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겨울 공화국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다른 여성’을 누르고 당선할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다스릴 대한민국은 고문, 용공 조작 따위가 난무하는 ‘겨울 공화국’이기 쉽다. [121호] 2010년 01월 06일 (수) 15:50:46 고종석 (저널리스트)
“다음 대선 때 박근혜가 되면 이민 갈 거야!” 어느 시인이 술자리에서 더러 하는 말이다. 이민 갈 경제력이나 있을까 싶은 그이는 “다음번에도 박근혜가 되기 어렵지. 이명박이 그걸 놔둘 것 같아? 차라리 야당으로 권력을 넘기면 넘겼지”라고 단언한다. 엊그제 모임에서는 “한명숙 괴롭히는 게 다 박근혜한테 건네는 경고라고. 국으로 있지 않으면 당신도 한명숙 꼴 난다, 이거지”라는 ‘심층 분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차기 대통령직이 박근혜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시인 정치평론가가 이민을 갈 것 같지는 않다. 서울내기인 그는, 군 복무할 때와 징역살이할 때를 빼놓고는 외국은커녕 서울 바깥으로 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던 ‘서울 지킴이’이다. 지금의 대세가 이어져 박근혜가 당선한다면, 청와대에서 되도록 먼 동네로는 이사를 갈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나는 생전에 내 조국의 여자 대통령을 보고 싶다. 그런데 그 여자 대통령이 박근혜라면? 그녀 얼굴에 포개지는 박정희 얼굴 때문에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다. 연좌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자기 아버지가 죽이거나 망가뜨린 사람들의 가족에게 결코 사죄할 마음이 없는 거물 정치인의 윤리적 불감증이 섬뜩하게 두렵다는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한명숙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까봐 정권이 그녀를 미리 쳐내는 거라고 최근의 사정 정국을 풀이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왜 ‘고작’, ‘하필’ 서울시장이랴? 총리까지 지냈으니,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한명숙은 대선에도 눈길을 줄 수 있으리라. 물론 힘이야 ‘선출된’ 서울시장이 ‘임명된’ 국무총리보다 클 것이다. 총리직을 마치고 서울시장으로 뽑힌 고건의 선례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서열’을 무겁게 여기는 한국에서 전직 총리가 서울시장이 되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세 해 뒤 대선에서 여자들끼리 맞서는 게 차라리 볼품 있을 것 같다.
그럴 조짐이 없지도 않다. 한나라당이 자폭하지 않는 한, 이 당의 18대 대선 후보는 박근혜일 터이다. 이른바 ‘친이계’가 불만(이라기보다 차라리 불안)을 드러내며 당을 쪼개더라도, 한나라당의 정통성은 여전히 박근혜에게 있을 것이다. 그때 탈당파가 내세울 인물도 지금으로서는 변변치 않다. 오히려 야권에 잠재적 후보가 적잖다. 그들은 죄다 여성이다. 이를테면 민주당의 한명숙이나 추미애, 진보신당의 심상정 같은 이들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이정희도 2012년 대선 때는 피선거권을 지닌다. 실상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주류 정치인들이 훌쩍 노령화해서 그렇지, 방금 거론한 이들은 ‘젊은’ 나이가 아니다. 이정희를 빼고는 모두 버락 오바마보다 나이가 위다. 여자들끼리 맞서는 대선!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내 욕심으로야, 되도록 이른 시기에 민주당(의 한 분파라도)이 개과천선해서 진보 정당들의 ‘충분히 좌파적인’ 강령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야권 통합을 이뤄내 단일 후보를 냈으면 좋겠다. 그게 어렵더라도, 최소주의 프로그램에 입각한 정책 연합을 통해 후보를 단일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단일화한 여성 후보는 지방선거에서든 대선에서든,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불쑥 키울 것이다.
박정희의 ‘겨울 공화국’을 ‘따뜻한 나라’로 기억하는 유권자 많아
실상 지금 민주당에는, 손학규를 빼면, 앞에서 거론한 사람들과의 경쟁력에서 앞설 남자가 없다. 김근태도 정동영도 흘러간 물이다. 국민참여당(친노 신당)의 유시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일곱 해 남짓 정치인으로 살면서, 실언인지 식언인지 알 수 없는 ‘과격하고 화사한’ 입담으로 발걸음 닿는 곳마다 불화와 갈등의 씨앗을 뿌려놓은 터라, 합당이나 정책 조율 과정에서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집권당의 박근혜와 반(反) 시장 독재 민중전선의 여성 후보 아무개는 18대 대선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선거로 만들 것이다. 대선에서 ‘여자 vs 여자’라니! 뜨악한 것은, 그 선거에서 박근혜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나는 여자 대통령을 바라지만, 아무 여자 대통령이나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두고 박근혜는 그 판결이 자신에 대한 정치 공세라 일축했다. 순수한 방어적 레토릭이었다 해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박근혜의 ‘진심’이었다면 더 큰 문제다. 박근혜가 그 ‘진심’으로 다스릴 대한민국은 고문, 용공 조작, 사법 살인 따위가 다시 난무하는 ‘겨울 공화국’이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두려운 것은 박정희의 그 ‘겨울 공화국’을 ‘따뜻한 나라’로 기억하거나 추체험하는 유권자가 적잖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이럴 때 무섭다.
박근혜, 요즘 TV를 잘 안 봐서 뭐가 어떻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다는 건 국민에 대한 신뢰 문제에서 칭찬 받을 만 하다고 본다.
물론 그의 출신성분과 주위 '세력'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는 짓이 곱게 보이다가도 돌연 인상이 확 찌푸려지긴 하지만...
그런데 과연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감이긴 한건가?
우리네 서민의 시각이 아니라, 저들 기득권 세력의 시각에서도 말이다.
흠...
정녕 이 시대는 인물이 없는 시대인가.
모난 돌은 정 맞아 깎여 나가고, 다들 고만고만한 것들만 남은 중에서 뭔가를 선택하려면,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