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대1 맞선? 인신매매 맞선! 한국 남자 1명이 캄보디아 여성 25명과 쇼핑하듯 맞선을 본 ‘사건’에서 성차별주의·인종주의·배금주의에 찌든 대한민국의 초상이 보인다. [133호] 2010년 04월 01일 (목) 17:28:58 고종석 (저널리스트)
캄보디아 정부가 자기 나라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을 당분간 막기로 했다. 프놈펜이 이런 조처를 취한 것은 지난해 9월 한 결혼 중개업자가 캄보디아 여성 25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한국인 남자 한 사람과 맞선을 보게 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5대1의 이 해괴한 맞선에서 한국인 남자는 시장에서 쇼핑을 하듯, 자기와 ‘평생을 같이할’ 여자를 골랐다. 장가를 들기 위해 장(場)을 본 셈이다.
늘 졸기만 하는 듯한 정의의 여신이 이번 사안에 대해선 눈을 부릅떴는지, 문제의 중개인은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됐다. 그 인신매매가 예의 25대1 맞선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이 중개인이 저지른 인신매매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기괴한 맞선을 뭐라 부르든, 그것이 인신매매 성격을 지닌 건 또렷하다. 이 맞선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더러 마주치는 노예시장 풍경을 단박 연상시킨다.
이 이상한 맞선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엇물려 있다. 첫째는 성차별주의다. 국제결혼의 두 예비 배우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남자 스물다섯이 한자리에 불려나와 여자 한 사람과 맞선을 보는 일은 없을 테다. 성차별주의는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이슬람권을 제외하고는 한국만큼 이 병이 창궐하는 사회도 찾기 어렵다. 대통령 후보가 ‘마사지걸’을 잘 고르는 법을 친절히 알려주고, 매스미디어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방송통신위원장이 여자들에게 “직업을 갖지 말고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다”라고 충고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둘째는 인종주의다. 제3세계 사람들을 향한 한국인들의 인종주의는 이제 ‘국가 브랜드’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가졌든 외국 국적을 가졌든, 한국인과의 혼혈인이든 아니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겪는 한국의 일상은 수모와 신체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이 인종주의는 대단히 편파적이고 비굴해서, 유럽계 백인에게는 그 공격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여자의 국적이 캄보디아가 아니라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였다면, 아니 국적이야 어쨌든 그녀들이 백인이었다면, 25대1 맞선은 어림없었을 것이다.
셋째는, 어쩌면 이것이 가장 심각할지도 모르는데, 배금주의(拜金主義)다. 25대1의 맞선을 보기 위해 그 한국 남자는 적지 않은 돈을 중개인에게 털렸을 것이다. 필시 살림이 그리 넉넉지 않을 이 남자의 생각으로도, 결혼이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일종의 상품이었으리라. 그런 사고방식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널리 퍼져 있을 테지만, 25대1 맞선은 (아마도) 애옥살이 남자가 역시 애옥살림의 외국 여자들에게 행사한 인격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입맛이 아주 쓰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상호 착취다. 그리고 이런 전위적인 맞선은 자본주의 사회의 배설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명예심의 바탕으로 삼아야 하거늘…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이것이 성매매 문제가 아니라 ‘결혼시장’(이라는 말을 용서하시라. 이 천박한 상투어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다) 문제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은 성(性) 산업의 ‘선진국’이다. 밤낮 없이 ‘러브호텔’ 간판이 교회 십자가와 자웅을 겨루고 있고, 성 공급자의 ‘서비스’ 수준이 괄목상대라 할 만큼 일취월장하고 있으며, 잊을 만하면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섹스 스캔들이나 성추행 사건이 터지고, 현직 국회의원이 자기 고향의 ‘밤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래도 예컨대 타이 같은 나라의 은성(殷盛)한 성 산업에 견주면 한국은 아직 ‘건전사회’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도드라지는 문제는 25대1 맞선이 섹스 파트너를 구하기 위한 것(그것만 해도 충분히 엽기적이다!)이 아니라 결혼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제 아내를 얻기 위해 갖는 25대1의 집단 상봉이라니! 이것은 차라리 자기모멸이고 자기학대다.
짝을 찾지 못한 한두 세대 전 미혼 남녀들은 이른바 ‘미아이(見合) 사진’을 보고 또 보았지만, 요즘의 어떤 한국 남자들은 ‘실물들’을 보려고 동남아시아로 향한다. 사람을, 특히 자기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그렇게 실천하기 힘든가? 이것은 대통령이 좋아하는 ‘국격(國格)’을 크게 깎아내리는 짓이기도 하다. 사족을 단다면, 이런 25대1 맞선은 동분서주하며 헛발질 기록을 경신하고 계신 대통령 탓이 아니다. ‘구조’가 어떠니 ‘처지’가 어떠니 하는 것도 비겁한 핑계다. 해결책은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를 되뇌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제가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명예심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다.