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통합과 국민참여당 [손호철 칼럼] 아직도 우린 양김의 유령과 싸우고 있다 기사입력 2010-01-25 오전 8:31:06
물론 사당정치, 지역정당으로 표현되는 한국정당의 비민주적 구조를 생각할 때 탈사당정치, 탈지역정당을 목표로 한 신당의 출현은 시대의 요구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정당을 전공하는 정치학자들, 특히 개혁적 성향의 정당연구가의 다수가 신당 움직임에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며 노 대통령과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정당개혁은 신당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정당은 정권만 바뀌면 새로운 정당이 생기는 대통령의 당, 사당이 되어 왔는데, 이 같은 관행과 단절을 하고 정당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 어느 정당개혁보다도 더 큰 개혁이라는 주장이다. (중략) 5년 뒤 현재 추진 중인 신당을 깨는 또 다른 신당이 나오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핵심세력이 열린우리당을 만들던 노무현 정부 초기 썼던 나의 칼럼 중 일부이다. 나의 우려대로 열린 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부터 2년여의 세월이 지난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집한 친노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그러면 국민참여당은 어떤 정당인가? 이에 대해 새 당의 대표를 맡은 이재정 대표는 "국민참여당은 당원 70%가 정당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정치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정당이기 때문에 출발부터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가치나 의미에 있어 아무리 찾아봐도 민주당과 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다"면서 "힘을 합쳐도 모자란 상황에 그 부족한 힘마저 꼭 나누어야만 하겠는가"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우선 정치 이념적으로 민주당과 비슷한 '자유주의 정당'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대표가 주장한 진성당원들이 중심이 된 밑으로부터의 정당이라는 면도 과장된 것이다. 아마 이 같은 특징은 국민참여당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점에서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내가 썼던 위의 칼럼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사실 민주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화를 만들어낸 국민경선제 등 민주적인 밑으로부터의 정당이라는 전통과 틀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가지고 있다.
▲ 국민참여당 창당대회에서 연설하는 이재정 대표 ⓒ뉴시스
또 국민참여당의 간판인 유시민 전 의원의 행보를 보면 국민참여당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적인 밑으로부터의 정당', '당원의 정당'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유시민 전 의원이 일산에서 개혁당 후보로 첫 출마할 당시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은 같은 지구당에서 민주적인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반민주적인 밀실회의를 통해 이를 묵살하고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아래 개혁당의 유 전 의원을 후보를 내정했다. 이에 대해 유 전 의원은 반민주적인 밀실공천이라고 거부한 것이 아니라 "얼씨구나" 하고 이를 수용해 당선된 '밀실공천의 전과'가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이 민주당이 주장하듯이 민주당과 차이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창당 당시 열린우리당이 내건 것이 위에서 지적한 '당원의 정당'과 '전국정당'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당의 차별성은 소위 '전국정당'이라는 측면과 관련된 지역적 기반이다. 즉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호남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다면 국민참여당은 영남의 민주세력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창당, 국민참여당의 창당의 배후에는 양김의 분열,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90년 3당통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지역주의는, 박정희를 무너트린 부마항쟁이 잘 보여주듯이, 결코 영남대 호남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국의 지역주의는 민주 대 반민주의 변형으로서 호남(DJ)과 PK(YS)의 연합 대 TK(박정희, 전두환)와 충청(JP, 육영수) 연합의 대결이었다.
다시 말해, 호남과 PK는 70-80년대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다. 그러나 87년 양김의 분열로 인해 그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하던 갈등구조가 민주대 반민주구조에서 지역주의로 대체됐고 호남과 PK는 '적'이 됐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민주 대 반민주구도에 지역주의가 추가되면서 민주세력도 호남 민주세력과 영남 민주세력으로 분화됐다.
이 같은 정치구도에 또 한번 변화가 생긴 것은 90년 3당 통합이다. 3당 통합으로 YS가 군사독재와 손을 잡으면서 영남의 민주세력은 혼란에 빠졌고 지지할 사람이 없어졌다. 이기택, 노무현 의원 등 부산의 일부 정치인들이 3당 통합을 거부하고 민주진영에 남아 YS의 공백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지역주의의 압도적인 우위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다시 말해, 이기택, 노무현이 노린 비호남 야권 유권자, 영남 야권 유권자들의 다수는 '반호남'보다 반민자당이 더 강한 '반민자, 비민주'가 아니라 오히려 '반호남'이 더 강한 '반민주, 비민자'였던 것이다. 그 결과 '바보 노무현'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생겨난 것이 YS가 비어 놓은 비호남 야성 유권자들을 노린 '제3당' 가능성이다. 이에 기반한 것이 정주영의 국민당 바람이며 박찬종 현상, 이인제 현상이다. 9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호남당으로 전락한 반면 전국적 야당의 모습을 갖춘 것은 오히려 국민당이었다. 국민당이 이처럼 전국적 야당의 모습을 갖추고 선전한 것은 단순히 정주영의 카리스마와 현대의 돈 덕분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민자당도, DJ도 싫은 비호남 야성 유권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국민당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97년 이인제의 지지로 이어진다.
이 같은 지역구도 하에서는 호남의 지지에 기반한 민주당의 간판으로는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온 노무현, 이강철, 김두관, 유시민 등 영남 민주세력들은 결국 전국정당화라는 이름하에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이 바로 국민참여당이다. 왜냐하면 지역주의는, 그리고 비호남 야성 유권자라는 그 지지기반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 지역구도 하에서 영남에서 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얻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히려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국민참여당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실험도 영남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참여당이 영남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다만 MB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심리가 유리한 변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박근혜가 독자세력화를 하거나 한나라당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한나라당을 접수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정작 문제는 수도권이다. 각각 지역기반이 다른 호남과 영남과 달리 수도권의 경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분열할 경우 둘 다 참패할 것이다. 그러나 연합공천 등이 당내정치로 인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되든, 국민참여당은 양김의 분열과 YS의 3당 통합이 우리에게 남겨준, 피할 수 없는 선물이자 유산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양김의 유령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그럴 듯한 분석이다.
87년 이전에는 호남+PK : TK+충청의 구도였다는 것,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다.
그런데 한 가지 딴죽을 걸자면, "민주 대 반민주"라기보단, "민자 대 반민자"였겠지.
민주주의와 그에 대항하는 반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민주당과 그에 반하는 반민주당 결집도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군사)독재 대 반독재"라면 끄덕끄덕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국민참여당이든 뭐든, 지금 박근혜만큼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인물도, 정치세력도 없다는 것은 개혁/진보세력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