로 실은 가장 경쟁력이 있는 교육이다. 세계 최고의 생활 수준을 자랑하는 이들 나라가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이라는 점을 보아도, 정의로운 사회야말로 효율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미신. 미학에서조차 폐기 처분한 이 18세기 천재론이 대한민국에서는 21세기 경제학과 경영학의 노릇을 하고 있다. MB 교육 철학의 핵심인 '엘리트 교육'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이 낭만주의적 천재론이다. 하지만 경제는 몇몇 위대한 천재의 머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들 각자의 능력이 조금씩 올라가는 그만큼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엘리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여부도 실은 주위의 환경, 즉 그와 협력하는 동료 인간들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셋째는 "시험 성적이 곧 경쟁력"이라는 미신이다. 문제를 푸는 능력이 '문제 해결' 능력은 아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문제 푸는 스킬만을 익힌 학생들은 답안지를 작성하는 데에는 능할지 몰라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창의성이 곧 생산력이 되는 21세기에 더 중요한 능력은 바로 '문제제기' 혹은 '문제설정'의 능력. 이는 주어진 문제의 답안을 작성하는 능력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박스러운 이들이 주장하는 '경쟁력'이란 실은 21세기에는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린 낡은 경쟁력일 뿐이다.

 

OECD 국가들의 교육 성취도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핀란드 바로 아래에 한국이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료에서 곧바로 한국이 세계에서 교육 성취도 2위라는 결론으로 비약해서는 안 된다. 서구의 아이들은 놀 거 다 놀면서 즐겁게 공부하는 반면, 우리의 아이들은 생활 전체를 입시공부에 바치는 중노동을 해가며 온갖 경로를 통해 시험 문제를 푸는 스킬을 익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까지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부터는 혼자 공부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시점부터 교육 경쟁력 세계 2위의 허상은 무참하게 깨지기 시작한다.

 

그 자료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학생들이 성적은 높을지 몰라도 학습 의욕은 세계에서 가장 떨어진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어떤 나라에서는 '선행 학습'을 강력히 금지시킨다고 들었다. 애들이 미리 알고 교실에 들어오면, 수업에 의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란다. 지식경제의 사회에서 공부라는 것은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공부는 누가 강제로 시켜서 될 일이 아니라, 결국 승부는 학습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얼마나 의욕과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교육은 '성적'이라는 일시적 목표를 위해 '학습의욕'이라는 전략적 목표 자체를 폐기해 버린 상태다.

 

성적만 높고 의욕이 없다는 것은 국가의 교육 경쟁력을 위해 매우 위험한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이명박 교육철학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듯이, 학생들을 학습의 '주체'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강제) 학습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이런 강압식 모델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던 근대화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율적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창의력과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디지털 지식경제 시대에는 이미 퇴물이 되어 버린 낡은 패러다임일 뿐이다.

 

그런 낡은 모델에 사로 잡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교육이다. 아니, 그것이 이명박 정권 하의 한국 사회 전체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듣자 하니 현교육감인 김진춘 후보는 "애국단체총협의회, 뉴라이트전국연합, 고엽제전우회, 자유교육연합, 특수임무수행자회 등 102개 단체가 지지를 선언했다"고 자랑스레 밝혔다고 한다. 단체 이름만 봐도 교육의 장래가 걱정된다. 경제의 형태가 바뀌면,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도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주체를 길러내는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저런 우익 단체들의 시대착오적 관념에 맡겨 놓아야 할까?

 

투표를 하라

 

진보 혹은 개혁 성향의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도 정작 투표함을 열어보면 결과가 반대로 나오는 게 이 나라 정치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내가 이런다고 나라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거창하게 나라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당신은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당신이 내게 던진 질문은 어떤 회의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회의를 떨쳐버리는 것 정도는 당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할 때, 사회는 바뀔 수 있다."

 

이른바 '소쿨족'이라는 게 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인 것에 냉소를 보낸다. 그리하여 쿨하게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쿨하게 민주당을 비판하고, 쿨하게 진보신당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의 '냉소'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 (진정한 냉소는 남들이 냉소하지 못하는 것에 보내는 냉소다. 디오게네스의 냉소는 성질이 포악한 알렉산더라는 다혈질을 향한 것이었다.) 외려 보수우익과 한나라당에서는 그 냉소를 열렬히 반긴다.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안 나가겠다는데, 그보다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의 그 '소쿨'한 태도가 실은 권력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제 와서 혁명을 하겠는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국 달랑 표 하나 던지는 것뿐이다. 그 표를 던지는 것마저도 포기한다면,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감히 자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저 사회는 몰라도 내 자신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수고가 들어간다.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은 입을 놀리는 것보다 약간 더 번거롭다. 그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때, 그때 절대로 바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바뀔 수가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Posted by 떼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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